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매서운 바람에 날이 차다. 명멸하는 눈동자는 검은 얼굴을 비추는 등대의 것이 아니던가. 계절의 메아리에 놀란 마음이 봄이 불러낸 대지처럼 들뜬다. 옅은 오후가 붉은 손가락 사이로 타들어가는 것을 본다. 삶이란 심심한 것일까. 솟아오르다 저무는 게 인생이란 걸 아는 이마다 헛헛한 마음까지 고결한 제단 위에 바치지 않을 수 없다. 모니터 앞에 고요히 앉았다. 둘의 거리는 알 수 없는 파동만 흐른다. 그래, 우린 파장 속에 교감하는 사이다. 뿌리를 흔들고 솟은 말들은 원석처럼 세공을 기다리고, 북적거리는 시장통에도 좋은 물건을 담아내신 어머니의 손을 도둑질하듯이 숨 쉬는 말들을 살뜰히 골라내고 있다.
“앉다”
글자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안온한 봄인 줄만 알았는데 ‘서다’만큼 열정적이다. ㄴ은 의자로, ㅈ은 책상으로, ㅇ은 멀 원으로, ㅏ는 방향으로 읽힌다. 앉는 행위는 심오한 인생에서 무언가 얻으려는 능동적인 일이자, 먼 데서 불어오는 찬바람 너머 봄이 있음을 잊지 않고 기다리는 마음이다. 할 일 없이 앉아 있는 게 아니라 할 일을 위해 앉아 있다는 옹골찬 희망을 전하는 것일까. 바람은 불고, 겨울도 여전한데 오후의 그림자만 의자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