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1-1 세상을 끌어당기는 후달림의 힘

세상 모든 것이 나의 고민과 연결되는 감각

by 모일자 Feb 11. 2025

나의 세상에 일이 들어오는 명확한 순간이 있습니다. 담당자가 되는 순간입니다. 자의든 타이든 담당자가 되는 순간, 멋지게 이야기하면 프로젝트 PM이 되는 순간은 그 일을 중심으로 온 세상이 돌아가기 시작하는 순간입니다. 처음부터 끝가지 완벽히 방향성을 알고 시작하는 프로젝트는 없기 때문에 긴장감과 불안감이 몰아칩니다. 앞에서는 일을 맡는다고 했지만 뒤에서는 후달리기 시작합니다.


후달림은 세상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강력한 힘의 근원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입니다. 일을 맡는 순간 기획자의 머릿속은 일의 배경과 목적을 파악하고 이후에 어떻게 시작하고 진행해 나갈지로 가득 찹니다. 이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비슷한 일을 했던 이력을 찾아보기도 하고 관련 일을 했었던 전임자를 찾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AI에게 많은 일을 물어보기도 합니다. 마음이 후달리는 이 시점이 정보에 대한 민감성이 가장 높은 시기입니다. 어떤 정보라는 자극이 오더라도 기가 막히게 내가 맡은 일과 연결을 합니다. 마치 세상 모든 만사가 나의 일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듭니다.


저는 이때 가능한 다양한 자극을 위해 밀리의 서재나 브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내가 고민하는 일의 키워드를 가지고 책을 검색하고 브런치 글을 검색합니다. 이때 책이나 글을 완독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올라와 있는 민감성이 반응하는 구간을 찾습니다. 이때 유사한 분야보다는 약간은 주제를 틀어서 자극을 줄 수 있는 글이 유용합니다. 가령 저의 경우 새로운 일의 포지셔닝을 고민할 때는 기획의 방법론에 대한 책보다는 브랜딩이나 마케팅 관련 책을 찾는 편이고, 일의 내용에 대해 고민할 때는 그 일의 주제에 대한 책보다는 경영 구조나 시스템을 만들었던 경영자/창업자의 스토리 관련책이나 브런치에서 다른 분야 실무자의 고민이 적나라하게 나와있는 글을 읽기도 합니다. 때로는 일부러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사람과 미팅을 하기도 하고,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온/오프라인으로 고민하는 주제와 무관한 강연을 듣기도 합니다. 반복하여 이질감을 느끼는 상황을 만들고 이질감에서 힌트를 얻고자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나의 고민과 연결되는 감각. 이것이 기획자가 일의 시작에서 반드시 느껴야 할 감각입니다. 이 감각을 느껴야만 넓게 볼 수 있고 깊게 파고들 수 있습니다. 기획의 넓이와 깊이를 결정하는 핵심입니다. 이 감각을 끌어올리기 소위 후달림의 감정을 들게 하기 위해 제가 자주 하는 방법은 마감효과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특히 일을 맡은 즉후에만 느낄 수 있는 불안감을 활용하기 위해 가능하면 3일 이내 추진 방향성 보고를 합니다. 72시간 룰입니다. 어떻게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후달림이 있을 때 스스로를 더 가혹하게 밀어붙입니다. 72시간은 8시간씩 3일의 시간이고 꿈에서까지 나올 정도로 머리를 그 일로만 가득 차게 만다는 것입니다.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가슴이 답답한 마음이 들고 진도가 나가지 않아 뭐라도 찾으려고 하는 마음이 든다면 바로 그 상태입니다. 


72시간 룰은 일의 가속도를 붙게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나의 일과 연결되는 3일은, 8시간을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워킹데이 9일 2주입니다. 통상 하루에 4시간 이상 집중상태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하면 일반적인 사람의 한 달의 고민의 시간입니다. 한 달의 시간을 3일로 응축하여 일을 폭발적으로 시작한다는 것이고, 이때의 힘은 프로젝트를 끝까지 가게 하는 코어가 됩니다. 남들이 한 달 만에 가져올 것은 3일 만에 가져오니 일을 잘한다는 평판은 덤으로 따라붙습니다. 또한 만약 일반적인 경우를 기준으로 한 달 동안 고민했는데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는 애초에 고민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72시간 룰은 나의 감정을 무기력으로 빠지지 않게 합니다. 처음 일을 받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후달림을 넘어 급함이 찾아옵니다. 뭔가 일을 받았는데 고민을 하긴 했는데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방향성도 보고를 못하고 있다는 마음 급함. 뭔가 얇고 넓게 보긴 봐서 머릿속은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할지 모르겠는 자포자기의 상태가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때는 세상 모든 것이 나의 일과 연결되는 느낌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이 소음으로 느껴지고 부담으로 느껴집니다. 3일 이후 기획 방향성 보고를 통해 나의 고민을 중간 매듭짓어 피보고자와 소통하는 것은, 복잡한 생각을 단순하게 합니다. 머릿속에 있는 고민을 일기로 남기면 마음에서 글로 고민이 옮겨가듯이, 보고의 준비과정과 보고를 통해 나의 고민을 일부는 피보고자에게 나눠 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보고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고민이 자연스럽게 그리고 강제적으로 정리되기도 합니다.


세상 모든 것이 나의 고민과 연결되는 감각은 기획을 시작할 때 꼭 느껴야 되는 감각이라고 말하면서도, 아직도 그 72시간이 때로는 부담스럽기도 두렵기도 합니다. 이미 프로젝트의 기획을 어느 정도 했더라도 그 순간으로 들어가는 것 앞에서 주저하기도 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그 머리 아픈 시간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기도 합니다. 점차 연차가 쌓이고 체력이 저하되면서 이렇게 일하는 것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동시에 기획자의 숙명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72시간은 절대적인 시간이 아닙니다. 내가 지식이 있고 경험이 있는 분야는 72시간 이내로 소위 작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예 처음 맡고 생소한 분야는 72시간이 턱업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후달리지만 급함으로 넘어가지 않는 시간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첫 작전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급함의 감정과 애라 모르겠다는 포기의 감정이 올라오기 시작한다면 추가적인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시간을 무작정 더 갖는 것은 자칫 무기력으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을 추가로 붙이거나, 일의 범위를 좁히는 등 다른 방법의 강구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모든 기획자는 복잡한 생각이 하나의 점으로 모이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세상의 모든 것 고민이 연결되는 감각을 통해 발산한 생각이 하나의 기획안으로 응집되는 순간말이죠. 오늘도 그 순간을 위해 머릿속 가득한 생각으로 후달림의 시간을 지나고 있는 모든 기획자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특히 점을 맞이하기 직전 가장 마지막의 시점이 체력/감정/생각 모두 바닥이 났을텐데, 그 순간을 마지막 힘을 내어 넘기시기를 바랍니다. 독자 분들께 하는 응원이기도 하지만 지금도 후달리고 있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응원입니다.


다음 글에서는 모든 고민이 점으로 모이는 응집의 순간의 감각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이전 01화 1-0 프롤로그 : 일하는 감각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