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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첫 정원, 가꾸고 달래기

과꽃도, 샐비어도, 데이지와 팬지도 있는 손바닥만 한 화단

손바닥만 한 화단


제 첫 정원은 손바닥만 한 화단이었어요. 펌프가 있고, 바로 옆에 수돗가가 있고, 그 왼쪽 옆에 빨간 벽돌을 대각선으로 세워 심은 화단엔 과꽃도 있고, 샐비어도 있고, 데이지와 보라색 팬지도 있었어요. 아이 넷을 키우면서도 화단에 꽃을 심을 만큼 엄마는 낭만적이셨던 것 같아요. 마당에는 하얀 강아지 해피가 살았는데, 제게 짖으며 덤빈 다음 날 어디론가 사라졌습니다.


화단에서 과꽃을 뜯고, 샐비어 꿀을 따 먹고, 동생들과 소꿉놀이도 하고, 밖에서 잔다며 이불을 모두 꺼내 와 마당에 자리 펴던 엉뚱한 아이가 바로 저였습니다. 엄마한테 혼이 났지만, 저는 그러면 왜 안 되는지 늘 의문을 가졌어요. 아이 넷 키우며 정신이 혼비백산하는 엄마 입장으로 생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지금 저는 저 닮은 아들 하나 겨우 키우면서도 정신은 늘 허둥지둥 부산스럽기만 한데, 엄마는 어땠을까요. 


그 시절 동생들과 작은 화단에서 소꿉놀이할 때, 땀이 뻘뻘 나도록 너무 재미있었던 기억이 있어요. 일곱 살 여덟 살이나 되었을까요. 모래를 뒤져 조개껍질 골라내 곱게 빻아 소금을 만들고, 벽돌 조각을 찾아 찧어 고춧가루를 만들고, 벽돌 위에 놓고 “자, 드세요-”하는 건조한 놀이였는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땀이 뻘뻘 났을까... 세수하다가도, 책을 읽다가도, 버스 안에서도 문득문득 그 화단이 생각났어요.

조카들과 아들 친구들에게 키다리 아줌마가 되고 싶은. 먼지가 많은 날이라 사진도 뿌옇네요.
선큰 사진, 손바닥만한 정원. 올해는 선큰에선 텃밭하지 않으려고 해요. 저 나무 아래엔 로즈메리와 라벤더를 심을 거예요.


나의 첫 정원


그 후로 30년도 더 지나 만나게 된 제 첫 정원은 자꾸 그때 그 시절을 떠오르게 합니다. 해가 뜨기 전 잔디에 풀을 뽑고, 물을 주고, 텃밭을 돌봐야 하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할 일들이 자꾸 뒤로 밀리는 거예요. 저는 특히 풀 뽑기를 좋아하는데 깊게 박힌 뿌리를 기어이 파내면 속이 후련해져요. 육체노동은 보낸 시간만큼 결과물이 하게 쌓입니다. 스티커 붙이기나 포장하기 같은 단순 노동도 작업 속도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 좋아해요.


어차피 미세먼지 때문에 아웃도어 라이프가 힘든데, 야외 정원이 웬 말이야. 하고 냉소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오히려 어쩌다가 오는 새파란 하늘과 맑은 공기를 만나니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희소성 때문에 더 귀합니다. 맞아. 자주 쓰는 것만이 행복은 아니야. 바로 그 순간순간에 100% 충실한 것. 행복은 최종 목표지점이라기보다는 살짝 왔다 사라지는 산들바람 같아요.  

 

마음에 폭우가 몰아치고, 파도가 밀려들어 통제하기 어려울 때, 잡초의 무한한 생명력은 평정심 유지에 큰 힘이 되었어요. 잡초들조차 자기 삶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데, 너는 네 삶을 위해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 이런 얘기가 들리거든요. 그래, 내가 삶을 뭐 얼마나 열심히 살았다고 싶으면서, 나도 한 번 열심히 살아보자! 하는 마음이 아지랑이처럼 밑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와요.   


'실내식물 사람을 살린다'라는 책을 읽다가 알게 되었는데, 정원 가꾸기는 심리 치료 방법으로 이용된다고 해요. 식물의 초록은 그저 보기만 해도 뇌 중 알파파를 증가시켜주는데, 마음의 안정을 주고 침착하게 해 준다고요. 오늘 아침 기사엔 녹지가 많은 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이 머리가 더 좋다고도 합니다. 오감을 자극하는 환경,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초록, 생명의 힘이 인간에게 해로울 리 없습니다. 산이 점점 없어지니, 실내 공간 어디에라도 식물을 가득하게 채워야겠다 생각해요.

     

올해 돌아오는 봄에는 잔디가 더 푸릇푸릇하게 가꾸고 싶어요. 작년 봄, 잔디를 깎으면 창안으로 밀려 들어오는 풋풋한 향이 너무 좋았어요. 정원이 귀찮지만, 몸을 일으켜 얻는 정직한 노동의 대가도 좋습니다. 지하 선큰엔 라벤더와 로즈메리를 잔뜩 심어 나갈 때마다 선큰 가득한 허브향을 느끼고 싶어요. 어서 봄이 오면 좋겠어요. 아들, 조카들, 아들 친구, 입가가 까매지고 목소리가 변하기 시작하는 사춘기 그 녀석들과 땀 뻘뻘 흘리며 바비큐 하고, 낄낄 대며 웃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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