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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Jan 17. 2021

커피가 운동에 제격인 이유

음식 <커피>

 요즘 부쩍 편의점 커피를 마신다. 아침에 시간이 없을 때 재빨리 들고 나오기 좋다. 오늘도 회사 근처 편의점에서 아메리카노를 샀다. 컵을 하나 뽑아 들고 기계에서 버튼을 누른다. 졸졸졸 커피가 떨어지며 몸이 나른해진다. 뭉친 어깨를 풀며 전국 어디나 비슷한 편의점 실내를 둘러봤다. 예외 없이 가지런한 코스모스의 세계가 든든하다. 편의점은 이름처럼 웬만한 게 다 있다 보니 원만하게 필요한 것만 취해갈 수 있다. 심지어 요즘엔 단백질 셰이크까지 팔아서 운동 후에도 애용한다.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드문 경우다. 내가 편의점에서 제일 많이 사는 건 아몬드 브리즈 음료랑 바나나다. 속에 부담이 없는 아침 메뉴로 애용한다. 그렇게 아침부터 커피를 사러 들어가서 아침 식사 거리까지 들고 나오는 편의를 누렸다.


 회사 점심시간엔 간단하게 운동을 하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마신다. 갈증이 심할 때라 청량감을 느끼기 위해 아이스를 시킨다. 갈증에 급히 마셔버릴까 봐 부러 샷을 하나 추가해서 먹는다. 목 넘김이 따가울 정도로 쓴 커피를 마시며 각성한다. 과거엔 점심 식사 후에 낮잠을 즐기기도 했지만, 한 번 잠이 들면 깨어나기가 너무 고통스러워 수년째 운동을 하고 있다. 파워리프팅은 짧은 시간에 큰 자극을 느낄 수 있는 효율적인 운동이다. 고중량을 어깨에 걸치다가 사무실로 돌아가면 졸리기보다는 오히려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 잠잠하던 몸뚱이가 깨어나고 욱신거림은 독한 카페인이 누그러뜨린다. 허기는 지우고 오직 그윽한 향만이 입가를 매운다. 그런 느낌이 좋아서 난 습관처럼 운동 전후로 커피를 마셔왔다. 커피는 내 일상을 감쌌고, 틈만 나면 나타나서 날 안정시켰다. 대한민국이 커피공화국이라는 사실이 내겐 퍽 다행이다. 


 난 꽤 어릴 적부터 아침에 커피를 마셨다. 어머니가 주말 아침이면 주전자에 물을 끓이고 직접 둘둘둘로 타 줬던 기억이 난다. 몸에 안 좋고 밤에 잠도 안 온다며 만류했지만 못 이기는 척 한 잔씩 타 주셨다. 유리통에 든 아마도 맥심 마일드로 짐작되는 인스턴트커피 두 숟가락이랑 프림과 설탕도 듬뿍 넣었다. 난 특히 프림이라 불렸던 식물성 크림인 프리마를 유독 좋아했다. 느끼한 맛이 뭐가 그리 좋았는지 프리마만 몰래 퍼먹을 때도 많았다. 이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아르바이트생은 설탕이나 크림이 필요한지 묻는다. 난 손사래를 치며 요즘엔 시커먼 커피 아니면 입에도 대지 않는다고 중얼거렸다. 그는 미련 없이 다시 고개를 처박고 카톡 창으로 돌아갔다. 몸은 일터에 있어도 대화창에서는 알바생을 찾는 이들이 많은지 톡이 쉬지 않고 쌓였다. 유니폼에 가려진 그의 삶이 궁금해졌다. 창을 이리저리 넘나들며 대화를 나누는 꼴이 퍽 신나 보였다. 저 손바닥만 한 기계가 없었다면 알바 시간이 얼마나 지루했을까. 그의 안색은 무척 피곤해 보였음에도 엄지손가락만큼은 현란했다. 머리는 흰색에 가깝게 염색하고 무릎까지 내려가는 통이 큰 타미 후드티셔츠를 입은 채 다리를 꽜다. 

 요즘은 다들 옷을 크게 입는다그게 요즘 추세인  같다  끼게 입는 나는 언제쯤 유행이 돌고 돌아 다시 옷이 몸에 붙게 될지 궁금하다 그래도 최근에 살이 쪄서   끼기 시작한 옷들을 눈물을 머금고   수거함에 넣었다어머니 말마따나 한두 치수 크게 샀으면 이럴 일도 없었을 텐데옷들이 돌고 돌아 누군가의 옷장에서  역할을 했으면 한다아직 새것 같은  옷이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의 설레는 데이트를 빛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다. 이번 주말엔 비워진 옷걸이를 위해 다시 쇼핑할 생각이다요즘 마음이 허했는데 잘됐어. 나는 장바구니 넣어둔 쇼핑리스트에서 내 마음속 부재를 채워줄 근사한 기성품을 골라놨다. ‘나는 쇼핑한다고로 존재한다(I shop therefore I am)’라며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비튼 바바라 크루거의 시각적 이미지가 내 이마 위에 떠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난 긴 아르바이트보다는 하루짜리 막노동을 선호했다. 부모님이 주시는 용돈으로는 대학 생활을 버텨낼 수 없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까르보나라도 사줘야 했고, 요구르트 아이스크림에 분홍색 스푼을 꽂고 달콤한 얘기도 나눠야 했다. 예나 지금이나 좋아하는 악어 피케셔츠를 사 입어야 했고, 곧 죽어도 커피는 스타벅스였으니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최저 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편의점 알바 같은 건 질색이었다. 그래서 그 흔한 극장 알바나 주유소 일도 못 해봤다. 늘 돈이 급했던 나는 하루 뼈 빠지게 고생하더라도 10만 원이 훌쩍 넘는 현금을 손에 쥘 수 있는 노역이 좋았다.

