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거절당하고 실패하며 찾아낸 것
남편은 운동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자면 운동 자체를 안 좋아한다기보다는 가리는 운동이 많다. 크로스핏은 다칠 위험이 있어서 무섭고, 요가는 다른 회원이 대부분이 여자라서 꺼려지고, 테니스는 비싸서 부담되고, 클라이밍은 본인 몸무게가 무거워서 싫단다. 그럼 집 앞 헬스장이나 회사 헬스장이라도 다녀보라고 하니까 그 역시 사람이 많아서 싫단다. 아니, 다른 건 다 차치하고서라도 대체 사람이 별로 없는 운동이 어디 있나? 불특정 다수에게 운동하는 즐거움을 알리고 싶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었던 나는 나의 최측근인 남편조차 설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상당한 좌절감을 느끼고 말았다. 게다가 결혼 전 꿈꿨던 결혼에 관한 수많은 로망을 단 한 방울로 증류한다면 그것은 '같이 운동하는 부부'였다. 지난 몇 년 간 이를 위해 제안하고 거절당하고 다시 회유하고 거절당하기를 수차례 거듭하며 시작은 산뜻했던 나의 로망이 점차 너덜너덜해지는 것을 눈물을 머금고 지켜봐야만 했다.
그간의 노력이 영 소득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정사정해서 토요일마다 크로스핏을 함께 가기도 했다. 정말 내키지 않아 하는 남편을 억지로 끌고 갔던 터라 오전에 운동을 마치면 그날 점심만큼은 어떤 메뉴든 남편이 원하는 것을 먹기로 약속했다. 일명 '파블로프의 개' 전략으로, 힘든 운동 뒤에 맛있는 보상을 연결해 크로스핏에 대한 무의식적 기억을 좋은 것으로 바꿔보겠다는 심산이었다. 하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는 않았다. 남편은 평소 짜증이 없고 긍정적인 성품인데 토요일만 되면 묘하게 불평과 짜증이 늘었다. 나는 애초에 그런 걸 잘 못 받아주는 편이라 소소한 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유쾌하지 않은 토요일의 반복 끝에 결국 내가 먼저 견디지 못하고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 이후에 그나마 자리 잡았던 부부 운동 취미는 스피드 민턴이었다. 남편이 원하는 대부분의 것이 충족되는 운동이었다. 다칠 위험도 딱히 없고, 둘이서 하는 운동이라 사람들이랑 부대낄 일도 적으며, 공짜고 시간이 정해져 있지도 않았다. 하지만 사실상 할 수 있는 날이 너무 제한적이었다. 여름엔 덥거나 비가 와서 못하고, 겨울엔 너무 추워서 하기 힘들었다. 봄가을에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에도 치기 어려웠다. 그래서 날 좋고 바람 안 부는 날에만 산책 대신 이벤트성으로 공을 치곤 했다. 함께 운동하는 취미가 생기긴 했지만 루틴화되지 않았기에 당연하게도 나는 여전히 목말랐다.
최근에 이사를 하게 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욕망에 불씨가 지펴졌다.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수영 다시 배우기'를 남편과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그는 역시나 별로 내켜하지 않았으나 제발 한 달만 다녀보자고 사정해서 토요일 오전에 50분씩 소수정예로 하는 수업에 다니기로 했다. 그리고 지난 주말 드디어 기다리던 첫 수영을 다녀왔다. 어릴 때 수영을 배운 이후로 오랜만에 마주하는 실내 수영장에 나는 나대로 기분이 좋았고, 남편도 킥판 잡고 열심히 수업을 듣는 게 영 싫은 눈치는 아니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50분 수업이 끝나고 기분 좋게 싹 씻고 나와서 남편의 눈치를 살피며 맥도날드로 향했다. 사이좋게 나란히 상하이 스파이시 버거 세트 두 개를 시켜 먹었다. 감자튀김도 먹고 치킨 버거도 먹어서 빵빵해진 배를 기분 좋게 통통 두들기며 남편이 말했다.
"수영 괜찮은 것 같아."
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드디어 정기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 생긴 것이다. '수영 너무 좋아'도 아니고 괜찮은 것 같다는 말 한마디에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가족 단위로 수영을 다니면 되겠다는 흡족한 상상까지 단 번에 해버리고 만다. 김칫국일지라도 당장은 행복한 상상이니까 마음껏 해보며 다음 주 토요일을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