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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박가 Oct 09. 2024

쌍둥이가 경운기에 깔리다1

내 기억 속 이야기

  마을 한가운데의  다리 아래 '둥구나무' 옆에는 도랑을 따라 아카시아 나무들이 즐비했다. 오월이 되면 아카시아 꽃 향기가 온 동네를 물들였다. 아카시아 꽃 한입에 온몸이 봄으로 향긋했다. 우리는  줄기를 꺾어 가위바위보와 함께 한 잎씩 떼면서 놀기도 했다. 그게 재미없어질 때쯤이면 잎을 떼낸 줄기로 펌 놀이를 했다.


  잎이 없는 줄기에  머리카락을 조금씩 넣고 돌돌돌 돌려 고정시켰다. 핀이 있으면 더 짱짱하게 고정할 수 있을 테지만 그런  걸 준비해 올 턱이 없었다. 아카시아 펌이 잘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다른 놀이를 이어갔다. 우리는 바닥에서 색이 고운 조약돌을 주웠다. 그걸 갈아 만든 가루를 손톱에 바르고 수차례 비벼주며 윤이 나게 했다. 자연 매니큐어인 셈이었다. 그렇게 놀다가 줄기를 풀어보면 어느새 곱슬곱슬 펌머리가 돼있었다. 감고 나면 바로 풀릴 터였다. 그걸 알면서도 마냥 재미있어서 긴 시간 머리를 말곤 했다.

 

  그날은 계절의 여왕이 불러대는데도 밖에 나가지 않고 마루에서 뒹굴거리고 있었다. 마당에서는 닭이 모이를 콕콕 쪼아 먹고 있었다. 그런 닭을 바닥에 얼굴을 붙이고 바짝 엎드린 채  누렁개가 구경하고 있었다. 아카시아꽃 향기가 마루에 살포시 내려오면 슬슬 졸음이 몰려왔다. 눈이 감기려는 찰나에 둥구나무 아래에서 난리 치는 소리가 들렸다.


  뭔 일인가 싶어 슬쩍 내다보니 셋째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쌍둥이 동생들  다리가 아버지의 경운기 바퀴 아래 깔렸다는 것이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하늘이 노래졌다. 다리로 정신이 나간채로 뛰어나갔다. 어른들이 경운기 주변에 몰려있었다.


쌍둥이는  다리를 앞으로 쭉 편 채로 경운기 뒷바퀴 양쪽에 한 명씩 깔려있었다. 어떻게 그리 된 건지, 이제 내 동생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없어 아찔했다. 들에 나갔던 어머니가 오시고 우왕좌왕 난리법석이었다.


  경운기 위에는 벼 소독을 위한 농약통이 려 있었다. 고무로 된 농약통은 어마어마하게  컸다. 뒷집 육촌 오빠가 경운기를 뒤쪽으로 빼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아버지가 경운기를 움직였을 것이다. 나에게 경운기가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우리 쌍둥이 다리를 어쩌나 하는 무서운 생각뿐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경운기 바퀴가 쌍둥이 다리 위를 다시 지나가고 난 에야 다리를 경운기 바퀴에서 뺄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았다.


  두 아이는 평생 걷지 못할 것이다.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겼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절망과는 다르게 쌍둥이 다리는 멀쩡했다. 아직도 어떻게 된 건지 잘 모르겠다. 그날 경운기 위에 실려있던 독용 고무통은 열 살짜리 아이들 열명은 너끈히 들어갈 만큼 어마어마하게 큰 통이었다. 거기에 물까지 가득  받아두었다는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무렇지 않게 일어난 것이다.


  이제 내가 두 아이를 키우고 보니 그 순간 어머니 아버지의 마음이 어땠을까 싶다. 초등학생인 어린 나도 하늘이 노래지는 심정이었는데 숨이나 제대로 쉬셨을까 싶다. 할머니가 그렇게 아들아들하며 고대 맞이하던 우리 집 쌍둥이는 그렇게 한 번씩 대형 이벤트로 우리의 심장을 터지게 만들어주곤 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기억하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내 기억에는 한계가 있었다. 최근에 어머니께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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