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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박가 Sep 11. 2024

신정언니와 대전나들이

  신정 언니는 대전에 사는 둘째 큰아버지의 장녀였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언니는 다섯 살 때부터 밥을 하고 일곱 살 때부터 동생들을 업어 키웠다고 한다. 나는 그게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 언니도 나도 학교 가기 전부터 밥을 하고 동생들을 돌봤으니 신정 언니와 크게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눈에는 신정 언니만 대견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언니가 우수한 성적으로 여상을 졸업하고 은행에 취직한 건 할머니의 큰 자랑거리였다. 나는 은행이 얼마나 대단한 곳이기에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할머니의 편애를 듬뿍 받는 사촌들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별거 아닌 일에 크게 감동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보기 좋지 않아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신정 언니만은 예외였다. 언니는 할머니의 칭찬을 듣는 다른 사촌들과는 다르게  늘 겸손하고 수수했다. 목소리에 오면 항상 우리에게 다가와 친근하게 대해 주었다. 또 할머니가 미워하는 우리 어머니를 잘 따랐다.  그거 하나만으로도 나는 신정 언니가 좋았다.


  5학년 겨울방학 때 언니가 우리 언니, 나, 셋째 동생을 대전에 데리고 갔다. 나는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따라 글짓기 대회에 나가본 것 빼고는 대전에 놀러가는 게 처음이었다. 언니방 서랍장 위에 빼곡하고 가지런하게 진열돼 있던 크리스털 조각들이 너무 반짝거려서 조금 낯설기도 했지만 큰아버지 큰어머니의  다정함에 곧 마음이 편안해졌다.


  언니가 일을 하러 갈 때 우리는 근처에 사시는 막내 작은 아버지댁에 맡겨졌다. 작은댁에서 간식으로 과자를 접시에 예쁘게 담아서 주셨다. 나는 밥이 아닌 과자를 접시에 담아주는 대접을 처음 받아봐서 놀랍고 신기했다. 집에서는 누가 다 먹을까 싶어 과자 봉지가 바닥을 보일 때까지 쉬지 않고 먹었는데 어쩐지  예쁜 접시 앞에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저녁이 되어 언니가 퇴근하는 시간이 되면 우리의 또 다른  데이트가 시작되고는 했다.


  언니는 주말에 우리를 동양백화점에 데려갔다. 나는 친구 진영이한테 백화점에 가면 없는 게 없다는 걸 듣기만 했지 백화점이 그렇게 큰 곳인지 몰랐다. 에스컬레이터라는 것도 처음 타봤다. 첫발을 언제 올려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어 한참을 망설이다 에스컬레이터에 올랐다. 그리곤 안전하게 내릴 때까지 떨리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동양백화점에서 우리는 돈가스를 먹고 여러 가지를 구경했다. 곧 중학교에 입학하는 우리 언니에게 신정언니가 초록색 줄무늬 잠바를 사줬다.


    언니를 따라 대전에 가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영구와 땡칠이'를 보러 극장에 간 것이다. 극장도 그때 처음 가봤다. 바탕골에 사는 진영이네 오빠한테 '어디로 가니 우뢰매'로 시작하는 극장에서 봤다는 우뢰매 노래를 따라 불러만 봤지 내가 극장에 갈 거라고는 생각도 못해봤었다.


  실내등이 꺼지고 스크린에 창호지로 바른 닫힌 창문이 나타났다. 잠시 뒤 영구가 그 문을 열고 '띠리리 리리리 영구 없다'하며 영화가 시작되었다. 나는 실제로 영구가 극장 안에 온 건 아닌지 헷갈리기까지 했다. 배꼽을 잡고 웃다 보니 금세 영화가 끝났다. 너무 실감이 나서 영구가 스크린 뒤에서 짠하고 나타날 것만 같았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영구 가면을 선물로 주었다. 집에 돌아가 한동안은 종이로 된 그 가면이 내 큰 자랑거리가 되었다.


  언니가 참 고마웠지만 사촌 동생들에게 그렇게 베풀고 마음을 써준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그때는  잘 알지 못했다. 언니는 누구에게나 칭찬받고 사랑받을 자격이 넘치도록 충분한 사람이었다. 할머니가 유일하게 제대로 잘 본 손주가 아닐까 싶다. 언니는 우리 어머니처럼 아들 쌍둥이를 낳았고 아들 좋아하는 할머니를 다시 한번 행복하게 해 주었다.

※ 신정언니와 진영이는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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