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재경 Jul 17. 2019

150년 더치 팬케이크 집

하드웨어는 보존, 소프트웨어는 업데이트

아티스트

 저는 지금 백건우 선생의 쇼팽 녹턴 전집을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조성진과 라파우 블레하츠의 쇼팽도 좋아하지만, 백건우 선생의 음반을 듣고 나니 이것만 듣게 되어요. 저는 이 음악을 듣고 ‘대가’라는 표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단정하지만, 자신 있는, 군살 없는, 단단한 마른 몸이 떠올랐습니다.


  아들 두 돌 즈음, 파리에 ‘메종 오브제’라는 전시를 보러 간 적이 있어요.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윤정희 선생을 만났습니다. 배우이자 백건우 선생의 아내이기도 하시지요. 파리에서 서울로 오는 11시간의 비행 동안, 한 번도 뒷머리를 의자 머리 받침에 내려놓지 않고, 꼿꼿하게 앉아 오시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심지어는 내릴 때 매무새를 말끔하게 고치고 내리셨어요.


  애기가 타서 울면 좀 불편할 수도 있겠다 했는데, 잘 자서 편하게 오셨다며, 인사 말씀을 건네십니다. 아이가 예쁘다고 말씀하시는 모습이 얼마나 우아하시고, 품위 있으신지, 저는 요즘에도 비행기를 탈 때마다 그분 생각이 납니다. 윤정희 선생의 머리카락은 백건우 선생께서 잘라 주신대요. 백건우 선생의 쇼팽을 들으며, 꼿꼿한 두 분은 삶이 예술이구나 생각했습니다.


  어젠 남편이 글을 꾸며서 쓸 수는 없는 거냐 물었어요. 제가 아직 책을 몇 권 쓰지 않은 작가지만, 에세이 같이 삶을 비추는 글은 꾸며서 쓰면 조화처럼 생명력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예쁘지만,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 그럴 것 같은 걸 쓰는 거니까, 머리에서 뱅뱅 돌다가 마음까지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쩌다가 한 번은 쓸 수 있을지 몰라도 계속 거짓말로 꾸며 쓸 수는 없을 것 같다 답했어요. 백건우 선생과 윤정희 선생, 두 분의 삶을 생각하며 그 생각을 한 번 더 확인하게 됩니다.


150년 전통의 팬케이크 하우스

  오늘은 일요일이라 이곳 사람들의 주말이 궁금했어요. 공원을 가보기로 했습니다. <일상이 축제고 축제가 일상인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라는 책에서 추천한 150년 전통의 팬케이크 하우스가 마침 공원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었어요, 오늘은 그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팬케이크 집 이름은 ‘Meerzicht Farm’입니다.  자그마치 15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해요. 저흰 우버를 이용했지만, 공원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10분 정도 걸으면 나타납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타샤 튜더의 정원으로 이동한 느낌이었습니다. 식기를 제외한 모든 기물이 빈티지예요. 150년의 역사를 집약해 전시하는 느낌. 다리미도 연도 별로, 식기도 연도 별로 쇼케이스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가구도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150년 팬케이크 하우스의 삶을 고스란히 콘텐츠로 승화시켰습니다. 달라지는 것은 소프트웨어입니다. 주문하는 방식, 번호표, SNS 홍보 같은 소프트웨어를 최신 기술로 빨리 업데이트합니다.

왼쪽 빨간 지붕이 팬케이크 하우스예요. 네로와 알루아가 걸어 나올 것 같은 느낌
왼쪽은 오이와 치즈 샌드위치, 가운데는 주문하는 바, 오른쪽은 레몬 슈가 팬케이크

  이 농장이 최신식 건물이라면 어떨까 상상해 봤어요. 저는 150년 역사를 프레젠테이션하는 '방식'이 궁금했기 때문에, 싹 밀고 새로 지은 건물이라면 매력이 반감되었을 것 같아요. 너무 아름답고 멋진 새 것들이 많아 오히려 손때 묻은 옛것이 그리워지는 걸까요. 아니면, 본질과 철학이 말굽자석처럼 제 마음을 잡아당기는 걸까요. 뉴트로가 대히트인 걸 보면, 비단 제 마음만 그런 건 아닌가 합니다.