 그날도 새벽같이 인덕원역 부근 인력사무소에 갔다. 낡은 소파에 앉아 일찌감치 출근한 경리 언니에게 농담을 건넸지만 반응이 싸했다. 난 버려야 마땅한 너절한 운동복을 입고 온 탓에 남루한 행색이다. 어쩐지 더러워 보이는 정수기로 가서 맥심 모카골드를 타서 마셨다.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고 누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지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대답은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소장님이 출근했다. 그는 날 흘겨보고는 '너 몇 살이냐. 일 경험은 있냐' 질문을 던졌다. 난 나도 모르는 새 가슴을 쫙 펴고 힘 좀 쓰는 청년을 자임했다. '몇 번 해봤어요. 미성년자는 아니에요' 소장은 날 꼼꼼히 살펴보다가 선심 쓰듯 공사장 일거리를 주셨다. 


 개인적으로 철거 현장보다는 아파트 신축 현장이나 주택 재건축 공사장을 선호했다. 공사장은 항상 먼지가 많지만 유독 철거 현장은 땡볕에 먼지가 자욱했다. 어느 정도 준공에 다다른 현장은 건물로 인해 그늘이 져 덜 지치고, 현장 분위기도 한결 여유롭다. 바야흐로 뉴타운과 재개발 붐이 일던 시절이었다. 개발 광풍이 온 도시를 휩쓸던 때라 나 같은 공사장 단기 알바생을 어디서나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레이스 봉고차에 올라타고 현장으로 가는 차 안은 적막이 흐른다. 하염없이 긴 하루를 각오해야 할 것이다. 주위를 살펴보니 후드티를 입은 내 나이 또래 녀석들이 여럿 보인다. 우린 주로 벽돌이랑 흙을 옮기는 일을 했다. 벽에 나사를 박는 기술자 아저씨를 보조하기도 하고, 여러 차례 트럭이 물자를 쏟고 가면 실어 나르는 일도 우리 몫이었다. 난 잠깐 쉴 때마다 공사장 한편에 마련된 정수기 옆에서 커피믹스를 타 마시며 시계만 살폈다.

 공사장은 점심시간이 되면 밥은 무조건 순대국밥이나 설렁탕을 사줬다.  늘 당이 모자라니 식후엔 식당 자판기에서 달곰한 커피를 연거푸 뽑아 마셨다. 군대 훈련소 때나 느꼈던 당을 향한 갈증이 엄습했다. 옆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저씨도 종이컵을 들고 당을 주입하고 있었다. 커피 타임엔 그동안 말 한마디 없던 아저씨들의 질문공세를 받는다. 뉴페이스의 출현은 그들의 오락거리였으니까. 나이 든 인부들은 시시덕거리며 힘이 없어 주저앉고 싶은 날 붙들고 농담을 따먹었다. 난 무시해버릴까 생각하다가도 그러다 또 힘든 일을 받으면 어쩌나 싶어 또박또박 답했다. 밥을 먹고 현장으로 돌아가니 다들 약속이나 한 듯 낮잠을 청했다. 어차피 저녁은 주지 않을 테니 체력을 아껴야 했다. 공사장 주위에 널린 박스를 아무렇게나 깔고 누웠다. 그렇게 어렵사리 7시까지 버티면 두툼한 돈 봉투를 받을 수 있었다. 소장 아저씨는 다른 데보다 더 많이 주는 거라며 말도 안 되는 생색을 냈다. 너 정도 일하는 앤 쌔고 쌨다면서도 내일 또 오라고 재촉했다.


 며칠 전 늦은 저녁까지 일하고 집에 가다가 도로 공사 현장을 바라봤다. 신호 대기 중이라 짧은 시간이었지만 잠시 쉬고 있는 인부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종이컵을 들고 커피를 마시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설탕 크림이 잔뜩 들은 커피믹스일까. 난 무심코 그들의 고된 하루를 상상했다. 노동이 주는 신성한 기쁨에 대해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 몸을 씻고 삼겹살에 김치를 구워 먹는 시간을 상상했다. 식탁에 앉아 오늘을 무사히 마쳤다는 사실을 만끽하겠지. 난 불현듯 빈 종이컵을 구기며 현장으로 돌아갈 때 느꼈던 아스라한 피로감을 떠올렸다. 그건 확신에 가까운 기쁨이라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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