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발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바닥에 구멍이 뻥 뚫린 운동화. 왕복 두 시간씩 걸어 다니던 통학 길은 신발 바닥이 쉽게 닳게 만들어구멍나곤했다. 어린 마음에도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선생님은 먼저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올라가셨다. 그제야 나도 운동화를 벗을 수 있었다. 선생님 댁은 석교동이라고 했다. 처음 들어본 동네였지만 내가 태어나서 가장 멀리 가본 첫 도시이기도 했다.
다음 날 보문산 글짓기 대회에 데려가기 위해 선생님은 나를 댁으로 데려가신 것이었다. 당일 아침에 보문산까지 내가 못 올 거라는 걸 분명 아셨으리라. 나와는 다른 세상 속에 산다고 느꼈던 선생님댁에 간다는 것이 어렵기만 해서 마음 한 구석이 조마조마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내가 4학년 때 우리 반은 한 달에 한 번 발표왕을 뽑았다. 선생님께서 발표를 잘하거나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아이에게 주는 상이었다. 발표왕이 되면 조장이 되는 것은 물론 필통, 실내화, 가방 등 꽤 큰 선물을 받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자 내가 이번 달 발표왕이라 선물을 준비하셨다며 선생님께서 새 운동화를 내미셨다. 명절 때가 아니고서는 새 운동화를 신어 본 적이 없었지만 설렘보다는 약간의 부끄러움과 함께 안도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금산 인삼제가 가장 큰 대회인 줄 알았던 나에게 선생님은 대전에는 금산 인삼제보다 훨씬 큰 글짓기와 미술, 판화 대회라는 것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셨다. 나는 초등학교 때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어머니께서 시장에서 사 오신 전래동화 테이프를 늘어지도록 돌려 들었던 게 내 문화생활의 전부였다. 그러니 글인들 잘 썼겠는가. 선생님께서는 이런 특별할 것도 없는 나에게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이제야 그 번거롭고 귀찮은 일을 내게 해주셨다는 것이 보통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겠다.
그 대회가 어떻게 됐고, 학교에는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날 보문산 광장에서 처음으로 마주했던 수많은 인파와 비둘기들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있을 수 있다는 게 놀라웠다. 대회가 개회된다는 방송과 함께 하늘에 붕 떠있는 닭장 같은 비둘기 집에서 비둘기 수백 마리가 하늘을 일제히 같은 방향으로 날아올랐다가 한 바퀴 돌고 다시 새집 속으로 들어가는 장면에서는 가슴이 울렁대기도 했다.
세상의 중심이 금산군 복수면인 줄 알았던 11살의 아이에게 글짓기 대회라는 명분으로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선생님의 사랑을 이제야 느낀다. ‘너는 좀 더 넓은 세상을 보아야 해’라는 직접적인 말보다 얼마나 가슴을 울리는 큰 사랑의 메아리인가. 그 작은 아이의 자존심을 발표왕으로 추켜세우며 주신 사랑의 운동화. 이기황 선생님. 그 이름 석 자는 아직 내 가슴속에 따뜻하게 살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