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민우 Mar 09. 2019

너를 걱정하겠다 - 타인의 영역 침범

전화를 받지 말 걸 그랬어


"따르릉, 따르릉!"


집 전화는 잘 안 받게 된다. 어차피 어머니 전화다. 아버지 전화도 거의 없다. 어머니에게 걸려온 전화가 뻔하다.


이제는 한국에 있나? 어디 또 나가니? 결혼은?


이런 질문을 피하려면, 전화기는 멀리 해야 한다.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신호가 길어지면 갈등한다. 굉장히 필요한 전화겠지. 어쩌자고 저리 안 끊을까? 어머니 핸드폰으로 하면 될 일을. 어머니는 전화를 잘 안 받으신다. 특히, 성당에 계시면 무음으로 해 놓으신다. 어머님이 성당에서 아직 안 돌아오셨어요. 이 말이라도 전해드려야 하나? 그래서 받았다.


"자네가 받네. 다행이네. 사실 자네에게 전해줄 정보가 있어서 전화했어. 이게 자네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서울시에서 기간제로 사람을 뽑아. 일도 별로 안 힘들어. 하루에 여덟 시간만 일하면 되네. 자네도 이제 좀 안정적인 일을 해야 하지 않겠나?"


무슨 일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공공근로 같은 일이지 싶다. 감사하다고, 알아보겠다고 하고 끊었다. 어며 님의 사촌, 지난번 친척 어른 장례식 때 뵀다. 내가 나온 세계 테마 기행을 재미나게 보았다고 하셨다. 그게 전부다. 평생 나와 대화를 나눈 건 그게 전부다. 왜 그러셨을까? 대만에 같이 갔던, 어머니의 사촌. 그 이모가 유력하다. 돈 없는 티야 뭐 어디서든 나는 법이니까. 친오빠에게 내 이야기를 더 하셨나 보다. 저렇게 살면 안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돈은 못 보태줘도, 뭐라도 도울 게 있지 않을까요? 오빠가 전화라도 해 보세요. 오빠 말이면 듣지 않을까요? 이런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나는 일단 감사했다. 누군가를 그렇게 깊이 걱정하지 않는다. 내게 없는 따뜻함이다.


"그래서 전화는 해 봤나?"


설마 했다. 몇 시간 후에 또 전화가 왔다.


"사실은 제가요. 한국에 오래 있지 않아요. 외국에 주로 있어서요. 좋은 정보 감사드려요."

"외국에 나가는 것도 좋지만, 이제 눈을 한국으로 돌려보게나. 일단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지. 한국에서 소재를 찾아보는 건 어때?"


전화를 끊고, 왜 기분이 나쁜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내 삶이, 너무 단순해져 버렸다. 대책 없이 늙는 떠돌이. 그거 맞는데, 그렇게 보이는 건 싫다. 내 안의 새로운 계획, 꿈은 모조리 생략되었다. 나를 보는 시선은 맞지만, 일부다. 그 일부로, 누군가의 삶에 관여하고 싶어 한다.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 한다. 완곡한 거부를 뚫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한다. 선한 의지가 물거품이 된다.


나는 금세 회복됐다. 내가 나에게 집중하면, 답답해진다. 바람개비 같은 사람이고자 한다. 바람이 불면 돌고, 멈추면 멈춘다. 바람을 느끼면 끝. 내 날개가 어떤 모양인지, 얼마나 새 거인지는 부질없다. 혹시 내가 기간제 공공근로를 쉽게 보는 건가? 내게 전화를 준 그분보다 내가 더 낫다고 생각하나? 한국으로 시선을 돌려라. 이 말까지 다 무시하고 있나? 그런 경향성이 꿈틀댄다. 내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이다.


이전 06화 영석이에게 - 열일곱 살 우린, 무슨 꿈을 꾸었더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