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몬순 Jul 10. 2019

가우디에 대한 공상 과학 망상

여행 속 인물 1

여느 때와 같이 아침이면 집이 폭탄 맞아 있다.


폐허가 된 거실을 뒤로하고 내 방으로 몸을 피한다. 선풍기 바람을 쐬며 책상에 앉으니 윤동주의 시처럼 '어둔 방은 우주로 통하고 하늘에선가 소리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구엘공원에 있는 가우디의 집에서

이곳은 가우디의 방이다. 가우디가 만든 별의 천체 궤도 모양을 한 유선형 기둥이나 외계인의 형상 같은 조각을 보면 그가 정말 그의 어두운 방에서 4차원으로 통하는 세계를 다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엉뚱한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양자의 세계도 있는데 4차원의 세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물론 나의 머리로는 양자의 세계도 4차원 이상의 세계도 상상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세상에는 인간의 인지능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다.


일전에 나는 가우디의 충격적인 건축물들을 보고 어떻게 가우디란 인간은 그럴 수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매거진을 쓴 적이 있다. 그때는 3차원 공간의 상식선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았는데, 오늘은 인지 불가의 세계까지 가능성의 폭을 확장해 비상식적인 가설로 접근해 본다.


가설 1. 가우디는 4차원의 세계에 다녀와 미래의 건축물을 보고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가설 2. 가우디는 꿈속에서 미래의 건축물을 보고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가설 3. 가우디는 기도 중 미래의 건축물에 대한 환시를 봤을 것이다.

     

가설만 보면 그야말로 공상 과학 망상이지만 몇 세기를 뛰어넘는 듯한 그의 건축물을 보라. 상식적인 선에서 설명하기에는 말도 안 되게 앞서 나가 있다. 차라리 먼 미래의 모습을 직접 보고 구현해 냈다고 하는 것이 더 납득이 될 정도이니 말이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서 주인공을 모험으로 이끌었던 책 '언어의 연금술사(Um Ourives das palavras)'에 적혀있던 글귀가 떠오른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아마도 나머지는 물리적으로는 경험되지 않은 채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안에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그 가능성의 범위가 인지 가능한 선부터 인지 불가한 선까지 아우르는 우주적 스케일이라면 내게 가우디는 인간이 인지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까지 경험하고 온 듯한 놀라운 인물이다.


자신의 집에 기도실을 따로 둘 정도로 신과 깊이 소통했기에 가능했던 것일까?

구엘공원에 있는 가우디의 집 기도실 (사진 속 기도실은 실제 모습이 남아 있지 않아 구엘 와이너리 예배당을 참고해 구현한 모습이라고 함)

가우디는 아직도 내게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부모님께 그의 건축물을 보여드릴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심히 기쁘다.


구엘 공원에서
성가족 대성당 안에서
성가족 대성당 부속학교에서
성가족 대성당 박물관에서 촬영한 가우디의 묘


이전 09화 어디에서 뭘 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