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첫 일요일의 2020년 회고
2020년은 별 일 없이 지나갔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별 일과 함께 보냈다. 코로나19 때문에 일도 하나도 못하고, 재미도 없고, 사람도 못 만나고, 여행도 못 가고, 어쩌고 저쩌고 했는데 정말 '하나도' 못한 건 없더라. 작년보다 횟수나 규모가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코로나 시대를 몸 건강히 지나온 것, 고군분투하더라도 불안과 함께 살아온 것 자체가 의미 있다. 코로나 때문에 일을 잃은 사람도, 내내 힘들었던 사람도 있었을 텐데 이만큼 일을 하고 안정적으로 돈을 벌고 그나마 경험을 얻을 수 있었던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참 새삼스럽다.
2019년 회고와 2020년 상반기 회고를 다시 읽어봤다. 말이 씨가 된다고, 하반기/내년 중 N잡 실험을 해보고 싶다고 썼는데 7월 중순부터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하반기에는 공공그라운드를 포함하여 총 3개의 조직과 각기 다른 정도로 일했다.그때 바랐던 일을 모두 해서 소름이 좀 돋았다: '텍스트클럽' 같은 콘텐츠 기획, 커뮤니티 빌딩, 시스템 빌딩(매뉴얼).
몸 아프지 않게 운동도 많이 했고, 마음 돌봄의 영역에도 나를 꾸준히 데려다 놓았다. 일이 늘어나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나 다른 취미를 할 물리적인 시간이 많지 않았던 것은 조금 아쉽다.
마음 아픈 일이 있었고 속상하고 불편한 일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 속에서 1년을 잘 보내왔기 때문에 후회도 미련도 없는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가능하면 많이 적어두고 자주 들여다보는 것이 사는데 도움이 되니 2020년의 "올해의 OO"을 꼽아보았다.
#이사
올해 무지 큰 변화는 집을 옮긴 일. 거의 삶이 바뀌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출퇴근 시간이 줄어드니 체력도, 시간도 여유가 생겨 다른 일을 벌여보거나 운동을 다닐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이사 온 동네는 원래 자주 놀러 다니던 곳이라 익숙하고, 번화가인데다 집과 지하철역이 충격적으로 가까워 장점이 많다.
내 취향으로 채운, 쾌적하게 생활할 수 있는 내 집이 있다는 게 너무 좋다. 작은 집이지만 좋아하는 친구들을 초대해 집들이도 몇 번 했는데, 우리 집 시그니처 요리를 개발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내 집에 놀러 와 시간을 보내고 가는 것이 좋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아직 초대 못한 친구들도 곧 놀러 올 수 있기를.
#사랑
가족의 사랑, 친구의 사랑, 동료의 사랑, 모든 종류의 사랑을 생각하고, 주고, 받았다 (연애만 못했...). 상반기 회고에서도 중요한 꼭지로 다뤘었다. 하반기에 상담을 시작하며 (밑의 항목 참고), 사랑에 관해 더 많이 생각해보고 더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나는 사랑을 참 많이 받는 사람이구나'라는 감각을 새롭게 얻었다. 사소한 것에서도 감사함을 느끼고, 베풀 수 있는 마음이 커졌으면 좋겠다.
#번아웃
8월에 번아웃이 왔다. 미친 누수가 생겨 공사 계의 바흐님과 건물을 돌아다니던 중이었는데, 계단에서 당장 굴러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해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들었다는 게 위험 신호로 해석되었다. 그냥 놔두면 무기력으로 우울로 혹은 공황상태와 비슷한 증상으로 이어질 것 같아 대표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리고 즉시 나를 돌보는 모드로 전환했다.
#일의 구조 실험
상반기에는 코로나에 적응하며 지냈던 것 같다. 하반기부터는 공공그라운드와 왈, 라이프쉐어와 함께 일의 실험을 이어왔다. 사실 사이드 프로젝트처럼 참여하는 형태로 살살 시작했는데, 내 성향상 에너지를 많이 들이다 보니 3개의 직업처럼 무게감이 더해졌다.
