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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로애락의 음향감독 연극 생활

by 선혜 Nov 10. 2024

사람들의 즐거움으로 적신 봄의 밤이 지나가고 여름이 찾아올 무렵 9월 정기공연 연출은 연극단 모집글을 올렸다. 드라마 여름 MT의 참여글이 올라왔고 나는 참여를 누른 후 1학기 과제를 하고 불같이 기간이 훅 지나갔다. 정신을 차리니 부산 송정해수욕장 앞 MT에 있었고 9월 공연 참여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음향과 조명은 기계치였던 나를 떠올리고 빠르게 스킵을 했다. 어쩌면 내가 가장 못하는 부분이기도 했어서 이 부분은 안 하고 싶었다. 대본을 두어 번 읽어보고 나니 배우를 하고 싶었고 배우로 지원했다. 연출에게 지원하는 배역과 짧은 말 한마디를 보내니 MT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었다.


오디션을 보는 날에 늦었고 시간을 중요시했던 나, 그리고 연출과 작가의 시간이 길어진 오디션. 처음으로 만나는 자리에 늦은 지각. 떨어질 거라는 80% 확신이 들었다. 그래도 기회가 있어 봤고 불합격 통지를 받았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역할을 맡았던 선배가 얼마나 배역을 잘 소화했는지 놀라울 정도여서 연극을 보면서 기뻤다. 그렇게 9월 공연에 참여를 안 할 줄 알았던 내가 음향감독을 맡았다. 기계치, 기계를 다루기 어려워하는 내가 '음향감독'을 한다는 것은 있을 없었던 생각이. 그 빠른 선택의 순간은 초시계로 재며 지나가는 것처럼 초조하게 다가왔다. 이윽고 연출은 장문의 글을 보냈고 마지막 한 문장에 와르르 무너지고 말았다.


'습작 연출할 때 스태프의 역할이 도움 많이 된다'


드라마에 들어오기 전 2022년 정기공연과 습작을 봤으니 습작의 존재는 이미 알았고 뚜렷했기에 굳은 결심을 할 수 있었다.

 해보지도 않고 불가능이라고 말하지 말자.
대신 불가능을 가능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하자.

이 말을 고이고이 접어 내 마음에 심었다.


대담한 결심은 굳지 못하고 습기와 벌레로 인해 몸과 마음이 풀어졌다. 연습 시간보다 모기에 물린 시간이 더 긴 음향실의 상황, 벽 사이에 배우의 액팅을 보고 음향을 틀고 끄고 하는 연습, 페이드 인과 페이드 아웃의 반복.

 

음향을 400-500개 듣고 드롭하는 시간, 브금대통령의 조회수를 올려준 매일의 날이었다. 브금, 음악과 관련된 유튜버 영상을 보며 연출에게 채택된 음악은 '기분이다!'하고 좋아요와 구독을 달아줘 구독자 1명을 늘리게 된 영광을 주기도 했다. 이는 음향감독이 된 것에 일말의 후회가 없었다. 모든 일은 쉬운 일이 없다는 진리를 알게 되면 어려운 일은 더 배울 수 있게 되고, 새로운 발견은 영감이 되며 경험은 나중에 나의 자산이 되니까 일이 어렵다는 사실은 내게 흔한 고민거리도 아니었다. 그저 힘들어도 재밌다. 후자의 말을 멋있게 포장하기 위한 '힘듦.'


그러다 후회의 불씨는 '조명감독의 부재'였다. 습작 조명감독을 맡았던 선배의 응원과 다르게 조명감독이 없어 친해질 수도 없었다. 음향실에는 공연에 대해 물어볼 선배도 없었고 지지직거리는 소리음과 배우의 연기소리와 눈치 없게 소리 낸 모기의 위잉 위잉 소리였다.


그렇게 계속 기다렸다. 제시간에 맞춰 기다린 약속의 주인공처럼. 오지 않을 자리를 채워 줄 멋진 이를 기다리며.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공연 당일 조명감독의 자리를 채워 줄 선배가 도와주러 오셨다. 선배와의 이틀 공연을 하다 보니 경직되어 있는 나의 손은 춤을 추고 있었고 속삭이던 나의 떨림은 연극 공연의 설렘이 묻어 있는 떨림으로 변했다. 저런 연출이 되어야겠다고 드라마에 온 내가 그 대상 옆에서 같이 음향 조명을 맞추고 있으니 짜릿했다.


힘들었지만 가장 행복했고 짜릿했던 희로애락의 순간. 아도라의 베이커리집을 보며 아도라가 파티시엘이 되는 모습이 아닌 진정의 아도라로 거듭나는 순간은 아도라의 성장을 도왔다. 욕망과 꿈속에서 아도라가 행복했기를.


파티시엘 잡기 / 2023.09.14~09.16


희로애락의 클라이맥스는 습작 연출이 되는 문을 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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