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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경 Aug 16. 2024

사랑을 해도 꽃은 시든다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 누가 엎드려 있다는 신고였다. 출동 중에 그 사람이 주사기를 손에 쥐고 있다는 추가 접보가 들어왔다. 쎄한 기분이 들어 경찰에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현장에는 헐렁한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여자가 테이블에 엎드려 있었고, 테이블 위와 아래에 텅 빈 소주병들이 뒹굴고 있었다. 접보 사항 그대로 여자는 한 손에 주사기를 꼭 쥔 채였다. 일단 두 가지가 이상했다. 약을 한 거라면 바늘이 있어야 할 텐데 주사기 끝에 바늘은 보이지 않았고, 벌건 대낮에 나 잡아가시오 하고 편의점 야외 테이블에서 스스로 주사를 찔러 넣을 사람이 대한민국엔 흔치 않으리란 점이었다.


여자가 만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부재중 통화가 30 통도 넘게 와 있었다. 그냥 이름 석 자로만 저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떤 관계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일단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이 채 두 번도 울리기 전에 전화가 연결됐다. “어디야?” 화가 나기도, 애가 타기도, 슬프기도 한 목소리. “안녕하세요 119 구급대원입니다. 여기 OO동 OO 편의점 앞인데요......” “바로 가겠습니다.” 뭐라 덧붙이기도 전에 전화가 끊어졌고, 목소리의 주인은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앞뒤 범퍼가 밀려들어간 고물 픽업트럭을 몰고 나타났다. 덩치가 좋은 남자였다. 그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여자의 손에 쥐어진 주사기를 빼앗아 저 멀리 던져버렸다. 남자는 아내가 재작년에 농약을 마신 덕에 식도를 잘라냈고, 이후로는 배에 직접 연결된 관으로 식사를 하는 몸이 되었다고, 술도 주사기로 빨아들여 배로 마신다고 말했다.


경찰이 도착했다. 남자가 여자의 남편임을 확인하고 병원 이송은 않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다. “좀 도와주세요.” 남자가 여자를 업었다. 나는 그녀가 등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뒤에서 등을 받쳤다. 남자는 잠든 여자를 조심스레 조수석에 누이고 안전벨트까지 채운 뒤 운전석에 앉았다. 부부는 떠났다. 문득, 사랑을 해도 꽃은 시든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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