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이 끝나면, 모은 돈으로 중남미를 여행하고 싶었다. 일단 돈이 모이는지부터 확인해봐야 했으니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마음 한켠에는 중남미 여행에 대한 동경 한 줌, 취업을 앞둔 시기에 엇나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 한 줌이 있었다. 취업을 하기 전인 시기에 장기여행을 갔다 와서 한국사회에서 뒤처질까 봐 두려웠다.
내가 왜 중남미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곱씹어 보았다. 해외봉사를 가고 싶었던 곳도, 인턴을 가고 싶었던 곳도, 개발협력 분야에서 시작하고 싶었던 지역은 중남미였다. KOICA 인턴을 신청할 때 1 지망, 2 지망, 3 지망 모두 중남미 지역으로 신청을 했었으니, 중남미 지역에 대한 호기심과 아쉬움이 남아있었다. 인턴을 끝내는 시점에 어느 정도 돈은 모였고 장기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을 때 여행을 가는 것이 좋겠다는 결정으로 뒤집히기 시작했다.
고민은 길었지만, 한 번 결정하고 나니 그다음 결정들은 쉽고 빨랐다. 우선 입국할 나라를 아르헨티나로 정했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보려고 하니 얼마나 갈지, 어디를 갈지, 이 예산으로 얼마나 많은 곳을 갈 수 있을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가 어려웠다. 후기나 여행자료를 찾아보아도 개인차가 컸기 때문이다. 장기여행을 꿈꿨지만 소매치기를 당해 한 순간 중도 귀국하는 사람이 있었고, 생각보다 소비가 적어진 탓에 여행이 길어졌다는 사람들도 있었다. 여행지에서 시위가 일어나서 그 동네를 그냥 지나치기도 했고, 시위로 인해 한 동네에 내내 묶여있기도 했다. 장기여행 계획을 정하려고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계획은 세우지 않았다. 3일 치 루트만 정하고, 그다음부터는 여행 책자와 미래의 나에게 맡기기로 했다. 중남미 여행은 너무나 변수가 많았기 때문에, 무계획 여행이 최고의 선택이었다는 것을 여행하면서 알게 되었다.
남미 여행 계획을 알리자, 한 친구는 말했다. "중남미 여행을 다녀오면 생각이 바뀐다는데"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런 이야기는 남미 여행 다녀온 사람들의 허세 섞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평생 살아온 것들의 습성이 남아있는데, 여행으로 생각이 크게 바뀌는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행을 다녀오고 나에게도 그 말이 적용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미 여행은 내 삶의 순간들과 결정들을 바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