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진 Nov 30. 2019

하루 세 끼, 식단관리의 버거움

소재 <식단>

 난 어려서부터 식욕이 극심해 늘 입이 짧은 친구들이 부러웠다. 식욕을 가뿐히 이겨내는 깔끔함과 단호함을 우러렀다. 같이 일했던 직장 후배 녀석이 딱 그랬다. 몇 숟가락 먹지도 않았는데 바로 수저를 내려놓는다. ‘난 아직 먹고 있는데 너무한 거 아냐.’ 그런 눈으로 녀석을 쳐다보면 살짝 미소 지으며 녀석은 이렇게 말했다. ‘선배 죄송해요. 제가 입이 짧아서.’ 난 파르르 떨리는 눈을 껌뻑거리며 녀석에게 가보라고 손짓을 한다. 비인간적인 놈. 내 배는 아직도 성이 나서 김치찌개에 남은 밥을 비벼 먹으려는 참이었는데 녀석은 커피를 사 오겠다며 유유히 걸어간다. 나는 왜 숟가락을 내려놓지 못할까. 그러고 보면 내가 좋아하는 영화 캐릭터 중에 입이 짧은 친구가 많았다. 무언가에 고뇌하느라 뜨끈한 파스타를 외면한다든지, 대화에 여념이 없어 방금 나온 쌀국수는 안중에도 없는 도시 남자들이 대다수다. 가령 영화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의 미카엘(대니얼 크레이그)은 좌파 성향의 기자로 늘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데 곤두서 있다. 늘 집 앞 카페에서 뭔가를 적는 미카엘은 담배만 연신 피워댄다. 생각에 빠진 그에게 접시에 놓인 샌드위치는 데코에 불과하다. 그러다 문득 신문에 나온 뉴스를 보고 급히 자리를 뜬다. 3분이면 다 먹을 수 있는 조막만 한 샌드위치는 그렇게 버려진다. '배가 좀 불러야 두뇌 회전도 되는 거지 이 양반아.' 그는 내 눈총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긴 코트를 휘날리며 택시에 올라탄다. 일엔 프로페셔널하고 식도락엔 무심한 공복의 신사 미카엘.


 이런 장면도 좋다. 해리슨 포드 주연의 <도망자>(The Fugitive, 1993)에서 리처드 킴블(해리슨 포드)은 경찰의 눈을 피해 도주하던 중 상처를 입는다. 그는 복부에 난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한 시골병원에 잠입한다. 그는 전문의답게 아무 병실에나 들어가 자신의 몸을 꿰매고 진통제를 투여한다. 그러다 문득 병실 한구석에 놓인 샌드위치를 발견하고 집어 든다. 오랜 도피 생활에 지쳤으니 금세 먹어 치울 것처럼 보였지만 킴블은 샌드위치를 한 입 베어 먹고는 그냥 나가버린다. 가까스로 경비의 눈을 피해 다시 산속으로 사라진 남자. 아니 샌드위치를 남겨두고 산으로 기어들어 갈 생각이 들까. 이건 너무 비현실적인 전개가 아닌가. 난 혀를 차며 그의 절제력에 탄복한다. 그에게 샌드위치는 남은 도주 생활을 위한 탄수화물 덩어리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구나.


 난 워낙 먹는 걸 즐기다 보니 불행하기가 어렵다. 하루 세 번 끼니마다 신이 난다. 나 자신을 비관주의자라 생각하면서도 구내식당에만 들어서만 입꼬리가 비죽 올라간다. 우울하고 예민해지고 싶어도 빈번한 폭식에 낙관이 절로 깃든다. 그래서 영화나 소설을 볼 때 무언가에 열중하느라 끼니를 거르는 녀석이 등장하면 괜스레 호감이 간다. 나는 상상할 수 없는 허기진 그들이 사랑스럽다.


 십 년을 넘게 체중조절에 시달리다 보니 가끔 내가 저녁을 맘 편히 먹으려고 운동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 헬스장에서 낑낑거리다 나와 밥숟갈을 들면 죄책감이 덜하다. 칼로리와 단백질 함유량을 의식하지 않고 튀김만두를 두 개씩 입속에 밀어 넣는다. 난 언제쯤 이 지겨운 승부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까. 고등학교 땐 라면 네 개를 혼자 끓여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았다. 특별히 운동하지 않아도 늘 몸은 뜨거웠다. 그러다 보니 늘 허기가 져 더 열심히 먹었다. 아침에 미역국에 밥 말아먹고, 점심엔 급식으로 무한리필 동그랑땡을 섭취하고, 쉬는 시간이 되면 매점에서 햄버거와 라면을 사서 먹었다. 저녁엔 떡볶이를 먹고 들어가도 어머니가 챙겨주신 찌개가 그렇게 맛있었다. 난 스트레스 없이 뭐든 먹어 치우던 그때를 그리워한다. 좋아하는 영화를 닥치는 대로 보고, 몸에 나쁘다는 것만 골라 먹어도 그럭저럭 굴러가던 시간이었으니까.


 한때 무식하게 술을 마셔대던 시기가 있었다. 그 쓴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누가 볼 새라 방에서 마시고, 친구를 만나면 또 진탕 퍼부었다. 몸이 더 이상의 알코올은 위험하다고 신호를 보낼 때까지 부어버렸다. 당시 난 마음고생이라는 최고의 다이어트를 하고 있었다. 상흔을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몸이 자극을 원했던 것 같다. 살이 쭉쭉 빠지고 피부는 푸석푸석해졌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모든 게 괜찮아질 무렵 다시 라면 물을 끓이는 나를 발견한다. 몸에 피가 돌고 침이 고이자 눈이 맑아진다. 자 이제 다시 삼시 세끼 다 행복하다.

이전 11화 운동하는 사람은 블랙, 일하는 사람은 밀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