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그림 보고 가시라우! 예술임더!
이 이야기는 마봉 드 포레 작가님과 함께 작업한 공동작품임을 알려드립니다. '요술램프'의 후속편 제2탄으로, 본편 스토리는 모르셔도 되지만 아래의 외전 1탄은 먼저 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
https://brunch.co.kr/@mkchoi2021/196
https://brunch.co.kr/@mkchoi2021/197
이 시리즈에 실린 모든 이미지는 마봉 드 포레 작가님께서 직접 AI를 사용하여 만드신 작품입니다.
글은 안 읽으셔도 그림은 꼭! 보고 가세요. ^^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아마 외국 정령인 넌 잘 모르겠지만,”
“뭐냐? 기분 나쁘게 ‘넌 잘 모르겠지마안~’으로 시작하는 건?”
“별뜻 없어. 발끈하지 좀 말고 들어 봐.”
“그래, 뭔데? 내가 모르는 그게.”
“하여간... 한국에는 설날이 둘 있거든?”
“뭐? 뭣 땜에?”
“(거 봐. 모르네.) 쓰는 달력이 둘이라서. 하나는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기간을 1년으로 세는 ‘양력’. 다른 하나는 ‘음력’이라고, 달이 지구를 도는 공전 주기를 한 달로 세는 달력이야. 그래서 ‘양력 1월 1일’과 ‘음력 1월 1일’, 이렇게 설날이 둘인 거지. 각각 ‘신정’이랑 ‘구정’이라고 불러.”
“딱 들어도 둘이 안 같게 생겼는데. 그럼 구정에도 놀아?”
“어. 구정에는 설날 당일과 앞뒤 하루씩 해서 3일이나 놀아. 올해는 주말까지 껴서 무려 5일 연휴래.”
“오~ 내가 여태 왜 이걸 몰랐을까? 아 맞다~ 너 작년 여름까지 백수였지.”
“... 이제 며칠 뒤면 구정이거든? 구정에는 돌아가신 조상님한테 ‘차례’라는 걸 올리는데...”
“응, 그런데?”
“그래서 말인데...”
“뭐야? 뭔데 이렇게 뜸을 들여?”
“처음으로... 부모님이랑 할머니를 위해서 차례를 한번 지내볼까 하고.”
“흠~? 갑자기 왜?”
“네가 저번에 그랬잖아. 싫은 기억을 다른 걸로 덮어 보라고. 과연 뭘로, 덮을 수나 있는 건지 잘 모르겠지만... 조금이나마, 갚아 보고 싶어.”
“... 좋아. 그 차례인가 뭔가 한번 해보지 뭐. 뭘 어떻게 하면 돼?”
“조상님께 드릴 상을 차리면 돼. 예전엔 무리해서라도 음식을 많이 하는 걸 미덕으로 여겼는데, 다 허세라고 요새는 좀 간소하게 바꾸자는 추세거든? 직접 요리 안 하고 사서 올리기도 하고. 그러니까 우리도 부담 없이 하자. 연휴 시작하기 전에 내가 시장에서 전이랑 고기랑 나물 몇 종류 사 올게.”
“야야,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원래는 직접 다 만드는 거라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 아빠랑 엄마, 할머니잖아. 근데 파는 음식으로 때우려고?”
“그게 어때서? 난 전이나 나물은 할 줄도 몰라.”
“까짓 거 내가 하면 되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냐? 네가 잘 몰라서 그렇지, 차례용 상차림은 일반 상차림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이 자식이? 뭘 잘 모르는 건 너야. 내가 한때는 말이다? 너희 인류의 첫 문명인 수메르의 식문화에 큰 영감을 줬단 말이지. 오죽 감읍했으면 인간들이 내 레시피를 점토판에 새겼다는 거 아니겠냐, 하핫! 나만 믿어.”
“전혀 못 믿겠는데요. 허풍을 떨어도 정도껏 해야지... 자, 이거 봐. 이게 차례상이란 거야. 이 많은 걸 하루 만에 다 만들 수 있겠냐고.”
“이야아~ 사진으로 보니까 더 의욕이 불타오르네. 좋았어! 넌 레시피나 가져와. 참여하고 싶으면 보조나 좀 하든가. 하긴, 네가 나설 기회가 있을지는 모르겠다만서도. 하하하하하!”
이때만 해도 난 알지 못했다.
그런 지옥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은.
이번 일은 명백한 인재(人災), 아니, 정령이 벌인 일이니 정재(精災)라고 불러야 할까.
재앙을 부른 첫 번째 원인,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
“뭔 놈의 야채를 이렇게 많이 사 왔어? 뭐 어디 마을 하나 먹여 살릴 셈이야? 씻어도 씻어도 끝이 없잖아!”
