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결책이 옳다는 확신 God complex
앞선 글에서는 세상 모든 것의 나의 고민과 연결되는 감각의 중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감각을 느끼기 위해 밀어붙이는 72시간은 체력/마음/생각을 가장 응축하는 시간으로 오랜 기간 지속할 수 없습니다. 아니 일정 시간 이상으로 지속하면 우리의 바이오리듬은 급격히 다운사이클을 맞이합니다. 따라서 반드시 발산의 시간을 끝내고 수렴의 시간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오늘은 수렴의 순간으로 들어갈 때 느끼는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담당자가 된 기획자의 머리는 세상만사와 연결되기 시작합니다. 나의 일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한 이후 단계별 상이한 감정을 느낍니다.
1. [~24시간] 희망으로 가득 찹니다.
나의 고민을 세상 많은 사람들이 이미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낸 해결책을 알게 되면서,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듯한 느낌도 듭니다. 더 나은 사람이자 전문가가 된 것 같아 가슴이 웅장해지기도 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해결책을 약간 변형해서 쓰면 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에도 어느 정도 잘 해낼 수 있겠다는 안도와 희망을 느낍니다.
2. [24~48시간] 빈틈으로 가득 찹니다.
대략적인 방향성과 해결책은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의 일과 붙여보면 잘 붙지 않습니다. 억지로 끼워 넣은 것 같고 일의 관점에서 보면 빈틈이 많이 보입니다. 동료들과 이야기를 해봐도 나의 머릿속에 있는 것이 잘 꺼내지지 않습니다. 동료들은 내가 어렴풋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아는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빈틈을 채우기 위해 생각보다 할 일이 많게 느껴집니다. 기획서를 그려보면 추상적이고 현학적이며 개념적인 말로 가득합니다. 구체적인 질문에는 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생각보다 더 고민해야 될 것이 많다는 생각을 합니다.
3. [48~72시간] 무거운 바위로 가득 찹니다.
어떤 방향으로 가야 될지는 알았고 대략 어떻게 해야 될지도 알겠는데 계속 퍼즐이 어긋나는 느낌을 받습니다. 시야를 좁혀서 생각을 했으면 그것에 맞는 해답을 손쉽게 찾을 수 있는데, 이미 세상이 나의 일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서 모든 것을 만족하는 해를 찾아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기획자로써 주변의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마지막 딱 맞는 퍼즐 조각을 찾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다. 믿음은 무거운 바위가 되어 나의 마음을 짓누릅니다. 바위를 내려놓기 위해 최적해를 제시해 보지만 좀처럼 딱 맞는 퍼즐조각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제는 조금은 바위의 무게가 조금은 버겁습니다.
4. [72시간+a] 압도적 믿음으로 가득 찹니다.
머리가 점점 복잡해지고 꼬여가던 어느 순간 퍼즐을 완성시키는 마지막 조각을 찾은 듯한 느낌이 찾아옵니다. 익숙한 말로는 유레카의 순간입니다.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되며 선명해지는 순간입니다. 내가 생각한 해결책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확신의 감각을 느낍니다. 마치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온 세상을 내려다보고 그것에 딱 맞는 조각을 만들어 낸 듯한 신이 된듯한 느낌(God complex)을 받습니다. 더 이상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내가 생각한 해결책이 맞다는 감각을 느껴야 한걸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선명함이 있어야 디테일로 좁혀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감각을 느끼지 못한 상태로 무거운 바위를 내리고 싶은 마음에 급급하여 바위를 치우면 안 됩니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할지라도 바위는 없앤 것이 아니라 가슴속 깊숙이 숨겨놓았을 뿐입니다. 언제든지 다시 눈앞으로 올라올 수 있습니다.
해결책이 선명해지고 그것이 옳다는 확신이 감각을 느꼈는지를 확인하는 방법은 그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보는 것입니다. 만약 나의 해결책을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없고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게 된다면 신이 된 듯한 착각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장인의 행동에서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 있고 간결하듯이, 나의 해결책이 너무나 쉬워 보일 수 있게 너무 당연하게 보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고민한 결과가 이렇게 당연한 이야기인 거야?라는 비난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니 그것은 비난이 아닌 극찬입니다. 나의 기획이 나의 세상뿐만 아니라 그의 세상에서도 당연하게 스며든 것이니까요. 더 이상 나의 기획이 나만의 상상이 아니라 공감과 실행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만약 다른 사람의 한달인 치열한 72시간을 보냈는데 해결책에 대한 확신을 찾지 못한다면 빠르게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반드시 업무의 목적을 새롭게 정의하거나 범위를 좁혀야 합니다. 혹은 피보고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현재까지의 고민결과를 이야기하는 것도 한방법입니다. 이렇게 변화를 주지 않고 계속 고민을 더한다면 복잡한 머리는 더 이상 감당할 수없고 무기력으로 빠질 수 있습니다. 가장 유의해야 할 지점입니다.
나의 해결책에 확신이 생기고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다면 이미 기획은 절반의 성공입니다. 이후 방향성을 뾰족하게 좁혀서 아래로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이니까요. 뾰족하게 만들지 못한 기획은 이리저리 얕게 삽질만 죽어라 하게 되는 비극을 맞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