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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에 피어오르던 구수한 밥 냄새

초등학교 1학년에서 2학년 사이였을까?

아파트 22층에서 살던 기억은 지금도 어렴풋이 내 마음을 채운다.

당시 복도식 아파트가 한창 최신이었다. 해가질 때 즈음이 되면 어떤 집에서는 김치찌개 냄새가, 다른 집에서는 생선 굽는 냄새가 솔솔 풍겼을 테지만,

나는 구수한 밥 짓는 냄새를 맡으로 어김없이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낮 동안에는 동네 친구들과 아파트 앞 공터에서, 어쩔 때는 복도식 아파트였기 때문에 생각보다 컸던 엘리베이터 홀에서 공놀이를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다 보면, 저녁 무렵 석양빛이 복도 창문으로 길게 들이치고 구수한 밥 짓는 냄새가 펴졌다.

그 순간 “아, 이제 집에 갈 때가 됐구나”하고 느끼는 동시에,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이 포근해졌다. 어느새 노을이 번진 하늘을 보며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그 시절, 밥 냄새는 단순한 식사 준비 신호가 아니었다.

온종일 놀던 아이들에게 “오늘도 수고 많았어, 이제 가족 곁으로 와서 쉬렴 “하고 다정하게 불러주는 신호였다.

어른이 된 지금도, 노을이 질 무렵 구수한 밥냄새가 한 번씩 스쳐 지나가면 그때의 따뜻함이 다시 내 마음속에 피어난다. 가끔은 지금 살고 있는 공간이 아니라, 그 복도 끝에 서 있는 내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과거는 흘러갔지만, 그 기억이 내게 준 소중함은 지금도 이어진다.
난 여전히 그때처럼 마음만큼은 해맑게 뛰놀 수 있고, 저녁노을을 보며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그 감각을 잊지 않는다면,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더욱 포근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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