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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민정 May 13. 2024

일제 식민지의 흔적을 따라 걷다.

남산 기억로 (24. 4. 27.)

1910년부터 1945년 약 35년간의 슬픈 역사, 바로 일제강점기다. 일본이 우리나라의 국권을 강탈했던 흔적과 일본에 맞서 독립운동을 벌였던 진짜 영웅들의 자취가 숨어있는 곳이 있다. 일본의 탄압과 독립운동가들의 저항을 기억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그곳을 찾았다.     


‘남산 기억로’ 역사 탐방은 해설사와 함께 남산 한옥마을에서 출발하여 옛 조선신궁 터인 안중근의사기념관 부근까지 둘러보는 도보여행이다. 남산 일대에서 일제의 침탈을 듣고, 보고, 느끼는 체험학습이다. 일상에 치여 역사를 잊고 있던 어른, 역사를 바로 알고 우리 땅과 문화를 지켜야 할 아이들 모두에게 꼭 필요한 여정이다.      


남산은 아이들과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다. 날씨가 좋은 날 둘레길을 산책하거나 남산자락에 있는 융합과학교육원에서 과학을 흥미롭게 접해 보았다.     


“이번에는 남산으로 역사 여행 가자.”

“남산에 역사박물관이 있어요?”     


남산에 일제강점기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건 나와 아이들 모두 들어본 적이 없었다. ‘서울시공공서비스예약’ 사이트를 찾아 예약한 이번 여행에는 역사 해설가분이 동행하며 설명해 주셨다. 우리 역사에 관심 많은 어른들과 아이들이 남산 한옥마을 정문 앞에 모였다.     


남산골 한옥마을


“안녕하세요.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따라 걸어 볼 해설사입니다. 총 1시간 40분 정도를 열심히 걸어야 해요. 모두 준비되셨죠? 역사는 기념해야 할 것과 기억해야 할 장면이 있어요. 오늘 우리는 반드시 기억하고 잊지 말아야 할 어두운 역사를 따라가 볼 거예요.”     


무거운 여행의 주제와 다르게 남산골 한옥마을은 따사로운 햇볕 아래 나무와 한옥이 어우러져 곱고 화사했다. 이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군사적 기지로 사용됐으나 1989년 남산골의 제모습 찾기 사업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당시 수도방위사령부 부지를 인수하여, 서울특별시 지정 민속자료 한옥 5개 동을 이전해서 복원하고 전통 정원으로 꾸며 놓았다.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풍류를 즐기던 정자인 청류정과 물고기를 바라보며 자연을 감상하던 관어정. 남산 한옥마을 복판에 서 있으면 결코 핍박받던 그 시절을 떠올릴 수 없다.


청류정과 관어정


한옥마을에서 산자락을 타고 조금 올라가면 30조에 이르는 세계인권선언문이 길게 전시돼 있다. 과거의 인권이 철저히 유린당한 현장과 벽에 붙은 세계인권선언문. 극명한 부조화를 담은 역사 여행은 계속되었다.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은 옛 통감관저 터입니다. 이곳은 일제가 대한제국을 식민지로 만들기 위해 을사늑약을 체결한 후 조선을 빼앗을 목적으로 설치한 총독부의 전신이 있던 터입니다.”     


통감관저 터를 빙 둘러보는데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돌기둥이 보였다. 궁금하던 찰나 해설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그것은 본래 남작 하야시곤스케군상이었다고 한다. 이 인물은 고종 황제와 대신들을 겁박하여 을사늑약을 강요한 장본인이었다. 일제가 그의 공을 치하해 세운 동상을 광복 70주년을 맞아 동상 잔해를 모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이다. 우리가 치욕스러운 일제강점기를 반드시 기억하기 위함이었다.    


 

통감관저터와 거꾸로 세운 동상

1921년 의열단원 김익상 의사가 조선 총독에게 폭탄을 던졌던 곳을 지나가며 해설사분이 질문을 던졌다.   

  

“여러분, 의사와 열사의 차이를 아세요?”     


유관순 열사, 안중근 의사처럼 한 단어처럼 기억하고 있던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의사는 무장 투쟁으로, 열사는 절개와 의지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들이에요.”    

 

일제 탄압과 우리 민족 저항의 역사를 정신없이 쫓다 보니, 어느덧 남산 중턱에 다다랐다. 한양도성이 내려다보이는 자리에는 위안부 피해자 기림비가 있다. 서로의 손을 잡은 한국, 중국, 필리핀 소녀의 모습을 위안부 피해자인 김학순 할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동상이다. 자갈밭에 선 할머니의 표정에서는 아픈 기억을 세상으로 꺼내기 위한 단호한 용기가 보인다. 우리가 서서 세 소녀와 손을 맞잡으면 비로소 ‘하나 된 우리’의 의미가 완성된다.      


서울 일본군 '위안부'피해자 기림비


남산 일대 곳곳에는 일본의 악취 나는 말과 행동들이 묻어 있다. 아이들은 우리의 슬픈 역사를 어떻게 보고, 듣고, 느꼈을까?     


“한옥마을이라고 해서 조선의 한옥을 구경하는 줄 알았는데, 많은 곳에 일제강점기 역사 이야기가 숨어있어서 신기했어요.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났다면 선생님이 이야기해 주신 독립운동가분들처럼 용기 있는 행동을 하지는 못했을 거 같아요. 항상 기억하며 감사해야겠어요.”     


국사는 초등학교 5학년 교과부터 배우게 된다. 그 또래 아이들과 함께 우리가 꼭 간직해야 할 역사의 중요한 조각을 찾으러 남산 기억로를 걸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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