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장, 김차장을 처음 만난 그때, 그러니까 십 대 후반으로 돌아가면 내 인생은 달라질까?’ 국립 베트남 역사박물관(Bảo tàng Lịch sử Quân Gia) 앞에서 재잘대는 학생들을 보며 든 생각이다. 청춘이라 불리는 시절, 열심히는 살았지만, 세상을 잘 몰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시간을 거스르면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시절을 다시 견딜 수 있을까?
베트남 여행을 하기 전, 너무 모르고 가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최진기의 ‘그곳이 알고싶다-베트남편’을 보았다. 기억에 남는 건, 한국과 베트남이 역사적으로 닮은 점이 많다는 것이다. 중국의 동쪽 끝, 남쪽 끝에서, 대국의 영향을 받고, 전쟁을 치러야 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각각 일본과 프랑스의 지배를 받고, 해방 후에도 남북으로 갈라져 끔찍한 전쟁을 치렀다.
박물관에서 보니 그 말이 사실이었다. 어진(임금의 초상화), 동전, 책, 불교문화까지 우리의 것과 거의 똑같았다. 참 멀고 다르게 생각했던 베트남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사람 사는 거 진짜 거기서 거기구나. 유럽, 미국 놈들은 뭐 그리 잘났다고, 진리를 전한답시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 괴롭혔을까. 힘이 좀 세다고, 사는 모습 좀 여유롭다고 함부로 판단해도 되냔 말이다.
오래된 물건에서 사람의 손길이 느껴졌다. 지금은 기억 속 전시물이지만, 언젠간 희로애락 가득한 생생한 삶의 현장에 있었을 것이다. 고단한 일상, 고통의 전쟁 속에서도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오늘을 살았겠지. 문득, 미숙하지만 애썼던 날들을 후회로 기억하는 건 가혹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좀 컸다고, 좀 안다고, 어린 나를 후회 덩어리로 치부하는 것 역시 가혹한 일.
비디오 아트 ‘Omorfoi’를 봤다. ‘아름답고, 완전한 형식’이란 뜻인데, 형형색색의 사람들이 거의 맨몸으로 부둥켜안고 있다. 사람에게 허락된 아름답고, 완전한 것은 몸이 서로 닿는 순간에 나타난다는 뜻이 아닐까. 즉, 내 몸이 닿는 곳 너머에 있는 사랑은 위선이고, 진리는 거짓이며, ‘나’는 우상이다. 이제 어찌할 줄 몰라 눈물짓던 어린 나를 밀어내지 않겠다. 괜찮아, 안아줄게.
내 몸이 자연스럽게 반응하지 않는 것에 대해 안다고 떠버리지 않을 것이고, 내가 마음 열고 손잡지 않은 이를 사랑한다고 착각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