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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패션의 탄생, 'Pucci'

by MODA



'PUCCI'의 시작

패션에 대한 확신이 선 푸치는 피렌체로 돌아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글로벌 패션 시장이 자신에게 기대하는 바도 잘 아는 똑똑한 이였습니다. 자신의 귀족 신분을 강조하기 위해 유서 깊은 가문의 저택을 패션 하우스의 본사로 정했고, 피렌체의 장인에게 배운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자신의 시그니처가 된 기하학적 문양을 만들어냈습니다. 이 문양은 이탈리아 실크의 남자라 일컬어지는 귀도 라바시{Guido Ravasi}가 코모{Como}에 세운 실크 공장에서 만든 실크에 인쇄해 생산되었죠.

14세기에 지어진 유서 깊은 푸치 저택은 모델들이 드나들며 옷을 입고 사진을 찍으며 패션쇼가 열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습니다.


본사에서 인터뷰 중인 푸치


1950년, 푸치는 공식적으로 나폴리의 작은 섬 카프리에 첫 매장을 열어 지중해 풍경에서 영감을 얻은 리조트룩을 선보입니다. '나폴리 만의 진주'로 일컬어지는 카프리는 아름다운 풍경과 겨울에도 온화한 기후로 고대부터 사랑받던 곳으로,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이탈리아의 삼대 휴양지 중 하나였습니다.

예술가들은 카프리에 대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죠. 돈 많고 사회에 영향력을 끼치는 인사들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매장을 차리기에 아주 적절한 곳이었습니다. 이 운이 좋은 사내에게는 언제나 시기적절하게 기회가 스스로 걸어 들어오는 듯했습니다. 푸치가 부티크를 차린 카프리는 곧 제트족들의 성지가 되죠.



푸치 수영복, 1955 / 푸치 스카프 1950-1980


부티크의 첫 상품은 휴양지에 걸맞은 수영복과 스카프였습니다. 아직은 유럽에서 생소한 신축성 있는 직물 -합성섬유- 로 만든 수영복과 휴양지에 어울리는 밝은 색상의 대담한 패턴이 있는 실크 스카프는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푸치를 또 다른 누군가가 주시하고 있었죠. 이탈리아 패션의 아버지 지오르지니{Giovanni B. Giorgini}였습니다. 그는 이탈리아 패션을 세계적인 패션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에 푸치를 떠올렸고, 그의 원대한 꿈에 푸치도 동참했습니다. 푸치는 1951년 피렌체에서 열린 패션쇼에서 부티크 부분으로 참여해 스포츠웨어, 비치웨어, 이브닝웨어를 선보였습니다.


지오르지니가 기획한 패션쇼의 성공 요인은, 그저 유명인이나 초대하고 마는 이벤트성의 화려한 쇼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주요 백화점 바이어들을 참석시켜 바로 판매로 이어지게 했다는 점입니다. 미국 바이어들은 특히 독창성이 가미된 실용적인 옷들에 -부티크 부분- 큰 관심을 보였고, 이는 바로 주문으로 이어졌습니다.



피렌체 쇼의 모델들과 푸치 / 피렌체의 시장을 둘러보는 바이어들


푸치의 상품성을 알아본 미국의 고급 백화점이었던 니먼 마커스{Neiman Marcus}는 발 빠르게 푸치에게 그의 화려한 프린트를 셔츠와 실크 드레스에 적용시켜 제품을 출시해 줄 것을 요구했습니다. 이제 이탈리아 옷을 입는 것은 매우 세련되고 핫한 이미지가 부여되었고, 이는 중요한 가치였습니다.

특히, 역사가 짧은 이민자의 나라 미국은 유럽을 좋아했습니다. 브랜드 '푸치'는 미국인들을 열광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었죠. 바로 '유럽'과 '귀족'입니다. 안 그래도 유럽에 열광하는데 귀족이기까지 한 이가 디자인한 옷은 환상 그 자체였습니다. 그의 옷을 입으면 귀족의 아우라를 걸친 듯 느껴졌죠.



