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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박가 Oct 16. 2024

쌍둥이가 경운기에 깔리다2

어머니의 이야기

아버지는 중들 논에서 소독할 준비를 하셨다고 한다. 경운기 위 소독통에 물을 받고 계셨고 어머니는 근처 논에서 다른 일을 하고 계셨다고 한다.


그 무렵 네 살쯤 쌍둥이를 언니와 나 둘 중 누군가가 데려왔을 것이다. 쌍둥이는 마늘을 덮었다가 거둬놓았던 비닐이 잔뜩 쌓여있는 곳에서 놀고 있었다. 농사일이 원체 많아서 폐비닐부터 말뚝까지 제때 치우지 못하고 쌓아놓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위험하긴했지만 그런 버려진 것들이 우리의 놀잇감이 되기도 했다. 사정을 몰랐던 아버지가 소독물을 다 받고는 쌍둥이가 있는지도 모르고 경운기를 뒤로 빼다 큰 쌍둥이가 먼저 바퀴에 깔렸다고 한다.


아버지의 외침에 어머니가 뛰어왔고 당황하고 놀란 아버지가 경운기를 앞으로 몰다 이번에는 반대편 뒷바퀴에 작은 쌍둥이 다리가 깔린 거였다. 아버지는 물을 가득 받아둔 소독통에 생각이 미쳤고 그 많은 물을 쏟아내기 바빴다고 한다. 그날따라 들에 지나다니는 사람 하나 없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경운기부터 빼라 하며 한바탕 난리를 쳤고, 그때서야 아버지가 경운기 바퀴를 사선으로 돌려 움직여 작은 쌍둥이를 빼냈고, 그다음 다시 반대편 사선 쪽으로 돌려 큰 쌍둥이도 빼냈다고 한다.


그 순간 어머니는 우리 애들이 살 수 있을까 하셨단다. 빼내는 과정에서 상반신이 빨려 들어가기도 했단다. 창자가 다 터졌을 거 같으셨다고 한다. 아이를 언니인지 나인지랑 하나씩 업고 오며 오만가지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집에 와서도 쌍둥이는 걷지 못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남은 다른 가족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셔야 했다. 저녁을 준비하다 보니 쌍둥이들이 절뚝절뚝 걷더니 어느새 말장난감을 몰고 후다닥 달려 나갔다고 한다. 그 시절 우리집에는 바퀴가 두 개 달린 탈 수 있는 말 장난감이  있었다. 말머리 양쪽으로 손잡이가 달려있어서 쌍둥이는 그걸 양손으로 잡아끌고 온 동네를 누비며 다녔다.


쌍둥이는 무사했던 것이다.


 이렇게 기억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비교적 가벼웠던 내 기억과 달리 어머니 얘기를 듣고 나니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작은 쌍둥이를 먼저 빼내면서 큰 쌍둥이가 바퀴에 더 오래 깔려있었던 게 어머니는 삼십 년이 더 지난 지금도 가슴 아프다고 하셨다. 네 살 큰 쌍둥이의 얼굴이 자꾸 눈앞에 아른 거렸다. 말을 할 때면 침이 잔뜩 고여있던 빨간 입술이 그렇게 귀여울 수 없었는데. 지금 우리는 사이가 좋지 않다.


쌍둥이가 경운기에 깔렸던 사건은 그렇게 제대로 기억하지도 못한 채 재미난 무용담처럼 우리에게 전해왔다. 그때 어머니는 겨우 서른 초반이다. 일곱 아이의 부모가 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외할머니 마저 어린 나이에 여의고 어머니는 혼자였다. 그 마음이 어땠을까? 무엇보다 어머니는 다른 자식들을 위해 그날도 떨리는 손으로 밥을 하고 빨래를 하셔야했다.


쌍둥이가 무사해서 정말 천만다행이었다. 축축한 논길이라 큰일이 일어나지 않은 걸까하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다행스런 마음 뒤에 가슴 한편이 저미는 기분은 떨쳐낼 수가 없다. 지금의 나보다 십 년은 더  어렸던 어머니가, '누나'하며 부르던 빨간 입술의 큰 쌍둥이가 자꾸만  아른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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