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쓰기홀릭

제가 말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글쓰기는 치유의 향연이다'라고

by 책닮녀


'글쓰기는 치유의 향연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을 정말 싫어했습니다. 저는 일단 '치유'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모든 아픔이 있겠지요. 평탄해 보이는 삶을 산 사람도 저마다 헐벗어 시린 구석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아픔의 과정도 모두 차곡차곡 쌓여 하나의 인간이 완성되는 것을. 굳이 구태여 그것을 치유해야 하나 그렇게 명명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사실 저는 그림책으로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위로를 건네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책 치유 전문가, 그림책 테라피스트라는 말을 종종 쓰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낯 뜨겁고 남사스러워 쥐구멍이 있다면 숨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림책에는 분명 그런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을 쓰다듬고 마음을 덮어줄 힘이요. 저도 그렇게 그림책으로 위로받고 용기를 얻어 여기까지 왔고 계속 나아가는 중이니까요. 그런데도 왠지 모르게 그런 말이 거창해서 부담스러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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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과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치유의 힘이 있더군요. 치유라는 말이 좀 어울린다는 생각을 이번에 하게 됐습니다. 글을 쓴다고 해서 얽히고설킨 문제가 해결되고 몸과 마음을 옥죄고 있던 상처들이 씻은 듯이 사라져 훨훨 날아다니는 경우는 없습니다. 네, 단호하게 없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고 나면 쓰기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집니다. 답답한 마음속에서 요동치던 심장이, 쿵쾅쿵쾅 비트에 맞춰 쏟아낸, 랩 보다 빠른 글들은 내 마음속의 응어리를 풀어 마구마구 쏟아낸 산물입니다. 비록 마음 밖으로 응어리의 조각들을 모두 떠나보내지는 못했지만, 구멍 난 마음에 제 짝을 찾아 딱 맞는 퍼즐을 완성해주지는 못했지만, 일단 풀어낸 것만으로도 가슴은 시원합니다. 머리도 한결 가벼워지고요.



얼마 전 아빠의 갑작스러운 응급실 소식을 글로 기록했습니다. 사실, 응급실에 갔다거나 아이가 아프다는 글을 쓰는 사람들을 보며, 그런 긴박한 상황에 글을 쓸 수가 있나? 하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어요. '덜 아프니까 살만하니까 글을 쓰는 거겠지', '유후! 좋은 글감 하나 찾았구먼' 하고 글을 쓰는 거라며, 그런 글을 쓴 사람들의 진정성을 의심했습니다.


안 좋은 일은 한꺼번에 몰려온다. (brunch.co.kr)



그런데요, 아빠의 아찔한 순간을 듣는 순간, 너무나도 글을 쓰고 싶어 졌습니다. 답답한 내 마음을 이 하얀 배경 속 까만 커서가 그려내는 세상에라도 쓰지 않으면, 답답해서 나까지도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응급실로 달려가 아빠의 곁을 지킬 수 없기에 아빠의 생사가 오가는 그 순간에도 차의 시동을 켜고 달리는 대신 컴퓨터의 전원을 켜고 글을 달려 내려가 썼습니다. 잘 쓰고 싶은 맘보다는 그냥 마구마구 쏟아냈어요.



그러고 나니 조금 여유가 생기더군요. 복잡한 문제를 깔끔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글쓰기의 묘미라고, 쓰기 홀릭 4화 <복잡한 인생 고민을 말끔하게 정리해주는 세상 쉬운 방법>에서 제가 이야기했지요? 편찮으신 아빠를 위해 내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지금 나에게 필요한 지혜가 무엇인지 정리가 되더군요. 슬프고 막막했던, 암흑 같았던 저의 마음에 한줄기 빛까지는 아니지만, 깜빡깜빡 거리는 희미한 가로등 하나는 켜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글쓰기가 치유의 향연까지는 아니더라도 치유의 'ㅊ '정도는 되게 끔 하더라고요. 글쓰기로 먹게 된 나의 단단한 마음이 보낸 응원 덕분인지, 아빠의 강력한 의지 때문인지, 엄마의 미운 정이 잔뜩 담긴 간호 때문인지 무엇 때문인지는 잘 몰라도 아빠는 조금씩 호전되고 있으시답니다. 그래서 오늘도 저는 이렇게 글을 쓰면 제 마음을 들여다보고 쓰다듬어 주고 있어요.



힘드신가요? 억울하신가요? 답답하신가요?

마음속에 묵혀둔 김장독 꺼내 보세요, 구더기는 모두 걷어내 버리고

깔끔하게 꾹꾹 눌러 세월의 맛을 제대로 묵은, 묵은지의 맛을 살려보자고요.


어떻게요?

글을 쓰면 됩니다. 간단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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