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냉장고를 열었다. 베트남 맥주가 줄 맞추어 ‘신짜오’를 외쳤다. 첫날밤을 그냥 보낼 수 없어 맥주 파티하자고, 와이파이 팡팡 터지는 인천공항에서 카톡을 보냈었다. 맥주를 꺼내려하는데 김차장이 불렀다. “야, 바에 가서 맥주 한 잔 하자.” 자정이 넘은 시간에? 콜! ‘오호, 횡재라’하는 마음으로 바에 들어갔다. 외국어 ASMR이 우리를 반갑게 맞았다.
고등학교 친구들을 줄줄이 소환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돈 많이 벌고, 한 자리씩 하고, 다들 잘 살고 있었다. 기분이 좋은 건, 잘 나가는 친구들 소식에 배가 아프지 않다는 것. 예전의 나라면, 겉으로 웃지만, 속으론 쓰렸을 텐데. 살다 보니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란 걸 배웠다. 누구나 고통을 안고 사는 걸 아니, 뼛속까지 스며든 경쟁심과 불안함도,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L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분위기가 절정에 닿을 무렵, 김차장이 말했다. “그러게, 걔도 무척 좋아했을 텐데.” 김사장이 덧붙였다. 이 여행을 처음 제안한 L, 안 그래도 하노이 야경 사이로 그놈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1월에 휴가 쓸 수 없고, 집을 구하는 시기이며, 어머니 환갑 여행 준비 중이라 함께하지 못했다. 미안한 마음에 다짐했다. ‘네 몫까지 다 마셔주마. 캬캬!’
바가 문을 닫는 시간 2시, 어차피 끝이 있으니 맥주에 데낄라까지 신나게 달렸다. 그런데 방에 오니 냉장고 맥주가 ‘왜 이제 왔냐?’며, 양주는 ‘한 잔 하고 잘래?’라며 손목을 잡아끌었다. 황홀한 유혹에 넘어간 우리는 새벽 4시까지 술을 마셨다. 우리가 자세를 옮길 때마다 ‘끙, 끙’ 소리가 났다. 마음만은 청춘인 우리, 일찍 일어나 몸도 청춘이라는 걸 증명할 수 있을까?
첫날밤 하노이에 취해 다음날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벌써부터 시간 흐르는 것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