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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민진 Mar 18. 2021

헬스인도 채식이 필요해

소재 <비건>

  근처에 줄줄이 늘어선 식당을 스쳐 지나갔다어느 집은 사람이 가득했고어느 집은  비어있었다눈여겨봤던 곳은 불이 꺼져있었고 시간 마음을 줬던 곳도 폐업한  오래다내가 먹을만한 식당이 없었다어디도 내키지 않았다배가  고픈 거면 다행인데 방금 운동을 해서 허기진 데도 마음 놓고 먹을 곳이 없다그건 마치 지구본을 앞에 두고 내가 갈만한 곳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여기나 거기나 거기서 거기다결국 모든 선택을 거부하고 습관처럼 초밥집 문을 열었다선택하지 않으면 실망할 위험도 낮아지니까 습관을 따랐다사장님은 딱   왔네 하는 얼굴이시나를 향한 환대는 매출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단골을 향한 적절한 반응이었다 코로나 시대의  자영업자를 위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드렸다수많은 연어와 광어방어가  젓가락질로 사라졌다.


 요즘 바람이 있다면 식당들이 한 입만 찬스를 메뉴에 넣었으면 좋겠다. 테이크아웃 커피점처럼 바깥으로 창을 내서 '한 입만'을 주문한 이에게 한 숟갈씩 떠먹여 주면 얼마나 좋을까. 가격은 밥숟갈은 천 원, 티스푼이면 오백 원 어떨까. 초밥 한 입, 불닭 한 입, 메밀국수 한 입. 선택의 부담은 줄어들고 다채로운 맛의 세계로 떠날 수 있으니까. 업주들도 박리다매 효과가 있지 않을까. 걸으면서 먹는 게 소화도 잘될 텐데. 유유히 배를 채우고 스치듯 골목을 빠져나갈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바람은 최근에 체중이 불어 신경이 날카로워지면서 한 상상이다. 뭘 먹을 때마다 고민이 든다. 배가 고파지면 죄책감이 사라졌다가 배를 채우면 다시 가책을 느낀다. 왜냐하면 몸무게가 거의 칸첸중가 손톱바위 꼭대기까지 올라섰다. 매일 가다시피 했던 초밥집도 뱃살 때문에 덜 간다. 이마트에서 매주 사던 칼집 삼겹살도 더는 주문하지 않는다. 사장님은의고정 매출이 줄어든 셈이다. 내가 지금 힘을 보탤 곳은 자영업자보다는 위태로운 환경과 고통받는 동물들의 평화다. 사실 그건 거짓말이고, 오직 여름에 입을 반팔티 때문이다. 살이 쪄서 그간 사놨던 라코스테 피케 티셔츠를 다 당근 마켓에 올려야 할 처지다. 삽시간에 몸무게를 줄여내지 못하면 파워셀러가 되는 것도 시간문제다. 위기탈출을 위해 풀때기를 먹어야 한다.


 요즘 장을 볼 때도 고기 대신 두부와 버섯을 산다. 고기로 편중된 식습관을 개선하고자 한다. 며칠 전에 냉장고를 열었는데 소와 닭과 돼지가 한가득했다. 냉동고를 여니 대패삼겹살이 가득했다. 여기가 정육점이야. 도대체 한 달에 몇 마리씩 죽이면서 사는 걸까. 모든 살생을 거부하며 세균마저 죽이는 게 두려워 목욕도 하지 않았던 자이나교도들이 날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 식물의 뿌리를 뽑는 것이 학대라고 생각해서 뿌리채소도 먹지 않는 그 인도 사람들은 날 위해 기도해줄까. 그런 생각을 하니 스스로가 되게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봉준호의 <옥자>를 봤을 때도 저녁에 삼겹살을 구워 먹은 사람이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육포를 씹으면서 읽었던 작자다. 근데 최근에야 조금이라도 고기를 덜 먹어야겠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왜인지 생각해보니 들리는 게 있어서다.


 최근에 채식주의자를 지향하는 분과 얘기를 나눴다. 그는 동물을 좀 덜 먹어보려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에게 주워들은 게 좀 있다. 동물을 많이 먹으면 지구 온난화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온실가스와 이산화탄소 배출의 상당량이 고기를 가공하고 조리할 때 생기니까. 지구 온난화는 해수면을 상승시키고 이상 기후를 불러일으키는데 그 주요 원인으로 동물 단백질의 과도한 섭취가 있다. 환경을 위해서 인류는 꽤 많은 운동을 벌이지만, 저녁 식탁 메뉴만 바꿔도 지구를 위해 꽤 많은 걸 해줄 수 있다는 건 잘 모른다. 이런 얘기를 나눴는데 그날 뉴스에 황새들이 화성 습지에 모여있는 모습이 보도됐다.


 황새는 환경에 민감해서 무리 지어 다니지 않는다. 적당한 곳을 찾아 자주 이동하고, 혼자서 우아하게 걸어 다니며 논다. 나랑 비슷하다. 식탐도 별로 없어서 물고기 한 마리 정도 먹으면 그만이다. 이건 다르다. 그런데 지난겨울 황새 스무 마리가 함께 모여 겨울을 나는 모습이 포착됐다. 집합 금지가 길어져서인지 황새들이 집합한 게 뉴스가 된 건가 했더니 이상기후로 인한 현상이라고 한다. 전문가에 따르면 계속된 한파로 얼지 않은 지역을 찾다가 모여든 거라고 한다. 이번 겨울철 기록적인 폭설과 흔치 않은 한파는 지구온난화에 따른 극단기후 현상의 한 예로 봐야 한다는 게 기상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하긴 지난겨울이 춥긴 했다. 2월까지 눈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매서웠으니까. 코맥 매카시의 <로드>에 나오는 잿빛 도시처럼 지구가 병들어 보였다. 어차피 나가지도 못하는데 다 얼어버리라 저주를 하기도 했는데, 근데 막상 옹기종기 붙어있는 황새들을 보니 그런 생각이 싹 가셨다. 아가들이 더 따듯한 곳으로 떠나자고 의견 일치를 볼까 봐 불안했다. 느닷없이 센트럴 파크의 오리들이 어디로 갔는지 행방을 따져 물으며 궁금해하는 '홀든 콜필드'처럼 호밀밭의 파수꾼이 된 기분이었다. 근데 황새가 어떻게 생겼더라. 두루미 백로 왜가리랑 뭐가 다른 거지. 


