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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5만 원과 30만 원의 차이?

운동의 영역에도 어김없이 드리우는 자본주의의 농간

by 배아리


옷을 살 때면 친구들끼리 늘 하는 말이 있다. 코트를 예로 들면 나쁘진 않은데 약간 아쉽다 싶은 건 30만 원인데, 오 이 정도면 괜찮네 하는 건 100만 원이 넘어간다고. 그 두 개를 비교했을 때 70만 원 이상의 가치가 더 있는 건 아니고 진짜 한 끝 차이인데 그 한 끝을 구현하는데 그 정도 돈을 더 주는 게 맞는 거냐고. 가구를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중간이 없다. 요즘은 소파 테이블을 찾고 있는데 오늘의 집에서 한 철 쓰고 말 걸 고르자면 10만 원으로도 살 수 있으나 소재가 좋고 마감이 괜찮은 걸 고르면 갑자기 6~70만 원이 넘어간다. 거기서 디자인까지 흔치 않은 것으로 찾으면 100만 원이 훌쩍 넘어가버린다. 우리는 이걸 선택을 어렵게 만드는 ‘자본주의의 농간’이라 부르곤 했다.


자본주의의 농간은 운동의 영역에도 드리우는 걸까. 나는 이사오기 전 사설 요가원에 다니고 있었다. 정통 요가원 느낌은 아니고 여러 프로그램을 빽빽하게 채워 넣은, 누가 봐도 돈을 벌겠다는 의지가 가득한 그런 요가원이었다. (나는 수련 몇 개 없는 감성 가득한 정통 요가원보다 대놓고 돈 냄새 풍기는 이런 곳을 더 좋아한다.) 그래도 사설 요가원이라 수련 시간도 60분 이상이었고 매일매일 수련하다 보면 점점 더 발전하는 느낌도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사오기 전 마지막 일주일은 말 그대로 ‘몸이 트였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이제 막 늘어가기 시작한 시점에서 옮기려다 보니 퍽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이사 오면서 좋았던 건 아파트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이 있다는 점이었다. 아파트 주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헬스장이 있는 것도 좋았지만 내가 기대했던 건 GX 프로그램이었다. 주 3회 할 수 있는 요가 프로그램이 단돈 5만 원이었다. 5만 원…! 남편과 둘이 외식 한 번 하면 사라질 돈으로 한 달 동안 요가를 할 수 있다니, 과연 아파트로 이사오길 잘했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첫 요가 수업이 끝나고 내 얼굴에는 큰 물음표가 떴다. 내가 해오던 요가와 사뭇 달랐다. 이전에 해오던 요가가 10분 몸풀기 40분 요가 10분 고난도 동작 5분 사바아사나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면 이곳의 수업은 30분 스트레칭 15분 요가 5분 사바아사나 같은 느낌이었다. 요가를 하겠다고 오는 사람들이 아닌 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난이도나 강도가 높아지기 어려운 구조로 보였다. 뭐 사정이야 어쨌든 일단 수업이 끝났는데 하나도 힘들지가 않았다. 벙찐 나는 그제야 허겁지겁 주변 요가원을 찾아봤다. 집에서 제일 가까운 요가원이 1개월 주 3회에 30만 원이었다. 5만 원에 비하면 무려 6배에 달하는 가격이었다. 6배…! 과연 6배의 금액에 상응하는 가치나 만족감이 있을까? 물론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도 옷이나 가구를 고를 때처럼 결국 한 끝 차이인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별 수 없이 커뮤니티 시설을 잘 이용하자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5만 원이라는 작은 돈으로 아침에 강제로 일어날 수 있는 장치도 되고 무엇보다 15분 남짓이라도 매일 누적된다면 그것도 무시할 수 없는 양이될 테니까. 게다가 나는 백수다. 너무 편하게 사는 것보다 이런 거에라도 소소하게 박탈감 느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나저나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고 한 것 치고는 오후에 잔뜩 낮잠을 자버리고 말았다. 어쩌면 5만 원의 강도가 나에게 꽤 알맞았던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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