카프리와 제트족

어느 시대이든 트렌드를 이끄는 무리가 있습니다. 당시 서구에는 돈 많고 매력적인 이들 '제트족{Jet Setter}'이 있었습니다. 제트족은 제트기를 타고 재미를 찾아 세계의 유명한 도시를 찾아다니던 당시 사교계의 명사들로, 생-모리츠에서 스키를 타고 팜비치에서 썬텐을, 파리의 거리에서 낭만을 즐기고 로마에서 휴일을 보내기 위해 고민 없이 훌쩍 떠나는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이들이었습니다.



'파파라치'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영화 [달콤한 인생], 1960


온갖 유흥과 스캔들이 난무한 이들의 자유분방한 행적은 파파라치에 의해 기록되었습니다. 파파라치의 역사는 제트족과 함께 성장했죠. 그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를린 먼로, 소피아 로렌, 리처드 버튼, 믹 재거, 데이비드 보위와 같은 젊고 매력적인 당대 스타들, 예술가, 상속인, 왕족, 재클린 케네디와 같은 유명 인사들이었고, 후작인 푸치 또한 제트족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당시 미국인들에게 사랑받던 젊고 패셔너블한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가 푸치 원피스를 입고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이 포착되면서 브랜드 '푸치'는 신분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푸치 원피스를 입고 있는 재클린 케네디, 엘리자베스 테일러, 마를린 먼로, 1950-1960년경


브랜드 푸치는 이 제트족에게 기발하고 매우 세련된 옷이라는 인식이 심어졌습니다. 깔끔한 직선 라인과 생동감 넘치는 푸치의 프린트는 제트족 문화의 상징이 되었죠. 제트기를 타고 여기저기 다녔기 때문에 활동성을 중요시하는 신세대 제트족들은 가볍고 유연한 푸치의 옷에 열광했습니다.

자유로운 움직임을 선사하며 가방 속에서 부피도 차지하지 않았던 이 멋진 옷은 휴가지에서도 패션을 놓치고 싶지 않았던 제트족에게 매우 적합한 옷이었죠. 푸치의 옷은 곧 제트족의 유니폼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의 역작 '에밀리오폼'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에밀리오폼

미국에서의 공부는 그저 귀족 도련님의 학위 수집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푸치가 미국에서 배운 직물에 대한 기초는 그가 패션계에 입성했을 때 그만의 고급 원단을 만들어내는데 기본바탕이 되어주었습니다.

꾸준히 여러 직물 업체들과 협업하여 새로운 소재개발에 힘쓴 푸치는 연구 끝에 가볍고 유연한 소재인 실크 저지 에밀리오폼{Emilioform}을 개발해 냅니다. 산둥 실크와 나일론을 혼방한 합성 저지인 에밀리오폼은 탄성 있는 직물로 매끄럽고 가벼우며 안감이 필요 없어 몸에 편안함과 자유를 선사해 주었죠. 특히 주름이 지지 않아 관리가 쉬웠습니다. 그냥 돌돌 말아 가방에 넣고, 여행지에 도착해 다리미를 꺼내 들지 않아도 주름하나 없이 매끈하고 우아한 드레스를 입을 수 있는 신세계가 펼쳐졌습니다. 푸치는 당시 개발이 활발하고 관리가 쉬운 합성섬유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영감의 원천, 자연과 이탈리아

푸치에게 영감을 주는 것은 '자연' '이탈리아'였습니다.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문화유산을 적절히 활용했죠. 시칠리아의 모자이크, 시에나의 팔리오 등 유구한 이탈리아의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직물의 패턴에 풀어냈습니다. 아프리카의 추상적인 문양, 인도네시아의 '바틱' 등 다른 문화유산도 활용했습니다.


배짱이 두둑했던 귀족 도련님 푸치는 전쟁 전 이탈리아로 돌아오라는 군 당국의 압박에 맞서 약 1년간 배로 세계일주를 감행했는데, 이러한 경험은 그에게 남다른 자극과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죠. 그는 이후에도 종종 세계를 여행하며 영감을 얻었습니다.

오늘날과 같이 누구나 여행을 할 수 있는 시대는 아니었기에 이국적인 동양모델을 쓰고 동양 문화에서 모티브를 얻어 풀어내는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관심과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습니다.



