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했다
드디어 웹소설 연재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가시밭을 걸어왔는가. 뒤늦게 웹소설을 하겠다고 덤볐다가 조회수 10이라는 쓴맛을 보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엔 달랐다. 웹소설 아카데미까지 다니며 밑바닥부터 기초를 다졌으니까.
비축도 있다. 비축은 즉, 미리 써둔 원고가 쌓여있다는 뜻이다. 비축이 없다는 것은 항상 쫓기듯 글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드라마로 치면 쪽대본 같은 거다. 매일 5,000자를 업로드해야 하는데 비축해 둔 글이 없다면 얼마나 간이 쪼그라들지 상상해보라. 내일 올릴 글을 전날에 밤을 새서라도 써야 하는 것이다. 또, 급할수록 글은 더 안 나온다. 그런데 나는 과거에 이 짓을 반복했다. 비축도 없이 라이브로 연재를 한 것이다. 그러니 글의 퀄리티도 개판이 날 수밖에.
달라진 마음가짐으로 제목과 소개 글을 점검했다. 제목은 웹소설 제목의 특성상 공개할 수가 없다. 조금 창피하다는 뜻이다. 문장형의 직접적인 제목은 뭔가 웹소설 업계가 아닌 사람들에게 쉽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없었다. 어쨌든 이런 직관적인 제목의 최종 목적은 '어그로'다. 독자들이 제목만 보고도 클릭하게 만들어야 제목 본연의 임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너무 저급한 것은 지양해야겠지만 내 제목은 다행히도 그러지 않았다.
다음은 소개글. 소개글은 웹소설 제목 다음으로 중요한 정보다. 제목이 소개팅 사진이라면, 소개글은 "그래서 키 몇인데?", "직업은", "대학 어디 나왔대?"정도 될 것이다. 그래서 소개글도 흥미를 돋울 수 있게 지어야 한다. 구구절절 떠벌리는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의 스펙이 이만큼 쩝니다' 어필하는 것이다. 나는 소개글 또한 요즘 트렌드답게 간결하게 작성했다.
이제 작성할 건 다 했다. 순위권에 있는 웹소설들처럼 나도 저 자리에 올라갈 수 있을까? 이상하게도 준비를 많이 할수록 자꾸만 구멍이 보이는 것 같다. 하지만 더는 끌 수 없다. 웹소설 아카데미에서 들었던 이야기가 있다. 일단 쓴 이상 자기 작품에 너무 애정을 쏟지 말라고. 맞는 말이다. 이 작품이 될지 말지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 누구도 모른다. 어렴풋한 확률만 있을 뿐. 독자들이 좋아하면 잘 된거고, 혹여나 안 된다면... 다음 작품을 기약하면 된다. 살면서 실패를 많이 한 것이 이럴 땐 도움이 된다. 넘어져도 곧바로 일어나는 게 이제는 버릇이 되었으니까.
업로드 전. 문득 나 자신을 되돌아봤다. 내 스스로도 지난 몇 개월 전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웹소설에 나오는 <상태창>으로 본다면 나는 분명 달라져 있을 것이다. 미약하게나마 느껴졌다. 개고생한 만큼 나는 성장했다고.
<상태창>
이름 : 기면민
직업 : 웹소설 연습생
전용 스킬 : <웹소설 클리셰 Lv.31>
<웹소설 제목 짓기 Lv.12>
<웹소설 인풋 Lv.23>
<하루에 5,000자 쓰기 Lv.33>
<한숨과 자괴감 Lv.48>
<피디한테 검사맡기 Lv.8>
......
종합 등급 : ???
분명 몰랐던 스킬들이 생겼다. 하루 5,000자도 버거웠던 내가 이제는 4시간 만에 한 편을 쓸 수 있게 됐다. 100원짜리 소설을 팔 모든 준비가 끝났다. 얼마를 팔 수 있을까. 두근거림과 걱정이 한 번에 몰려왔다.
이번엔 달랐다. 이전과는 모든 것이. 웹소설만의 코드를 체득했고, 작가병까지 치유했다. 게으른 천성도 약간이나마 고쳤다. 웹소설만을 배운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한층 성장한 것 같았다.
그런데 예전과 차이점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웹소설 작가에겐 치트키나 다름없는 특전이 내게 들어왔다.
프로모션이었다. 내게 부스터와 날개를 달아줄.
플랫폼에선 주기적으로 프로모션이란 걸 몇몇 작품에 걸어주는데 이것의 혜택은 어마어마하다. 독자들의 눈에 더 쉽게 띠어 갑자기 폭발적으로 성적이 올라가는 것이었다. 나 또한 이런 S급 버프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 아카데미를 다닌 수강생만의 혜택이었다. 역시 초심자의 행운이란 이럴 걸까.
이제 갖출 건 다 갖췄다. 결과는 어떻게 나올까. 그건 나도 궁금하다. 중요한 건 성적이 잘 안 나와도 무너지거나 할 것 같진 않다. 배워서 성장한 만큼 다음 작품에 써먹으면 되니까.
드디어 다음 달 내 작품이 런칭한다. 몇 번 엎어진 적이 있어 첫 작품은 아니지만 뭔가 이번이 진짜 처음 같다. 처음으로 온 힘을 다해 최선을 다한 느낌. 진정한 100원짜리 소설가로 입문하는 순간이었다.
날자, 날자구나.
다시 한번 날아보는 거야.
웹소설 속의 멋진 판타지처럼, 그 속의 주인공처럼.
한 번만 날아보자구나.
마침내 원고를 피디님께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