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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나면 쑥대밭, 쑥 처리법

먹거리로서는 약, 잡초로서는 애증의 대상

쑥개떡과 제철 음식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을 보니 다 커서였어요. 엄마가 생전 처음 보는 원반을 빚고 계셨어요. 지름이 10cm는 될까... 연두색, 동그란 원반은 색깔이 너무 예뻐 한 번에 제 주의를 끌었어요. 옆엔 진한 색 떡이 있었는데 이름이 ‘쑥개떡’이래요. 꿀을 찍어 먹으니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를 맛인 거예요. 몇 개를 먹고 있는지 모르는 게 계속 먹습니다. 그날 이후 쑥개떡은 페이보릿 간식이 되었습니다.


쑥국은 어머니께서 끓여주셔서 처음 먹어봤어요. 들깻가루 섞은 쑥국은 바로 제 페이보릿 메뉴가 되었고, 봄이 되면 저도 아들에게 쑥국을 끓여 줍니다. 집밥이 제일 좋다는 아들은 엄마 음식이 제일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제가 정말 요리를 잘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요. 엄마가 해 주는 것은 무조건 맛있고 좋을 만큼 네 마음과 내 마음이 가까운 거겠지 합니다. 


아이를 키우며 반가운 점은 아이를 굶길 순 없으니까 덕분에 제가 먹을 것도 챙기게 된다는 점이에요. 혼자 먹으면 대충 먹고 지나갈 끼니도, 꼭 제철 재료 넣어 요리조리 꾸리게 됩니다. 엄마와 어머니께서 다소 지나칠 정도로 냉동고, 냉장고, 김치냉장고에 집착하시는 것이 이상했는데, 지금에서야 30% 쯤 이해될 것 같아요. 내 새끼에게 좋은 음식 한 톨 더 먹이려는 어미 마음인 거예요.


경제적 자립이 주도적 독립이라 생각했던 그 시절부터 10년 넘게 계속된 직장 생활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제철 음식과 거리가 먼 식생활이었어요. 쑥개떡 한 번 먹지 못하고 봄이 가면 서러웠어요. 좋아하는 딸기도 한두 번 밖에 먹지 못 하고 철이 가기도 하고, 복숭아 한 알 먹지 못 하고 보낸 여름이 여러 번이에요. 신선한 제철 음식은 제겐 일종의 계급처럼 느껴졌습니다.

추억은 주머니 속에 감춰 두고 꺼내 먹는 알사탕 같은 것. 친구가 미국으로 가기 전에 차린 밥상.

쑥과 엄마


옥상 정원에 가득 솟아오른 쑥을 보고 뽑을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제 마음엔 이렇게 많은 이야기가 오갑니다. “여보, 모해, 그냥 뽑아.” “잠깐만.” 여전히 망설입니다. 그냥 눈에 보이는 건 다 뽑았어요. 옥상에서 뜯은 쑥으로 쑥국을 끓였어요. 약 치지 않는 쑥이니 오히려 파는 것보다 건강한 재료같은 막연함은 맛에도 영향을 미쳐 저는 인생 최고의 쑥국을 먹었습니다.


작년 초여름 즈음 되어 아기 쑥을 다시 뜯어 국을 끓였는데, 써서 먹을 수가 없는 거예요. 여름 쑥은 먹는 게 아니라고 했는데, 역시 저는 역시 직접 경험으로 지식을 쌓는 일차원적 인간입니다. 이즈음 쑥은 무섭게 뿌리를 뻗어 나가는데, 마치 지진에 갈라지는 땅처럼 빠르고 굵게 퍼집니다. 뜯어보면 두둑 소리를 내며 옆으로 뜯어지는데 속이 다 후련해요. 맛있게 먹을 때는 언제고, 맛이 사라지니 바로 응징입니다.


뿌리조차도 향긋해서 잠시 망설이게 되지만, 쑥이 지나간 자리의 잔디는 초토화되니 타협이 없습니다. 산삼처럼 굵고 깊게 내린 쑥 뿌리는 손가락으로 잡아당겨 뽑을 수 없습니다. 이쯤 되면 ‘이 독한 것.’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오는데, 도구가 필요해요. 삼지창 같은 두꺼운 스테인리스 포크가 적당합니다. 땅을 푹푹 찌르며 뿌리를 뽑다 보면 스트레스도 같이 사라집니다.


올해는 쑥이 써지기 전에 들깨가루 넣고 국을 한 번 더 끓여야 겠어요. 모든 것이 너무 흔해져 버린 21세기에 살지만, 함께 하는 사람, 시간, 마음은 늘 부족하게 느껴집니다. 새벽 5시부터 전속력으로 달리는 제 일상이지만, 자투리 시간 쪼개 쑥국과 떡갈비를 얹은 밥상을 준비하고 싶어요. 투박한 밥상이라도, 힘들 때마다 몰래 꺼내 먹는, 알사탕 같은 추억이 남을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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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5월 27일 JTBC 다큐플러스 방영분입니다. 

식물을 200개나 키우는 이런 희한한 사람도 다 있구나. 하고 참고만 해 주세요!  

공기정화식물과 공기청정기로 실내공기를 관리하는 얘기가 궁금하시면 아래 매거진에서 보실 수 있고요, 

글을 하나하나 클릭하는 게 너무 귀찮다 하시면 책으로도 정리해 두었습니다. 

덕분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다면 (브런치 독자들이 원하신다는 전제 하에) 무료 강연회 하겠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가 궁금하시면 아래 블로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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