왈에서는 명상 서비스가 시즌 멤버십으로 전환되며 커뮤니티 기능의 필요가 생겼고, 커뮤니티 매니저 경험을 토대로 서비스/커뮤니티 시스템을 만들었다. 느슨한 협업으로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일이 조금씩 늘어났고 12월에는 고정으로 진행하는 워크샵도 있었다. 일반 멤버에서 운영진으로 역할이 변화하며 서로 다음 스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라이프쉐어의 경우에는 말 그대로 '사이드 프로젝터'로 합류한 것이라 단기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에 가깝다. 현재 해당 팀에서 작성해둔 매뉴얼을 검토하고, 조금 더 통합된/더 쉽게 전수 가능한 자원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매뉴얼을 재작성했다.
#다양한 프로젝트
일의 구조를 비틀어보는 실험 이후로 내가 하는 일을 프로젝트 단위로 끊어서 생각하는 습관이 더 굳어졌다. 공공그라운드의 업무도 크게 쪼개면 이렇게 세 가지 프로젝트로 나누어볼 수 있다.
1) 공공그라운드 기획 프로그램 <텍스트클럽>
낭독회로 출발해서 북 토크 형태로 마무리된 기획. 텍스트를 매개로 하기 때문에 북 토크 방식이지만, 나는 평면의 텍스트를 입체적으로, 감각적으로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창작자의 이야기와 독자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텍스트 너머 생활과 연결되는 대화를 주 재료로 한다. 다른 북 토크에 비해 책과 창작자의 이야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적었다. 총 6회 정도를 구상했지만, 코로나가 심해지며 4회까지만 간신히 마쳤다. 내가 만든 기획 중 가장 아낀 기획이어서 내년에도 꾸준히 이어가 보려고 한다.
2) 홈페이지 리뉴얼
결제 기능이 없는 홈페이지를 2년 정도 사용하다가, 마침내 예약과 결제가 가능한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처음 만들 때에는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는데 (...) 예상치 못한 일들로 작업이 늦어져 만드는 작업만 2019년 12월부터 2020년 5월까지 이어졌다. 런칭 이후에도 자잘한 QA와 이슈가 계속 발생하고 있어 사실상 아직까지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
이 프로젝트는 PM으로 참여했는데, 외주사의 UX기획자가 갑작스럽게 퇴사하는 바람에 기획 단계부터 QA까지 거의 모든 내용에 관여하게 되었다. 지금 완성된 홈페이지가 아주 편한 구조는 아니어서 아쉬운 부분이 많다.
3) 공공일호 출판 프로젝트
공공그라운드와 공공일호의 이야기를 담은 출판 프로젝트. 원래 2020년 12월에 발간되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해관계자가 많은 프로젝트라 모든 일정이 뒤로 밀렸다. 공공일호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로 1개 꼭지를 맡아 원고를 썼고, 입주사 대표님들 그리고 샘터사 대표님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샘터사 김성구 대표님 인터뷰는 기억에 남는데, 샘터의 정신과 가치를 공공그라운드만큼 잘 살려낼 수 있는 기업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간되어도 시중에 유통되지는 못할 책이라 아쉽지만 개인적으로는 회사와 함께 한 텀 정리해볼 수 있는 기회여서 의미 있는 작업이다.
4) 그밖에: 킁킁콘서트, 코워킹 스페이스 종료, 끝없는 공사, 끝없는 커뮤니케이션
>> 꼭 하고 싶은 말: 공공일호는 40년 넘은 건물이라 자잘한 보수공사가 끊이지 않는다. 입사 첫 해부터 별의별 수리와 공사를 지켜보았는데, 올해는 문자 그대로 1년 내내 공사 중인 것 같다. 특히 올해는 50일이 넘는 장마로 정말이지 너무 힘들었다. 세 번째 텍스트클럽은 행사 당일 아침 극장의 누수로 급하게 공간을 옮겨 진행할 만큼, 건물이 매일같이 물을 뿜어내서 대대적으로 방수 공사를 다시 했다. 각종 부품의 이름과 관리 방법을 꿰고 있는 나를 보며 매번 놀란다. 파트너 조이가 정말 고생했던 한 해.