 내가 비건을 지향하는 분을 만났을 때 인상적이었던 건 당당한 태도였다. 엉성한 채식주의자여도 괜찮다는 인식이 멋있었다. 채식주의자를 입에 올리는 순간 지키지 못하면 부끄럽고 언제 어디서 비꼬는 말이 들릴지 모르는 부담이 없어 보였다. 오히려 부족함을 드러내고 동기부여를 중요시했다.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거나 유난을 떨기보단 SNS에 올리면서 노출시키는 걸 선호했다. 이제 인스타그램을 들어가도 쉽게 #채식주의 #비건과 같은 문구를 볼 수 있다. 이렇게 채식주의자라는 용어에 부담감이 줄어든 이유는 셀럽들의 영향도 큰 것 같다. 예를 들면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를 보고 나탈리 포트먼이 고기를 끊은 건 유명한 일화다. 국내에도 이효리를 비롯한 여러 스타가 채식주의자라는 인식이 가까워질 수 있도록 선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몇 년 전만 해도 육식에 대한 논의보다는 개고기 식용 반대에만 모든 쟁점이 맞춰져 있었다. 요즘엔 더 나아가 동물을 먹지 않는 삶에 대한 얘깃거리도 풍성하다. 이른바 동물권 운동이 내 귀에도 들리기 시작했다.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주는 사랑만큼 가축의 복지를 걱정하는 뉴스도 나온다. 매끈한 생산공정에 숨겨진 가축의 고통을 모른 척하고 죄책감을 덜어보려는 위선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적어도 열흘이라도 고기를 안 먹으려고 시도하고 있다. 물론 동물보호라는 거창한 의도도 있지만, 그보다는 나를 위한 마음이 더 컸다. 알려졌다시피 붉은 육류를 다량 섭취하면 심장 질환 발병과 조기 사망 위험이 매우 증가한다. 어디 그뿐인가 암으로 인한 사망률도 확 올라간다. 암보험을 비싸게 드는 것보다 그냥 고기를 끊는 게 낫다. 장기적으로 보면 앞으로는 곤충을 먹게 될 거라는데 고기와 작별해야 할 때를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처음엔 고기를 줄이겠다는 결심이 확고했지만 2주가 채 지나지 않아 육즙이 흐르는 항정살과 부드러운 스팸이 다시 냉장고를 채웠다. 한 번 무너지기 시작하니 걷잡을 수 없었다. 덜 먹으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구내식당에 나오는 제육볶음을 넘치게 펐고, 연일 치킨과 족발을 배달해 먹기 시작했다. 마치 우리 아버지의 금연 결심처럼 말만 많아졌다. '내가 말이야 이렇게 고생하면서 일하는데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나.'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정신 승리에 도취했다. 난 고기를 좋아해도 너무 좋아한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초콜릿을 끊지 못해서 재기에 실패했던 것처럼 나 역시 고기 때문에 뱃살과의 전쟁에서 패배했다. 올해만큼은 초콜릿 복근을 되찾겠다는 굳은 결의가 무너져버렸다.


 모든 문제는 고기반찬이 없으면 금세 배가 고파진다는 거다. 풀때기만 먹어선 포만감이 오지 않는다. 무엇보다 운동할 때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나는 집에만 오면 고대 로마 상류층들이 맛있는 음식을 계속 먹으려고 토를 해서 속을 비워냈던 보미토리움에 온 기분이 든다. 나는 뱉어내지도 않았는데 늘 다 비워진 것처럼 새로운 고기를 탐한다. 노브랜드 닭꼬치는 지옥의 맛이다. 가끔은 내 정서 불안과 알 수 없는 결핍이 식욕을 촉진한다고 믿던 때도 있었다. 근데 그건 마치 쳇 베이커가 평생 마약을 한 이유와 별다를 게 없었다. 쳇은 무대에서의 긴장감 때문에 마약을 했다고 했지만 사실은 마약을 하기 위해서 공연을 한쪽에 가까웠다. 나도 실체를 알 수 없는 공허 때문에 고기를 찾는 게 아니라, 실은 그냥 배고팠을 뿐이었다. 헬스를 한다는 핑계로 고기에 집착했다. 식욕은 정서적인 문제와는 하등 관련이 없고 오직 내 의지의 문제라는 게 명명백백하다. 기뻐도 슬퍼도 우울해도 신이 나도 늘 고기가 당기지만 좀 참아야 한다. 비건 보디빌더들이 자신의 식단을 공유하며 채식을 유도하고 있다. 그들의 우람한 팔뚝을 보고 염치가 없어서 고기 없이는 운동을 못하겠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다. 나도 이슬아 작가처럼 힙해지기 위해서라도 비건을 지향하려고 한다. 이참에 고기 좀 줄이면서 지구를 위해 노력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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