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과 Oct 10. 2024

물을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그의 눈빛이 너무 따뜻해서


타겟 어쩌고 했던 것에 이어서



시니어 손님들이 많이 오시면 좋다~고 했지만 사실 나이 지긋한 분들이 십분의일 2층 문을 열고 들어오시면 처음 아주 잠깐은 멈칫 하기 마련이다. 아무래도 이 공간에서 많이 뵙진 못하니까 조금 더 신경이 쓰인다. 그게 싫진 않다. 젊은 세대가 더 많아져버린 요즘 을지로에서는 오히려 반갑기도 하다. 이 골목까지 어떻게 오셨을까... 어련히 알아서 잘 오셨겠지만 어딘가 용기 있는 행동을 하셨다는 생각에 더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다. 용기 운운까지 가지 않아도 그냥 그분들이 우리 부모님이라고 생각하면? 시선이 확 달라진다. 더 챙겨드리고 싶고 뭐 빠진 건 없나 자꾸 돌아보게 되고.



언젠가 노부부가 함께 방문하신 적이 있다. 하필 합석을 해야하는 큰 바 테이블에 앉으신 두 분은 주문을 끝내고 한참을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 지나가는 나를 보고 말씀하셨다. 



우리 물 좀 받을 수 있을까요?



십분의일은 물이 셀프다. 이곳을 캐쥬얼 와인 바이자 일종의 카페같은 곳이라고 스스로 정의하면서 물을 셀프로 마시게끔 뒀다. 사실 초기에 혼자 하느라 손이 부족해서 둔 것도 있다. 다행히 손님들은 안내에 따라 물을 잘 드신다. 하지만 가끔은 와인 바인데 물을 안주나...? 하시는 손님들도 간혹 있다. 나는 물을 찾는 할아버지 손님에게 본능적으로 "아 물은 저쪽에서..." 라고 말을 뱉다가 왜인지 아차 싶은 마음이 들어 "아 잠시만요!" 라고 하고는 급히 셀프 테이블에 놓인 물병과 컵 2개를 직접 가지고 왔다. 



물은 원래 저쪽에서 드실 수 있는데, 필요하시면 저희가 가져다 드릴게요. 다 드시면 또 말씀해주세요.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해봤자 다섯 발자국이면 갈 수 있는 곳. 그냥 가져다드리고 싶었다. 물을 받으신 노부부가 어떤 제스쳐를 취하셨었나? 잘 기억나지 않는다. 바쁜 날이었다. 그런데 잠시 뒤 그분들에게 와인과 음식을 서빙하고 돌아서는 찰나, 갑자기 할아버지 손님이 내 팔을 덥썩 잡으시더니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셨다. 펴보니 만 원 짜리 한 장.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게 뭐지?



아니 내가 그냥 고마워서 그래. 그냥 받아줘요.



나는 당황했지만 감사하다고 말하고 돌아섰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라고 했던 것 같다) 굳이 더 뭐라 말을 붙이기엔 손에 쥐어주시는 할아버지 손님의 눈빛이 너무 따뜻했다. 처음 주문하실 때부터 공손하고 젠틀했던 분들. 얼굴은 잊었지만 사람의 태도와 매너같은 것들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렇게 손님에게 처음 팁이라는 걸 받아봤다.    



세대간의 갈등, 불통 같은 것들은 어쩌면 실제로 존재하지않는 신기루일지 모른다. 사소한 친절만으로도 쉽게 걷혀지는 안개같은 것들. 내가 건넨, 정말 별 것 아니었던 물병 하나, 그리고 그 분이 내게 쥐어주신 만 원 짜리 한장. 덕분에 아마 나는 이후 더 경계심을 내려놓고 어르신 손님들을 더 반갑게 맞이했을 것이다. 그분도 여전히 아내 분의 손을 잡고 젊은이 득실한 서울의 힙한 공간들을 나들이 하고 계실까.



p.s


그 때 받았던 1만 원은 당시 읽던 책에 껴두고 책갈피로 쓰며 한동안 가지고 다녔다.

그런데 도저히 언제인지 모르겠는데 책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말았다. 온 집안을 뒤졌지만 어디갔는지 모르겠다.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자본론> 어디갔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