#일에서 뻗어나간 활동
일에 관한 열망이 굉장히 컸던 해. 빌라선샤인을 통해 새로운 분들을 알게 되었고, 인스타그램으로 느슨하게 연결되거나 동네 친구가 되는 등 얻은 것이 많다. 한편, 일에 중간관리자의 성격이 꽤 강해지면서 다른 조직의 팀장급 혹은 중간관리자는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했다. 중간에 번아웃이 오며 활동을 많이 줄인 탓에 1년을 채우진 못했으나, '오늘부터 팀장 1일차' 스터디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커뮤니티 활동: 헤이조이스, 빌라선샤인 시즌4, 라이프쉐어 다이빙클럽
기타 활동: 원티드 콘텐츠 마케팅(6주 과정), '오늘부터 팀장 1일차' 스터디, 윤성원님 코칭, 포트폴리오 워크샵
왈이네 멍상가 재로에게서 영감을 얻은 꼭지. 2020년의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유희경 시인님이다. 파트너사로서 함께 일한 것은 2019년부터였지만, 2020년 들어 부쩍 가까워지면서 텍스트클럽은 물론 다른 부분에서도 큰 도움을 받았다.
기획이 막히거나 일하는게 힘들어질 때 시인님의 피드백과 격려가 나를 지탱해주었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섬세한 분이고, 말에 다정함을 듬뿍 얹어주시는 분이라 시인님의 말 한마디로 하루를 버틴 적도 있었다. 시인님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고 점심 먹으며 나누는 이야기들도 재밌어서 올해도 기대된다. 히히.
#현대무용
2017년 국립현대무용단 무용학교 수강 이후로 원데이 클래스만 몇 번 갔다가, 2020년 1월부터 11월까지 뭅뭅모던핏에서 정규 과정을 들었다. 기초반에서 초급반으로 올라가 김민진 쌤, 강다솜 쌤과 함께 춤췄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오던 시기에는 도망가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무용 시간에 몸 쓰면서 머리를 비울 수 있어서 좋았다. 조금이라도 상황이 나아지기를. 얼른 다시 가고 싶다.
회사 밖 동료에서 친구로 진화한 친구들과 '바쁘다 바빠 밴드'를 결성했다. 줄여서 '바바밴'. 너무 바쁜 나머지 첫 모임은 줌으로, 첫 합주는 세 명이서 했다. 나는 얼떨결에 이 밴드의 유일한 가야그머가 되었다. 중학생 때 가야금 전공했던 것을 이렇게 써먹다니. 졸업 이후에는 악기를 제대로 다룬 적이 없어 매우 걱정된다. 우리 밴드는 협찬품, 공연장, 게스트, 팬클럽까지 있는데 완성된 음악은 아직 없는 독보적인 밴드다. 올 7월에 공연 예정.
#회사 밖 동료에서 친구로
바바밴과 마찬가지로 회사 밖의 동료가 친구의 영역으로 넘어온 일이 많았다 (상반기 회고에서 다룸). 하반기로 갈수록 서로의 집으로 놀러다닐 수 있는 동네 친구도 더 많이 생겼다. 일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가 수월했고, 감사하게도 다른 결의 마음도 잘 맞아 가까워졌다. 2020년의 가장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카카오프로젝트100 플랫폼에서 유희경 시인님이 진행하셨던 프로젝트. 서랍 속에 굴러다니던 연필을 깎고, 이름을 붙이고, 무엇이든 해서 몽당연필로 만드는 프로젝트였다. 필사, 크로키, 낙서, 그림, 회의록, 일기 등 다양한 인증샷이 올라왔다.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서로의 인증글에 따뜻한 댓글을 달고 소통하기 시작하면서 작은 커뮤니티가 되었다. 프로젝트 종료를 며칠 앞두고 작은 모임도 열었는데 (거리두기 단계를 고려하여 진행), 서로의 존재조차 몰랐던 사람들이 웃음을 나누고 격려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모임 기획에 숟가락 얹어 참여했는데 한 것에 비해 너무 많은 감사를 받아 몸 둘 바를 몰랐다.
몇 년 전, 손편지를 보내주는 #서울에서_우주 라는 프로젝트를 했다가 금방 닫았던 적이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동료들에게 편지를 쓰다가 손편지를 쓰는 기분이 참 괜찮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딱 하루 동안만 신청을 받아 열몇 통의 엽서를 썼다. 친한 친구들도 있었고, 올해 처음으로 알게 된 분들도 있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보냈는데 요 며칠 새 도착 소식이 속속 들려온다. 재미있고 뿌듯하다. 앞으로도 종종 해볼 생각.
