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도전은 불가능을 끄는 소화기와 같은 존재
코로나 종식을 알리는 봄, 휴학생에서 복학생이 되는 그 순간에 비로소 나의 본격적인 대학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스무살에 맞이하는 대학 생활이 아니라 스물셋에 맞이하는 대학 생활이라니... 허탈하기도 하고 새롭게 펼쳐질 일에 대해 설렘이 가득했다. 누구보다 개강을 바랬던 한 학생은 4번의 개강과 종강을 끝내고 푸르른 하늘로 드넓게 펼쳐질 낭만을 기약하고 싶었다. 스물셋의 가치관을 '후회없는 선택을 하자'라고 정했기에 내가 하고 싶거나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것이 불가능할까, 힘들까라는 생각을 먼저 하지 말고 일단 해보자는 믿음이 있었다. 그 믿음의 불씨가 된 것은 '연극'이었다.
가족 손에 이끌려 보게 된 문화생활 일부, 중학교 합창단 친목으로 인한 연극 감상, 흐릿한 기억 속에 연극 파편이 아닌 '이게 연극이었네.' 라고 내뱉을 수 있는 순간은 휴학생일 때 봤던 연극이자 지금 소속되어 있는 대학 연극 동아리에서 올린 제76회 정기공연이었다. 강의를 듣는 건물의 위치와 도서관의 위치만 대략 외우고 있었던 나에게 '소극장'은 낯선 공간이었다. 친한 친구의 인스타 스토리에는 극장으로 보이는 공간에서 티켓을 찍은 사진이 올라왔다. 울산에서 그런 연극을 보지 못했기에 스토리를 확인하자마자 물어보게 되었다.
우리 대학 연극 동아리에서 올린 공연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된 동시에 '연극'에 관심을 가지게 된 첫 계기가 되었다. 휴학생은 휴학을 하면 자격증 준비, 공모전 도전, 대외활동에 바쁘지만 영화, 드라마, 전시를 볼 문화생활을 할 시간적 여유는 많다. 동아리의 인스타를 팔로우 해두고 혼자 연극을 보러 갔다. 두 번째 올리는 공연을 보게 되었다. 빨간색 조명의 연출 요소가 신기했고 배우분들의 연기를 잘하셔서 관객이 놀랄 정도였다. 뒤로 바뀌는 무대 장치 역시 멋있어서 한번도 느껴보질 못한 문화생활을 대학의 한 소극장에서 파스락 - 파스락 - 내 마음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연극을 보고 커튼콜까지 다 봤어도 뒤숭숭한 이 감정을 '여운'이라고 하는데 이 여운을 떨치고 싶었다. 후후 불어 식게 만든 후 영감 노트에 감상평을 작성했다. 다꾸(다이어리 꾸미기)에 취미를 둔 터라 팜플렛을 잘라 붙이기도 하고 연극의 주제에 맞게 나름 다꾸 연출 요소도 넣었다.
드라마 극예술연구회 제 76회 정기공연
정상이지만 안정상입니다(2022)
다이어리의 감상평 부분
: 재밌고 슬프고 여운있는 연극이다. 이 연극은 배우는 관객들을 이끌고 관객들은 압도 당하나 이내 편안한 느낌을 준다. 대학의 한 동아리 연극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잘했다.
우리는 그 누구도 평가할 자격이 없다. 다른 사람인데 틀린 사람으로 판단하는 사람은 대단한가.
이름이 '안정상'이라는 것이 신박했다. 정상 비정상의 기준은 없다. 정상의 기준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평범한 사람으로 칭한다. 전문적으로는 심리학 공부를 배워 내세우고 싶은데 나는 그리 하지 못하고 애초에 심리학과도 아니다. 사진만 배우의 연기 좋았다. 그리고 간호사 역할로 나오신 최서현 배우님의 하이퍼리얼리즘 연기가 각인되었다. 실습하러 나오신 간호사 느낌을 풍겼다. 간호학과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는 말을 듣고 더 놀랐다. 세대를 앞서가는 우리가 되어볼까. 80~90년대에 부딫혔다면 MZ세대의 가치관을 비정상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연극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거나 화를 내거나 요동치는 감정 폭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내 가지고 있었던 여운을 끌 수 없었다. '아직까지 발표울렁증을 가지고 있는 나, 비정상인가요?'고 말하고 싶은 나의 한마디가 겨울잠을 자다 깬 시점이 되었다. 우리는 인간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고 누군가에게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표현될 수도 있었다. 뒤로 계단을 올라 쨍쨍한 하늘을 보며 희망을 가득찬 한마디를 내뱉었다.
"발표 울렁증있어서 무대로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연극이라는 거, 한 번 해보고 싶다"
그렇게 나는 습작 공연까지 보고 나서야 그 확신에 불을 붙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