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분명히 밝히지만 결코 다루기 쉽지않다. 조금 귀엽기도 한 둥근 꽃 모양. 선명한 색감. 단호한 두꺼운 잎. 비교적 긴 수명 때문에 인기가 좋지만 그건 튤립의진짜 모습을 몰라서다. 이 녀석. 정말 까다롭다.
2. 이유 ; (1) 기온에 민감하다.
쌀쌀한 꽃집 냉장고 안에 있을 때는 말없이 과묵한 척 조신한 척을 하고 있다가 따뜻한 곳에 가면 본색을 드러낸다.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일주일 전 저녁 메뉴 같은 TMI를 쏟아내는 수다스러운 친구처럼 있는 거 없는 거 다 보여준다. 이게 내가 알던 그 튤립 맞아? 할 정도로. 속에 있는 것을 토해내는 것 같이 꽃잎이 벌어진다. 매력 없다. 자존심도 없이.
그래서 요즘 '인별'에 아예 이 확 벌어지는 성질을 이용해서 튤립을 작약이나 대형 달리아가 쓰일 자리에 모른척하고 사용한 어레인지가 종종 보인다. 역시 플로리스트는 똑똑하다.
(2) 물 밖에서 유연해진다.
초심자들이 하는 실수 중 하나가 튤립을 세워 보관하는 거다. 단단해 보이는 가지는 물기가 빠지면서 말랑해지고 점점 휜다. 화병이 없는 곳이라면 선물 받은 튤립 꽃다발은 누워 있어야 한다. 반대로 이 휘어지는 성질을 이용하고 싶으면 어레인지 하기 한두 시간 전에 물에서 빼놓아 낭창낭창하게 만들어 놓아야 한다. 충분히 부드러워진 튤립은 손으로 살살 만지거나 해서 원하는 휘어짐을 만들 수도 있다. -어린이 및 초보자는 주의해 주세요.
(3) 화병에서 키가 자란다.
정교한 센터피스를 완성했든 축하의 꽃다발을 완성했든. 튤립은 시간이 지날수록 전체의 균형을 깨뜨린다. 물속에서 점점 키가 자라기 때문이다. 꽃 자체의 크기도 커진다. 키는 대략 꽃 페이스 길이만큼 더 자라는 것 같고 경험상 크기는 한 20퍼센트 정도 더 커지는 것 같다.
(1), (2), (3)의 특징을 이해했다면 왜 플로리스트들이 이 꽃을 신부 부케로 비추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꽃 중에 기온 따라 모양이 변하지 않는 것 없을 거고 건조해지면서 낭창해지지 않는 것 없을 테지만 우리나라에서 대체로 유통, 소비되는 튤립은 찍어내듯 똑 떨어지는 비주얼이라 그 차이가 명확하게 비교되기 때문에 다루기가 더 어려워지는 것이다.
3. 그럼에도 이 꽃의 장점을 꼽으라면
(1) 시들 때 멋있어진다 : 튤립의 자존심은 끝까지 버텨냄으로 지켜진다. 비록 1라운드 시작 종소리와 함께 본심은 일찌감치 들켜버렸지만 말이다. 말라서 약간 색이 바래지면서 반투명해지는 꽃잎들이 앤티크스럽게 느껴진다. 조금 시들해졌다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면 튤립의 진가는 영영 못 보게 되는 거다. 꽃은 더 커지고 꽃대는 뒤틀리고 늘어진다. 한 개 두 개씩 꽃잎들이 테이블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그때가 바로 절정이다. 잘 나가던 17세기 네덜란드의 '정물화'가 내 집 테이블 위에서 재현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 때 튤립의 꽃말은 '흩날리는 강렬함'이 된다.
(2) 라인과 볼륨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는 소재다.
개인적으로는 라인보다 볼륨을 표현해 내는 튤립을 선호하는 편이다. 라인을 표현했다가 위에서 언급한 대로 휘어진 꽃대 때문에 모양이 변해버리면 낭패일 수 있기 때문이다.
4. 지켜야 할 사항 ;
외떡잎식물. 줄기가 장미만큼 튼튼하지 않다는 거다. 사촌으로 백합, 알스트로메리아, 아마릴리스 등이 있다.그래서 화병에 물은 절대적으로 조금만 부어야 하고 매일 깨끗한 물로 교체해야 하고 매일 줄기를 잘라주어야 한다. 부지런해야 오래 본다는 뜻.
5. 추천사항; 드라이를 한 번 해 보라고 말하고 싶다. 생각보다 괜찮다. 손대는 순간 부서질 거지만 그래도 기다리는 며칠, 완성된 후 며칠 또 내 곁에는 꽃이 있는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