자연의 색은 서로 안 어울릴 수가 없다
- 푸치


패턴 작업 중인 푸치


그의 옷은 한마디로 단순하고 우아한 라인위로 펼쳐지는 화려한 패턴의 향연이었습니다.

그는 배우지 않고도 타고난 감각으로 다채로운 색감의 직물을 멋진 패턴으로 배치해 내는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그에게 '프린트의 왕자'라는 별명을 안겨주었죠. 만화경같이 반복되는 대담하고 다채로운 색상의 화려한 패턴은 피렌체의 장인에게 배운 실크스크린 기술로 직물 위에 펼쳐졌습니다.


팔리오

팔리오{Palio}는 이탈리아 중부에 위치한 도시국가였던 시에나{Siena}에서 행해진 경마로, 시에나의 수호성인인 성모 마리아의 영광을 기리는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벤트였습니다. 오늘날까지 행해지고 있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행사 중 하나죠.

수십 개의 마을로 나눠져 있던 시에나는 서로 파벌을 이루며 견제하고 싸웠지만 또 거대한 밖의 적 앞에서는 서로 단결하여 맞서 싸웠습니다. 하나이지만 하나가 아니었기에 자연스레 자신들의 정체성을 구분하고 드러낼 표식이 필요했습니다.



각 지구를 상징하는 깃발 / 시에나의 팔리오, 16세기


각 지구마다 상징하는 깃발이 있었는데 독특한 문양과 화려한 색감이 특징이었습니다. 용맹한 동물 또는 용, 유니콘 같은 신화적 동물을 마스코트로 삼고 상징적인 문양과 색으로 지역색을 나타내 한 폭의 그림과 같았죠.

중세시대부터 행해진 팔리오는 경주에 앞서 각 지구를 상징하는 화려한 깃발을 선두로 퍼레이드가 펼쳐졌습니다. 경마에서 이기면 귀중하고 값비싼 직물 팔리움{Pallium}이 상으로 내려졌는데, 여기에서 팔리오라는 이름이 유래되었습니다.

합성섬유가 나오기 전까지 직물은 값비쌌습니다. 특히 팔리움은 벨벳, 브로케이드, 시베리아 다람쥐의 모피 등 귀중한 직물 위로 금∙은사로 정교하게 수가 놓이고, 다양한 의미를 담은 기호와 상징이 각기 다른 직물과 색상의 조합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꽤나 귀한 재화였죠. 선조부터 이어져 온 이러한 조화로운 기호의 배치와 다양한 색상에 대한 감각은 이탈리아인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듯합니다.


기쁨은 제가 패션에 도입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저는 그것을 색으로 표현했죠.
저는 당신에게 드레스를 주는 게 아니라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 푸치



삶을 디자인하는 푸치, 60년대 푸치마니아

푸치에게 패션은 단순히 옷만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삶을 디자인했죠.

푸치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미국에서의 인기였습니다. 대학생활을 미국에서 보낸 푸치는 누구보다 미국인의 정서를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유럽의 후작인 그가 디자인한 셔츠, 바지, 드레스, 스카프, 벨트, 핸드백은 미국인들의 전통 귀족에 대한 로망과 허영심을 채워주며 만족시켰습니다.



푸치 스타일


푸치는 자신의 프린트를 패션에 그치지 않고 유리, 벽지, 테이블, 도자기, 가정용품 등 생활 전반에 걸친 라인으로 확장시켜 푸치 왕국을 만들었습니다.

모든 라이프스타일에 적용해 60-70년대에는 '푸치마니아'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로 승승장구했습니다. 푸치 향수를 뿌리며 푸치 가운을 입고 푸치 그릇을 사용하는 등 푸치마니아들은 온 집안을 푸치 스타일로 꾸몄죠. 푸치는 여유로운 럭셔리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며 이탈리아 패션의 탄생에 큰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는 작가가 단어 선택에 애쓰는 것처럼 먼저 주변 세계를 이해하고 이를 직물을 통해 표현해야 합니다.
디자인한다는 것은 오늘날의 삶을 이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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