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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닮녀 Oct 10. 2022

냄새는 추억을 싣고

그림책 『계절의 냄새』(양양 지음/노란상상)

아침에 일어나 밥을 하기 위해 냉장고가 있는 곳으로 나갔다. 난방이 들어오지 않는 곳에 위치한 냉장고. 그곳의 문을 열 때마다 나는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느끼곤 한다. 오늘도 갑자기 들이닥친 겨울의 아침 공기가 나의 피부를 곤두세웠다. 며칠 전 그림책 속에서 눈이 오는 장면을 보며, 갑자기 첫눈이 그리워지네 하고 생각했는데... 생각하기 무섭게 예년보다 9일이나 빠른 첫눈이 설악산을 찾았다고 한다.



갑자기 가을이 훅 달아난 것 같아 아쉬웠다. 아직 꺼내지도 못한 가을 옷들도 있는데, 점점 사라져 가는 가을이 아쉽고 또 그렇게 만든 게 나인 것 같고, 우리인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일었다. 그 마음에 조금이라도 더 가을을 느끼고 싶었다. 가을에는 어떤 냄새가 나더라....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나뭇잎이 빨갛게 익어가는 냄새, 꼬릿 꼬릿 누군가 은행 열매를 밟은 냄새, 높고 맑은 하늘처럼 깨끗한 냄새, 어디선가 마른 장작을 태우는 냄새, 가을운동회의 꽉 기운찬 함성 냄새, 가을 소풍 가는 날 차갑게 식은 김밥 냄새, 나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게 되는 외로움의 냄새.



그림책 『계절의 냄새』(양양 지음/ 노란 상상)에서는 한 아이가 아빠에게 냄새를 모았다고 자랑한다. 계절마다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추억의 냄새를 차곡차곡 모아 아빠와 함께 맡아본다. 아이는 냄새를 후각으로만 기억하지는 않는다. 추억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냄새로 표현했다. 수줍음과 설렘의 냄새, 알싸했던 여름밤의 냄새, 그리고 늘 포근한 아빠의 냄새까지. 우리는 냄새로 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나에게 추억의 냄새란, 여름이면 바닷가로 휴가 떠나는 날 새벽에 어김없이 방 안 곳곳까지 퍼졌던 기름 냄새(엄마가 손수 통닭을 튀겨주셨답니다^^), 엄마의 사랑이 느껴지던 그런 냄새. 가을에는 지독한 비염 때문에 끊임없이 재채기와 기침 배틀을 하느라 맡았던 두루마리 휴지의 향. 이 즈음에 전어를 좋아해서 꼭 챙겨 드시던 아빠 덕분에 맡았던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냄새. 겨울에는 좋아했던 사람에게 바람맞았던 쓸쓸한 냄새, 크리스마스를 대부분 솔로로 보냈던 외로움의 냄새까지 추억 속의 냄새가, 냄새 속의 추억이 속속들이 떠올랐다.

 

 

계절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는 요즘, 계절의 냄새를 맡으며 그림책 속 아이와 아빠처럼 다들 추억의 시간으로 빠져들어보면 좋겠다. 그 안에서 누군가를 향한 사랑을, 또 사무치게 느껴지던 그리움을, 황홀했던 기쁨을 다시 느껴보기를.





나에게 가을은 앞서 말한 그런 냄새들의 모음이었는데, 지난해부터 가을의 냄새에 튀김 냄새가 추가되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가 나는 낙엽을 한껏 모아서는 내게 뛰어오는 아이. 엄마가 튀김을 좋아한다며 엄마에게 튀김을 선물한다며 귀 옆에서 낙엽을 한 번에 힘껏 부서뜨린다. 

 

'바스락바스락 타닥타닥' 

 

소리가 진짜 튀김 튀기는 소리 못지않다. 지글지글 기름 끓는 소리. 타닥타닥 기름 빠지는 소리. 덕분에 나에게 가을의 냄새가 가을의 추억이 또 추가되었다. 낙엽 튀김을 모두 튀기고서 나를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그 눈빛 덕분에 달콤한 사랑의 냄새도 가을의 냄새에 추가되었다.  


내일은 나의 추억 속 계절의 냄새에 빠져 가을을 더 만끽해야겠다. 진짜 훅 가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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