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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과 Oct 16. 2024

 물 한 잔만 따라봐요 - 에피소드2

믿을 건 씨씨티비 뿐이었을까

뭐? 손님 보고 나가라 마라? 



남자는 말과 동시에 내 멱살을 잡았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체구가 큰 그는 내 멱살을 잡은 채 나를 이리저리 휘두르다가 바닥에 내팽개쳤다. 테이블이 밀려나고 의자 몇 개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다른 손님은 모두 빠지고 여기 이들 3인과 사장인 나, 그리고 그날 일을 도와주던 친구 한 명까지 총 다섯 명이 대치한 상황. 나는 곧바로 일어나 키 큰 남자의 얼굴을 있는 힘껏 가격했고 싸움은 곧 3대2 패싸움으로 번졌, 을 수도 있지만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종잇장처럼 쓰러져 있던 나는 엉거주춤 일어나 상대를 가격하는 대신, 옆에 있던 친구를 보며 비장하게 "G형한테 연락해." 라고 했고 (근처에서 장사하는 형인데 100kg가 넘고 수염을 기르고 있다) 핸드폰을 열어 경찰에 폭행 신고를 했다. 빠른 대처였다. 그 순간만큼은 마치 전장을 지휘하는 장수같았다. 전투에 완전히 패하고 지원 요청을 하는 장수... 


이후 다양한 장면이 느린 화면으로 재생됐다. 토마토 매니아는 갑자기 자리에 앉아 담배를 피기 시작했고 물 러버(=키 큰 남자)는 계속 씩씩거리며 서 있었다. 경찰은 금방 출동했지만 가게 위치를 정확히 찾지 못해 내가 손님에게 설명하듯 골목으로 오는 길을 알려줘야 했다. (동시에 나는 토마토 매니아를 향해 담배 끄세요. 여기 금연이에요! 따위의 말을 해야했다) 


경찰이 왔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 있었다. 경찰이 쌍방 폭행으로 알고 출동했다는 것이다. 키 큰 남자가 자기가 맞았다며 나와 동시에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그는 굉장히 공손하게 경찰을 맞았고 헤매고 있던 경찰을 직접 매장으로 안내했다. 계단을 올라온 경찰 3명이 가게를 둘러보며 와 여기는 또 언제 생겼대~하며 감탄했다. 분통이 터졌다. 출동한 경찰들 중 한 명이 물었다. 


여기 씨씨티비 없어요?


아 그렇지, 씨씨티비가 있었지! 잠시 뒤 보안업체가 출동했고 씨씨티비 확인을 위해 작업하기 시작했다. 그때 십분의일 멤버 P가 도착했다. 그는 우리 멤버들 중 가장 악랄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내가 단톡방에 가게에서 폭행사고가 났다, 라고 띄우자 바로 매장으로 달려왔다. 다른 사람이 아닌 저 악마 같은 P형이 오더니. 천군만마를 얻는 느낌이었다. 역시나 P형은 오자마자 상황 파악을 끝내고 키 큰 남자에게 대뜸 '사과는 하셨어요?'라며 압박에 들어갔다. 키 큰 남자는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에 꽤 당황한 눈치였고 경찰에게 하듯 당당하지 못했다. 그제야 나도 조금씩 침착해지기 시작했다.


씨씨티비 영상이 나왔다. 당연하게도 영상 속 나는 키 큰 남자에게 일방적으로 휘둘리고 있었다. 아무런 저항도 못한 채 종이인형처럼 내동겨쳐지는 나를 보니 조금 현타가 왔지만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현장에서 함께 영상을 본 경찰은 쌍방은 아닌데... 같은 몇 마디 말을 중얼거리더니 우리에게 몇 가지를 묻기 시작했다. 키 큰 남자는 영상을 본 뒤로 기존의 기세를 거의 잃었다. 그는 횡설수설하기도 했고 갑자기 나를 부르더니 잠깐 따로 얘기하자고도 했다. 경찰이 바로 제지했다.       


믿었던 동네 형인 G가 도착한 건 거의 모든 상황이 끝난 다음이었다. 그는 무슨 생각이었는지 "꼼짝 마라 쏜다!" 같은 멘트를 뱉으며 2층 매장으로 올라왔는데 진짜 경찰이 세 명이나 있는 걸 보고는 깜짝 놀라 백스텝을 밟으며 다시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래 믿을 건 씨씨티비 뿐이구나. 


 한편 그 와중에 또 한 가지 허파 디비지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으니... 토마토 매니아가 주방에 들어와서 이것저것 둘러보고 있었던 것이다. 나와 P형이 강하게 제지해서 쫓겨나가긴 했다만 의아한 일이었다. 그는 왜 남의 주방에 들어갔을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경찰에게 여기 위생 상태가 어떤지 혹시 영업정지에 걸리는 건 없는지 봐달라 요청했다고 한다. 물 러버가 장비 같은 스타일이라면 토마토 매니아는 지략형이었던 것이다. 물 위에 토마토가 있었다.    


나는 경찰서에 가서 피해자 조서를 썼다. 거의 모든 십분의일 멤버가 야밤에 경찰서로 달려왔다. 뉴스에서나 볼법한 폭행사고를 기대하고 온 멤버들은 겉보기에 내가 아무 탈이 없자 조금 실망한 눈치였지만 다시 돌아온 동네 형 G를 비롯한 몇몇 동네 상인들과 멤버들이 함께 모여 모처럼 새벽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웃고 떠들다 갔다. 놀랍고 치욕스럽고 분한 밤이었지만 그래도 훈훈한 결말. 오만 가지 감정이 머릿 속에서 휘감겼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전화 한 통이 왔다. 키 큰 남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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