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금산군 복수면 목소리.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예전에 kbs <스펀지>라는 프로그램에서 예쁜 마을 이름으로 소개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목소리는 윗동네 아랫동네 합쳐 삼십여 호 정도 될까 말까 하는 작은 산골 마을이었다. 이 작은 마을이 ‘시’로 불리기도 했다. 목소리를 발음하기 어려워했던 몇몇 어른들이 '목시’라고 부르면서 타지 사람이 그걸 곧이곧대로 알아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끼리 복수면에서 가장 큰 마을은 ‘목시’인 목소리라며 낄낄거리기도 했다.
목소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였다. '중두머니' 고개에서 내려다보면 전경으로 저수지와 '중들'논이 보였다. 마을 쪽을 향해 중들 논을 따라가다 보면오른편에 목소교회가 있었고 거기서 백 미터쯤 더 올라가면 마을의 터줏대감인 느티나무 두 그루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다리를 건너 집들이 몰려있었다.
느티나무 언덕 아래로는 도랑이 있었고 그 위로 다리가 있었다. 다리는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어른들은 돌돌돌 흘러가는 물소리를 들으며 다리 위 난간에 앉아 담소를 나누셨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야채를 다듬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은 다리 위에서 '나이먹기'나 '얼음땡'같은 놀이를 했다. 다리 아래 도랑에서 송사리를 잡고 놀기도 했다.
느티나무 건너편 다리 옆으로는 '범죄 없는 마을'이라는 현판이 철봉처럼 세 개 세워져 있었다. 면사무소 같은 데서 관리를 잘했던지 갈색 현판은 늘 반짝반짝 빛났고 그걸 지지해 주는 철 구조물도 초록색 페인트가 벗겨진 곳 없이 말짱했다.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건지 몰라 우리는 거기에 대롱대롱 박쥐처럼 매달려 놀았다.
버스 한 대 다니지 않던 우리 마을에 이천십 년대 초반에 이차선 아스팔트가 깔리고 버스가 다니기 시작했다. 매일 오전, 오후 두 번씩 총 네 번을 운행하는 버스는 우리 아버지를 비롯해 평균 연령 칠십을 넘긴 어르신들에게 요긴한 교통수단이 되어주고 있다.
목소리는 단지 생각만 해도 나에게 편안함을 주는 그런 곳이다. 지금도 나는 몸과 마음이 힘들면 목소리의 산과 들을 떠올린다. 진흙에서 나뒹굴던 순간들이 어서 쉬어가라고 말을 해준다. 뒷산에서 꾀꼴 하던 새소리가 머리를 맑게 해 주고 눈앞을 빙빙 맴돌던 매 한 마리가 고요한 평화를 가져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