  테이블 개수를 세지 못 할 만큼 공간이 아주 넓습니다. 실내, 실외에 빼곡한데 주말에는 이 공간이 만석이라 기다려야 한다고 해요. 믿을 수가 없습니다. 저희는 아침 일찍 가서 러시아워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곳은 사슴도, 토끼도, 심지어는 공작새도 키우는 진짜 ‘농장’이에요. 아이들은 원하면 먹이를 구입할 수 있고, 동물에게 먹이를 주는 체험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레몬 슈가 팬케이크는 처음 경험해 보는 맛이었습니다. 슈가 파우더 덕분에 달콤하고, 레몬 때문에 새콤하면서 향긋한데, 십니다, 셔요. 샐러드와 샌드위치를 함께 곁들여 먹었는데, 맛은 맛있었어요. 이 식당엔 놀이터도 있어서, 아이가 어리다면 실컷 놀만 합니다. 저흰 금방 먹고, Amsterdam forest를 산책했습니다.

설탕을 레몬, 오렌지, 바닐라 등등을 넣어 만들어 쓰더라고요. 치즈는 2키로까지는 반입이 된다고 해요. 제 인생 치즈. 파마산 계열. 국제 배송 가능하다 했어요. 치즈집 명함.

  사람들이 많아도 무질서한 사람이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애견인이 많은데, 개끈을 하지 않은 개들이 많아요. 그래도 마구 달려들거나, 짖지 않는 걸 보면 모든 개를 훈련을 시키나 싶기도 했습니다.


  3시간 정도의 산책 끝에는 마켓이 펼쳐져 있어, 각자 먹고 싶은 걸 사 먹으며 충분히 즐겼어요. 산속에서 열리는 흥겨운 마켓입니다. 저는 치즈를 샀고, 아들은 구운 교자 만두와 하가우, 타코야키를 먹고서 햄버거를 또 먹었어요. 남편은 아들 먹는 걸 조금 거듭니다. 아들은 여기 와서 먹는 양이 더 늘어난 것 같아요. 제 하루 분 음식이 한 끼도 안 됩니다. 그렇게 먹고, 산속 놀이터마다 신나게 놀더니 초저녁부터 곯아떨어졌어요.

De Boswinkel 근처의 마켓. 맛있는 게 많아 아주 좋았어요. ^^

  네덜란드 사람들은 바퀴 지름이 75센티 내외인 자전거를 전속력으로 탑니다. 차가 와도 멈추지 않아요. 브레이크가 없는 자전거가 대부분입니다. 자전거 앞에는 우유를 담는 플라스틱 박스를 매달거나, 큰 가죽 가방을 안장에 달아요. 이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장 보고, 일상의 주된 운송 수단으로 씁니다. 오늘은 애완동물을 태워 옮기는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자전거에 아이를 태울 수 있는 보조 장치를 달아 운송 수단으로 쓰는 가족도 많이 보입니다.


  덕분인지 몸에 군살이 별로 없고 날렵해요. 이제 두 살쯤 되었을까 싶은 아가가 보조 바퀴 없는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걸 봤어요. 백발 할아버지, 할머니도 자전거로 이동하십니다. 온몸이 근육질로 덮여 자전거를 씽씽 타는 네덜란드 사람들을 보면, 아주 튼튼해 보여요. 그래서인지, 네덜란드 사람들의 기저에 단단한 몸에서 오는 자신감이 느껴집니다.


  저런 체력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사는 세상이라니! 체력은 국력이라는 말은 도대체 누가 만들어 낸 말인지, 갈수록 마음에 와 닿아요. 몸이 약하면 점점 조심스러워지고, 행동에 제약이 생깁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것도 글에서 느낄 수 있다 하셨었어요. 저도 한국으로 돌아가면 요가 이외에 운동을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국 저널리스트 출신인 <시시콜콜 네덜란드 이야기>의 저자는 네덜란드를 영국보다 행복하고, 프랑스보다 효율적이며, 미국보다 관용적이고, 노르웨이보다 국제적이고, 벨기에보다 현대적이고, 독일보다 재미있다고 표현합니다. 저도 그 의견에 동의하게 될 것 같아요.


http://modernmother.kr

http://brunch.co.kr/@modernmother

https://instagram.com/jaekyung.jeong


이전 04화 싱그러운 암스테르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