#그림자책
3년 전부터 만들고 싶었던 책. 나는 그림자 덕후라 그림자 사진을 수집한다. 누가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보고 싶어서 독립출판을 고려했던 그림자 책. 컨셉진에서 운영하는 '100일 글쓰기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본격적으로 원고를 모으기 시작했다. 사진마다 글을 붙이기가 어렵고, 조형적으로 예쁜 그림자도 있어서 글이 붙은 사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찍어둔 사진 200+장 중 엄선해서 70장 정도를 모아놓았다. 올해 찍은 사진까지 좀 더 모아 작은 책자라도 만들어보는 것이 2021년 목표.
빌라선샤인에서 유보라님이 진행하셨던 '휴식 박사과정'은 일상의 쉼을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휴식을 새롭게 정의하고, 단계별 쉼 조각을 찾아보며 나에게 휴식이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쉼으로 느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과 함께 왈의 멍상을 병행했던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가을 무렵부터는 멍상 권태기가 와서 꾸준히 하기가 어려웠는데, 자비와 깜빡이 모두 그럴 수 있다고 말해주어 위안이 되었다. '다정하게 다시 시작하자'는 말과 '아닛짜(모든 것은 지나간다)'는 말이 도움이 되었다.
번아웃 당시 서울시에서 청년에게 상담을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이 있어 바로 신청했다. 다소 늦어진 10월부터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상담사를 매칭 해주고, 상담비도 지원해줬다 (서울시 청년 마음 케어 최고). 지금은 번아웃을 예민하게 감지할 수 있는 센서도 장착했고, 내 패턴도 파악했다. 마음 돌봄을 위한 활동은 오랫동안 했었고, 또래상담사로 2년 정도 활동한 것 덕분에 생활에서 엄청난 어려움을 겪는 내담자는 아니었다. 상담은 일종의 코칭이나 슈퍼비전처럼 흘러갔고 멍상과 서로 시너지를 내는 작업이었다. 나를 조금 더 믿고 사랑하기 위해서 후속 상담을 진행 중.
예술을 즐기기가 정말 힘든 한 해였다. 어영부영하다가 놓친 것도 있었고, 코로나를 조심하다가 안 간 것들도 있었다. 그래도 레퍼런스 체크도 하고 즐기기도 해야 하는 인간이라 정말 조심히 다녀왔다. 절반 정도는 파랑새극장에서 스텝으로 일하는 동안 곁눈질하며 경험한 것들이다.
무용: 고블린파티 '여우와 돌고래',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 '피버'
전시: 현대카드 스토리지 'ECM', 피크닉 '명상', 성립 개인전 '흩어진 파편들', 소다미술관 '인류사회 2020', '도시제철'
음악: 버둥X정우 '외로움의 곁이니 외롭지 않아', 격조 콘서트 '곽푸른하늘', 버둥X카코포니 '우리의 눈은 네개', 이날치 콘서트 '수궁가', 권나무 '보물같은 시간들'
북토크: 텍스트클럽 01 '오은과 다독임', 02 '박연준과 소란', 03 '박준', 04 '유희경과 밤'
이벤트/축제: 영감의 서재 팝업 행사, 다음 시 페스티벌
올해는 텍스트클럽 준비로 시와 산문을 주로 읽었다. 그리고 '오늘부터 팀장 1일차' 스터디 덕분에 혼자서는 절대 안 읽을 스타일의 자기 계발서, 조직 관리 책도 읽었다.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진 못했지만 적어보니 꽤 된다. 올해 읽은 텍스트 중 좋았던 것들은 아래와 같다. 특히 텍스트클럽에서 다룬 산문집은 모두 몇 번씩 정독+발췌독해서 애정이 있고, 독자로서도 추천.