“쓰읍! 투덜거릴 틈이 있으면 손이나 더 빨리 움직여.”
재료를 일일이 씻고 준비하는 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큰일을 치르기엔 턱없이 작은 싱크대와 좁은 부엌, 겹치는 동선 등, 평소엔 별 문제가 안 되던 것들도 일의 진행을 더디게 만드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 와중에 지니가 쓸데없는 욕심까지 부린 탓에 처리할 양 자체도 많아서, 재료 준비에만 반나절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그래도 제일 지루하고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을 끝냈으니까, 이제 한숨 돌려도 되려나 싶었건만.
“어? 이거 왜 이러냐?”
“왜? 뭐가 잘못됐어?”
재앙을 부른 두 번째 원인, ‘선유자익(善游者溺; 헤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빠진다. 자기 재주만 믿고 자만하다가 화를 당한다는 뜻)’.
“이게 왜 안 불지?”
“그거 고사리 아니야? ‘하루 전날에 불렸다가 삶는 게 좋다’고 메모에 적은 기억이 나는데, 이제 담근 거야?”
“...... 하하, 내가 어쩌다 이런 실수를... 그럼 이따가 맨 마지막에 하면 되지.”
“삶아서 그 물에 담가두면 더 빨리 불긴 한대.”
“그래? 역시 다 길이 있어~ 그치?”
다 그런 건 아니었다.
“어디 간이 맞나... 으악! 너넨 이렇게 쓴 걸 어떻게 먹냐?”
“도라지? 그래도 잘 만들면 못 먹을 정도는 아닌... 이거 왜 이래. 너 또 뭐 잘못한 거 아냐?”
“왜 걸핏하면 다 내 탓인데! 네가 써준 대로 했거든?”
“내가 준 메모 내놔 봐.”
“그게... 어디 뒀, 더라?”
“여기 처박아두고 보지도 않았구만? ‘쓴맛을 제거하기 위해 소금물에 비벼 씻고, 흐르는 물에 잘 헹군다’, 이거 했어?”
“...... 어쩌냐, 도라지 그거밖에 없는데.. 미안.”
여기까진 그래도 견딜만했으나, 전을 부칠 때는 정말 미치고 펄쩍 뛸 노릇이었다.
“어라? 밀가루가 너무 떡지는 걸? 이거 괜찮나?”
“지니, 그거 밀가루 먼저 묻히고 달걀물 묻히는 거야.”
“어우 벌써 갈색.. 속재료 익히다가 겉에 달걀 다 타겠다. 그냥 미디엄 레어로 하면 안 될까?”
“무슨 스테이크야? 불을 줄여서 은근히 익히면 되잖아.”
집안 가득 퍼진 기름 냄새에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할 무렵, 지니가 앞치마를 팽개치며 외쳤다.
“뭔 요리가 이렇게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 그냥 수메르식으로 하자! 어차피 네 피 절반은 그쪽이니까.”
“뭔 또 수메르 타령이야. 그러게 내가 첨부터 하지 말자고... 아, 허리 끊어지겠네.”
“잠깐만 기다려. 내가 금방 대영박물관에 가서 점토판 갖고 올게.”
“아 진짜! 헛소리 그만하고 빨리 전이나 마저 부쳐!”
그래도 둘이 꼴딱 밤을 새워가며 쉬지 않고 하니 끝이 보였다. 비록 예정 시각을 훌쩍 넘기고, 가까이서 보면 음식이 영 어설픈 게 티가 나긴 해도. 할머니랑 부모님도 차린 정성을 봐서 이해해 주시겠지.
본격적으로 차례를 올리기 전, 나는 미리 준비한 한복을 꺼냈다. 지금껏 여러 가지 도와준 답례로 지니 것도 한 벌 장만했다.
“자, 이건 네 거야.”
“이게 뭐야? 옷?”
“한국 전통 의상, 한복이야. 너 생긴 게 워낙 외국인이라 어울릴지는 모르겠다.”
“뭐래. 나 정도로 잘생기면 뭘 걸쳐도 어울린다고?”
“알았으니까 빨리 입고 나와.”
“근데 이거, 어떻게 입는 건데?”
우리는 한복을 차려입고 차례상이 있는 거실로 돌아왔다. 제주(祭主)인 나는 혼을 불러 모시는 강신(降神)을 시작했다. 쌀을 채운 향로에 향을 피워 꽂고, 모사기로 준비한 사기그릇에 술을 부었다.
뒤를 돌아보니 지니가 신기한 듯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이제 절할 차례인데, 넌 어쩔래?”
“... 나도 하지 뭐.”
