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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는 Sep 02. 2023

#4 40대 N잡러, 양정빈님의 서사

즐거움이 너무 소중한 ‘이유’




#40대 개발자의 은퇴

  명함엔 분명 ‘개발자’라 표기돼 있는데, 늘 ‘디자이너’라 불렸어요. 여자란 이유에서요. 15년간 일했지만 지방 IT 회사의 보수적 인식, 급변하는 사회 속 개발자 업무 증가. 여러 요인들로 적응이 어려웠고, ‘스스로 최고일 때 내려와 다른 길을 찾자’란 생각으로 은퇴했어요. 아쉬움은 없어요. IT 쪽은 더는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역량 내에선 최선을 다했거든요.



#취미 작가, 새로운 시작.

  회사에선 전문가였는데, 정작 삶에 도움 되는 건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은퇴하던 시점 이사를 했는데, 옷이 너무 많아 어떻게 정리할지 막막한 거예요. 마침 무료 강의가 있어 정리수납 과정을 신청했는데, 멀쩡한 옷을 버리려니 그게 또 아까운 거예요. 그래서 옷을 활용해 뭔가 만들어보고자 소잉을 배우게 됐어요. 그렇게 정리수납, 소잉, 캔들, 하나 둘 시작한 게 전문가 과정 수료까지 이어지면서 자연스레 공방을 개업했어요. 아직 새내기 작가지만요.      



#'라스프링', 삶이 즐겁길 바라는 마음.

  작업실 유지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요. 고정비가 필요해서. 그게 좀 힘들긴 해요. 퇴직금도 모두 배우고 즐기는 것에 투자했어요. ‘라스프링’이란 브랜드명은, 봄날을 생각하며 만들었어요. 새싹이 돋고 즐거운 봄날의 이미지처럼 제 삶이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즐거움을 위해 희생하는 부분도 있지만, 즐거움이 너무 소중하단 걸 알기에 지켜내야 한다는 마음이 커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언젠가 원룸이 아닌 오픈된 공간에서, 제 브랜드 간판을 단 공방을 열고 싶어요.



#즐거움이 소중한 이유

  ‘외로움’, ‘불안’을 먼저 경험했어요. ‘즐거움’은 성인이 돼서야 느꼈죠. 집 분위기가 좀 특이했어요. 어렸을 땐 아빠가 너무 힘들게 해서, 엄마가 집을 나가면 어쩌나 늘 불안했고, 이렇게 어둡고 삭막하게 살다 죽으면 너무 허무하겠단 생각까지 했어요. 그렇게 크다 보니 평범함이 소중하단 걸 깨달은 것 같아요. 처음 사회생활 시작했을 때 그리고 은퇴했을 때, 세상에 나오니 재밌는 게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지금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즐거움을 지켜가고 싶어요.     



#어둡던 10대의 소망  

  환경을 탓한 건 10대 때뿐이에요. 원망할 수도 있지만, 원망해 봐야 나만 힘들 거 굳이 불평할 필요 없다 생각하며 소망을 그렸어요. ‘사회생활하며 내 힘으로 돈 벌어서 하고 싶은 것 하며 살아가기, 해외에서 살아보기, 원하는 곳에 스스로 운전해서 가기.’ 지금 그렇게 살고 있으니, 그때의 소망을 모두 이룬 거죠.



#스스로 지켜온 즐거움

  어려서부터 해외에 살고 싶단 막연한 꿈이 있었어요. 집이 유복하지 못해, 하고 싶은 건 모두 스스로 해내야 했어요. 유학 자금 모으려고 악착같이 살았어요. 전철 막차로 귀가하고 새벽같이 출근하면서도 도시락 싸다니고, 쓰리잡 포잡까지 할 정도로 아르바이트도 닥치는 대로 했어요. 그렇게 해서 29살에 일본에 갔어요. 어쩌면 제 환경에선 해보기 어려운 경험이었을 수 있어요. 클래스에 있는 친구들 모두 부모님 지원을 받아서 왔었거든요. 너무 부러웠지만, 한편으론 ‘이곳에 오기까지 노력한 것도 경험이다.’란 생각에 오히려 뿌듯하기도 했어요. 그때 아무도 저를 건들지 못할만한 기둥을 세우는 방법을 깨달은 것 같아요.      



#공황장애, 언어 트라우마

  유학 생활이 순탄친 않았어요. 언어가 항상 어려웠어요. 영어는 몇 년을 해도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아 일본어로 바꿔본 건데, 중급 반쯤 됐을 때 무작정 유학을 갔어요.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잦은 오해가 생겼고, 오해를 바로잡고 싶은데 그조차 엄두가 안 났어요. 1년 만에 공황장애가 와서 귀국했어요. 끝이 좋진 않았지만, 정말 잘 다녀왔다 생각해요. 어깨 뽕 중 하나거든요. 그때 아니면 언제 해외에서 1년 이상 살아봤을까 싶어요.               



#“시니어가 돼도 계속 배우고, 즐거움을 찾을 거예요.”

  어디든 자유롭게 다니는 것. 그게 최종 꿈이에요. 먹고 싶을 때 언제든 먹고, 가고 싶을 때 어디든 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싶어요. 도쿄의 우동이 먹고 싶을 때 도쿄에 가고, 똠얌꿍이 먹고 싶은 날 현지에 가서 먹고, 숙박에 제한받지 않고 어디든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능력요. 언젠가 다시 영어 공부를 할 거예요. 여전히 언어 트라우마를 완전히 극복하고 생각을 똑바로 전달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요. 2021년부터 문하생으로 시를 공부하며 언어 교정을 하고 있어요. 생각한 바가 상대에게 똑바로 전달될 때 정말 큰 성취감을 느끼고, 지금의 노력이 외국어 공부를 위한 바탕이 될 거라 생각해요. 60, 70살이 돼도 계속 배우고, 즐거움을 찾으며 살아갈 거예요.




(인스타그램 @modun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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