텍스트클럽의 산문집: 오은 <다독임>, 박연준 <소란>, 박준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없겠지만>, 유희경 <반짝이는 밤의 낱말들>
텍스트클럽에서 다루려던 후보 텍스트: 김태형 <나는 네nez입니다>, 허수경 <가기 전에 쓰는 글들>, 허수경 <오늘의 착각>, 김인환 <타인의 자유>, 고희영 <엄마는 해녀입니다>
문장이 돋보이는 시집: 이원하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오은 <유에서 유>, 유희경 <우리에게 잠시 신이었던>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정세랑 <시선으로부터>
가장 충격적인 텍스트: 유성원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
친구들 책이 여럿 나왔다: 태재 <책방이 싫어질 때>, 김지언, 노영은 <마음도 운동이 필요해>, 최재원 <나의 첫 사이드 프로젝트>
코워킹 스페이스와 커뮤니티의 영감: Ramon Suarez <The Cowrking Handbook>
더디지만 꾸준히 읽고 있는 텍스트: 조지프 캠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Esther Sternberg <Healing Spaces>
2019년에 이어 많은 공간을 다녀보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았다. 재택근무를 했던 날이 많지 않아서 출퇴근 길이나 미팅 가는 길에 들러볼 수 있었는데, 다니면서도 죄책감이 들어 시기에 따라 방문을 조절했다. 작년에 이미 다녀온 곳을 제외하고 올해 인상적이었던 곳은 열개 남짓. 올모스트홈 스테이의 경우 같은 브랜드가 다른 지역에서 숙박시설을 운영하는 경우라, 두 지역과 지역을 담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커머셜: 공간 와디즈, 아케이드 서울, 디앤디파트먼트, 사계생활, 리듬 앤 브루스, 나이스웨더, 신사동 '골목'
숙박: 청운광산 팝업스테이, 올모스트홈 스테이 고창, 올모스트홈 스테이 하동
팝업: 위클리 캐비넷, 앱손 프린터(프로젝트 렌트)
식비 조절을 위해 일부러 집에서 요리를 해 먹는 날도 많았고, 약속이 많이 취소되어 작년보다는 훨씬 더 외식이 줄었다. 왈이네 커뮤니티에서 'ㅇㅇㅋㄷ'라는 미식 모임도 야심 차게 열었으나, 단 한 차례만 만나고 이후로는 흐지부지 되었다. 그 와중에 살아남은 미식 경험을 간추렸다.
2020 유일한 오마카세: 대규스시
2020 최고의 회식: 목금토식탁, 레에스티우
2020 최고의 식사: 도두항식당 '접짝뼈 놈삐국'
올해의 집밥: 강보혜 집밥
올해의 돈카츠: 카츠 바이 콘반
올해의 라멘: 담택
올해의 중식: 홈보이 서울
올해의 안주: 두두, 두루미
올해의 샐러드: 칙피스
올해의 비건식: 강보혜 팝업 식당
올해의 젤라또: 젠제로, 무던
올해의 단맛: 아우프글렛
서울에서 먹는 접짝뼈국: 돈불리제담
공간이 돋보인 카페: 베케, 대충유원지, 앵글 340, 커피 앤 시가렛, 커피 앳 더 플레이스
글을 정리하며, 올해도 2020년의 연장선에서 일의 구조를 고민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 살기 위해서 내 능력과 재능을 다방면에서 검토하는 과정이다. 아직은 하기 싫은 일을 더 많이 해야 할 것 같지만 몇 년 내로 하고 싶은 일만 골라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올해는 '일, 일, 일' 보다 일 바깥의 생활, 일에서 멀어지는 시간을 조금 더 가꾸기로 했다. 일에 미쳐 나를 놓아버리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나를 잘 데리고 살아보기로. '열심히 재미있게 살자'는 내 인생 목표도 자주 떠올리면서.
2021년에는 어떤 키워드를 가지고 갈지 고민해봤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대표님이 말씀해주신 '완급조절'. 사실 2020년을 마무리하며, 일할 때 에너지 배분에 대한 피드백을 여러 명에서 받았기 때문에 - '너무 과하게 에너지를 써서 소진이 걱정됨' - 올해는 정말 유념할만한 키워드다.
또 한 가지는 나를 더 확실하게 믿어줄 것. 이건 예전에 고든 램지 영상의 'Be Bold.'가 떠오른다. 며칠 전 엄마도 '힘들겠지만 못할 것도 없다'라고 했는데 이 문장도 올해 내내 가져가 보기로 했다. 무엇을 하든 내가 내린 결정에 확신을 가질 것. 보다 담대해질 것.
마지막으로는 사랑 속에 살 것. 당연하게 주어지는 것이 없음을 알고, 자주 감사하고, 자주 사랑할 것. 이런 마음으로 한 해를 또 무사히 즐겁게 살아낼 수 있기를. 2021년도 좋은 한 해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