절을 하고, 술을 올리고, 준비한 음식에 수저를 놓은 뒤, 할머니와 부모님의 혼이 드실 동안 우리는 가만히 서서 기다렸다. 곁눈으로 훔쳐보니 지니도 나름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적당하다 싶을 만큼 시간이 흐른 후, 나는 수저를 거두고 절을 올려 혼을 배웅했다. 처음 올려보는 의식이라 긴장한 나머지 미처 몰랐었나. 안녕히 가시라고 속으로 인사를 하는데, 그제야 목이 꽉 막혀왔다.
정말 오셨을까..? 괜히 점잔만 빼지 말고 넌지시 말이라도 한번 걸어볼 걸 그랬나.
내가 멍하니 서있기만 하자 지니가 나지막이 물었다.
“이제 뭐 할 차례야?”
“... 끝났어.”
다 끝났다. 준비한 시간에 비하면 허무할 정도로 빨리.
슬슬 상을 치워야 하는데, 지쳐서 그런지 꼼짝도 하기 싫었다. 나는 국물이 졸아든 떡국 네 그릇(세 개는 할머니와 부모님 것, 나머지 하나는 다른 조상도 올 수 있다며 지니가 놓았다.)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번 주말에 나 어디 좀 갔다 올게.”
“어딜?”
“... 부모님 유골함이 있는 곳.”
“... 나도 가련다. 심심하니까.”
“잠시 밖에서 기다려 줘.”
“어. 난 이 주변에서 산책하고 있을 테니까, 넌 천천히 하고 와.”
나는 봉안당 안으로 들어갔다. 머뭇거리는 걸음마다 손에 든 꽃다발이 자그맣게 숨을 내쉬었다.
전에 딱 두 번, 여기 와본 적이 있다. 처음엔 아빠와 둘이서. 그다음엔 고모를 비롯한 친척들과 함께. 엄마의 유골함 옆에 아빠의 자리를 마련해 주신 고모는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전부”라며 더는 요구하지 말라 하셨다.
희뿌연 기억을 더듬으며 나는 부모님의 유골함을 찾아다녔다. 마침내 ‘신지훈’이라는 이름과 다소 낯선 또 하나의 이름이 내 발길을 붙잡았다. 나란히 놓인 하얀 유골함 두 개와 젊은 남녀의 사진.
아빠, 그리고 엄마.
꽃다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말이 입 안에서 한참을 맴돌다가,
“... 저, 왔어, 요.”
뚝뚝 끊어져 나왔다. 그게 울음의 전조라는 걸, 나 또래에서 시간이 멈춘 아빠와 나보다 어린 엄마의 얼굴을 보고 알았다.
“흐윽... 미안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 흑... 이렇게,”
이렇게 꽃 같은 사람들이.
“어떡해... 흐, 어떡해... 미안해애...”
바스스... 움츠러드는 품 속에서 꽃이 흐느꼈다.
“다음 생에는, 흑.. 둘이 꼭, 오래오래 살아..”
내가 없는 세상에서.
스스스.
겨울바람에 앙상한 가지가 몸을 떨었다.
기다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동안, 나는 여러 그루의 나무를 보았다. 저래서 나중에 다 살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옹기종기 심어진 작은 소나무들, 그리고 지금 내 앞에 서있는 이 벚나무.
전부 누군가의 이름이나 어떤 표식을 달고 있었다.
알고 보니 수목장이라고, 화장한 유골을 나무 밑이나 잔디, 화초에 뿌리는 장례법이란다.
“흙에서 태어난 자, 흙으로 돌아가리... 랬나?”
나는 벚나무의 몸에 손바닥을 갖다 대었다. 얇게 뜬 흉터와도 같은 껍질의 감촉을 느끼며 스르륵 눈을 감았다. 그날, 내게서 멀어지던 둘의 잔상이 어둠 속에서 선명히 떠올랐다.
- 비록 꽃은 땅에 떨어져 흙으로 돌아갔지만, 보렴. 이렇게 씨앗을 남겼지?
이토록 멀리 왔는데도.
- 꽃은 알고 있었어. 그래서 기꺼이 자신의 자리를, 목숨을 내어준 것이란다. ‘희망’이란 것에게.
지워지지 않아.
“... ...”
무심코 벌어진 입술은 겨울에 잘못 핀 꽃처럼 차마 말을 맺지 못했다.
‘릿트’.
당신이 남긴 희망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나요?
https://www.youtube.com/watch?v=i0LRtNwiORY
(Bob Bradely & Thomas Balmforth - Flowers)
여러분들은 모두 누군가의 소망이자 희망이란 걸 잊지 마세요.
이제 2주 뒤면 설입니다. 다 같이 함께 즐기는, 화목한 설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