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모가 다르다고 하는 일도 이렇게 다를 일인가?
권고사직의 폭풍이 몰아치고, 억울함과 분노를 이직 준비에 쏟아 넣은 덕에 나는 오래 걸리지 않아 새로운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비교적 좋지 않은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여건의 자리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에 주변의 많은 조언과 응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2022년에서 2023년이 되는 시점임을 참고해 주세요
대기업의 인사팀과 스타트업의 인사팀은 전혀 다른 일을 한다고 봐도 될 정도로 업무의 목적부터 방식까지 매우 다르다. 하지만 규모가 다르더라도 그나마 같은 산업군 안에 속해있다면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을 수는 있다.
나의 경우에는 IT 산업 안의 200명 규모의 스타트업에서 동종 업계의 대기업으로 이직을 했기 때문에 같은 채용 업무로 비슷한 모습을 띄고 있지만 하는 일은 많이 달라진 케이스였다.
여기서 비슷한 모습이란, 직원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직원들에게 어떻게 보이길 원하는지에 대한 '목적'이다. 같은 산업에 속한다면 직원에 대한 HR의 자세도 비슷하다.
전통적인 산업(예를 들어 건설, 제철 등 기반 산업)의 인사팀은 '평가의 권위를 가진 대상'이다. 지원자를 평가하고, 임직원을 관리하는 전형적인 '사측'의 모습을 한 조직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상대적으로 그 외의 산업(제조, 납품, 물류 등) 또는 IT, 뷰티, 콘텐츠 등에서는 조금 더 유연한 이미지에 가깝다. 후자에 가까울수록 인사팀은 채용 지원자부터 임직원들까지 그들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는 '모습'을 보이고자 하는 편이다.
한편으로 규모에 따라서는 인사팀 소속 직원의 개인 업무의 '방식'이 매우 달라질 수 있다. (이 부분은 단지 인사팀의 업무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라 대부분의 직무에서 회사의 규모에 따라 영향을 받을 것이다.) 대기업의 인사팀에서는 대규모 채용지원자와 임직원의 데이터를 관리하고, 기존의 시스템을 활용하여 각종 행정적인 업무 처리를 진행한다. 반면 스타트업 인사팀에서는 상시 진행되는 채용 전형을 운영하고 임직원 관리를 위한 체계 및 규정을 다져나간다.
나는 채 1년 차가 되기 전에 이직을 하게 된 케이스였기에 이러한 차이점은 나의 업무에 직접적으로 아주 큰 변화를 주었다. 스타트업에서 주니어는 주니어가 아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원한다면 무엇이든 책임질 수 있다. 그렇기에 업무의 범위가 너무 넓어질 수 있다는 게 사회초년생에게는 부담스러울 수 있겠지만, 오히려 업무를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다는 것에 효용감을 더 느낄 수도 있다. 반면 대기업에서는 주니어에게 그러한 책임은 주지 않으며, 주고 싶어 하지도 않고 이미 그 책임을 질 사람들이 차고 넘쳐있다. 그렇기에 업무는 더욱 단순해지고 어떠한 프로젝트에서 많은 경우에 '보조'로 투입된다. 채용 일에 있어서는 더욱이 주니어가 쉽게 할 수 있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들이 많을 수밖에 없기에 그러한 것들이 나의 업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가끔씩 좋은 기회를 얻어 다른 선배와 새로운 기획을 주도해 보거나 참여하는 정도였다.
나의 개인적인 성향에서 이직 후의 환경은 크게 유쾌하지 않았다. 물론 더 넉넉해진 통장 사정과 아주 쾌적해진 근무 환경은 누가 들어도 배부른 소리라고 할 정도였지만, 나는 점점 불안해졌다. 속도가 매우 빠르고 끝없이 경쟁해 나가야 하는 이 산업의 채용담당자로 이러한 환경이 나의 성장에 어떤 도움을 주는지 계속 의심했다. 그러면서도 다른 환경 탓에 접한 수많은 체계들에 눈이 뜨이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작은 규모의 회사에서는 존재조차 모르던 절차들과 규정들이 당연하게 지켜져야 했고, 그것들을 몰랐음에 크게 놀라기도 했다.
아 물론, 어떤 목적과 방식이든 이 모든 일이 '회사'를 위한 일이라는 당연한 기반은 다르지 않다.
어쩌면 나는 그저 나의 성장에 목말라 불안하기보다는 '사람'이 아닌 '회사'를 위한 일에 회의를 계속 느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