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플로리스트에게도 직업병은 존재한다.
같은 학원이라도 쌤마다 스타일은 조금씩 달랐다. 우아하고 깔끔하거나 화려하고 대담하거나. 물론 난 대담 스타일 쌤의 강의가 더 편했다.
문제는 서로의 스타일을 맘에 들어하지 않는 것을 수강생들이 결국에는 알게 된다는 거다.
하얀 얼굴에 여성스러운 미소를 담고 웨이브 있는 긴 머리 한쪽 어깨로 쓸어 넘기며 우아하게 꽃을 쥐고 있는 뽀얀 필터 속의 플로리스트는 허상이다. 그들의 손은 억세고 거칠다. 각종 알레르기를 달고 살고 성한 관절이 없으며 말도 못 하게 도도하다. 특히 자신이 제작한 꽃에 대한 프라이드가 더없이 뾰족하다.
지금이야 이해한다. 두 쌤이 왜 그렇게 수업 중에 서로 '디스'까지 했었는지.
플로리스트의 시작은 다른 모든 직업이 그렇듯이 예쁘지 않다. 대학원 2학기 등록금을 3개월, 일주일 2번 수업에 쏟아붓는 실로 자본집약적인 학원 커리큘럼을 마치면 바로 꽃길이 깔려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작업실 막내에게는 바닥 쓸기. 걸레 빨기. 화병 닦기, 쓰레기통 비우기가 기다리고 있다. 자신의 샵을 열지 않는 이상 예외는 없다. 많은 경우 처음 몇 달은 꽃을 만지지도 못한다. 그리고 그 꽃의 규모가 클수록 작업이 이루어지는 장소가 넓을수록 다양한 직업군과 오고 가는 협조, 협업이 이루어져야 하고 플로리스트가 그 '다양한'의 제일 아래를 담당한다.
물 한 통을 받기 위해 화장실에서도 눈치를 봐야 하고 기사분들께 배송 완료 장소를 설명하기 위해 반복된 입씨름을 해야 하고 출입문 앞에선 의례적이든 심각하든 기싸움을 각오해야 한다.
자괴감을 느낄 새도 없다.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에 대해서 단단함을 얻기도 전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껍질부터 만들어 내야 한다. 오로지 버티기 위해서. 이게 남이 보면 허영이 되고 내가 하면 자존심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지난했던 과정을 거쳐 정직원, 선생님이 되는 순간 잠복기를 끝낸 치명적인 질병은 마침내 이 날만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실체를 드러낸다.
나도 걸렸다. 심각한 수준이다. 약도 없다.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자뻑이라고 험담하면서도 자기 확신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래서 부정형으로 꽉 찬 나의 평가 단어들은 예의라는 강제 정화작용을 거쳐 '실력 없다'라는 말 대신에 '나와는 스타일이 다르다, 색감이 지나치다 혹은 발전이 없다'와 같은 우회적 표현으로 바뀐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는 플로리스트들 사이에서 '네 꽃 예뻐'라는 말은 아마도 '이렇게 하면 더 예뻤을 텐데 그럭저럭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아 '라는 뜻일 거다. 하하.
그래도
늘 객관적으로 내 꽃들을 바라보기를.
타인의 꽃에서 많은 것을 배우기를.
내 꽃들이 개성 넘치면서도
보편적 아름다움을 가지기를.
이 말도 안 되는 모순이
실현되기를
오늘도 바란다.
아,
물론 내 꽃이
제일 예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