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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랑맘 Jan 04. 2024

무엇을 안 하느냐

이슬아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

 나는 아이들이 시간을 허투루 보내는 것에 무척 예민한 엄마다.  나 스스로 30년의 시간을 대부분 허투루 써왔다는 자책과 사교육 없이 아이의 학습루틴을 지켜내야 한다는 의무감 둘 다 때문일 것이다.  충동적으로 일 벌이기 좋아하는 P성향이지만, 아이들의 루틴만큼은 철저히 J에 빙의되어 계획표를 짠다. 특히나 두 달이 넘는 초등 3학년 아이의 방학은 촘촘한 계획 없이는 알차게 보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어느 한 요소도 뒤쳐짐이 없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간 닦아온 '캔바' 실력으로 2주 동안 매일 할 일들을 표로 정리한 아이의 계획표가 탄생했다. 이렇게 직관적이고 심플한 계획표가 어딨냐며 혼자 뿌듯해했다. 할 일의 목록에는 10가지 정도가 있다. 엄마와 읽는 원서, 한글책 읽기, 쉬운 영어책 읽기, 집중 듣기 1시간, 영어 독해 문제집, 분수 문제집, 3학년 최고 수준 문제집, 사자성어, 신문 읽기, 기타 연습, 독후감! 물론 엄마 계획표도 함께 만들어 대결구도는 물론 포상까지 걸어 아이도 의욕적인 눈치다.


 자 그럼 이제 우아한 독서를 위해 도서관에 가볼까? 나는 학원에 돈 들이지 않고, '책육아'를 자처하는, 교육에 깨어있는 현명한 엄마라는 만족감으로 아이와 도서관 귀퉁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는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고를 시간을 주고, 나는 내 책 고르기에 열중했다. 올해는 작가별 독서를 지향하기에 예약해 둔 '가녀장의 시대'를 대출하면서 '이슬아'작가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이란 책도 함께 찾아내 대출했다. 크기도 작고, 페이지수도 적당해서 후루룩 읽기 편해 보였다.

 

 읽다 보니 뜨끔한 기분이 드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무튼, 비건의 작가 '김한민'의 말이다. '이 시대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데, 무엇을 안 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너무나 많은 가능성들이 있으니까요'. 김한민 인터뷰 앞 전에 '정혜윤' 작가의 인터뷰에서  책 제목이기도 한 '깨끗한 존경'이란 단어에 꽂혀 나의 이타심에 대해 정리가 다 안됬을 무렵에 훅 들어온 문장이다. 정말이지 나와 내 주변 말고는 관심을 1도 주지 않고 살아왔다. '정혜윤 작가'가 연민 없이 깨끗하게 존경한다는 세월호 유가족들이나 '김한민' 작가의  '남' 지향적인 사고로 출발한 비건 생활 모두 전적으로 남의 일이었다.


 순간 오늘 아침 빼곡히 나와 아이가 할 일들을 적어두고 흐뭇해했던 내 모습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다 내 아이가 잘 되기 위함이었다. 나중에 후회할 일을 만들어주고 싶지 않은 어미의 마음이었다. 아마도 오늘 아이는 방학을 잘 보내기 위해 엄마와 계획표를 만들고, 계획대로 잘 실천하면 얻는 포상으로 할 일들을 체계적으로 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웠을 것이다. 나쁘지 않다. 다만, 너무 많은 것들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과 압박감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렇게나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에서 이것저것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보다는 정말 내가 해서는 안될 것 한 가지만 지켜내는 것이 아이에게 더 필요한 일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가 그토록 환경을 걱정하며 플라스틱 사용 자제를 요구해 왔음에도 커피 맛을 핑계로 종이빨대 대신 늘 플라스틱 빨대를 꽂고 쪽쪽 빨아대던 나였다.


 각자 1시간 책을 읽고, 매점으로 가서 아이는 바나나우유, 나는 커피를 시켰다. 날도 추우니 빨대가 필요 없는 뜨아를 시키고는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 플라스틱 빨대 안 쓰려고.'  

'엄마가 웬일이야?'

'엄마도 지구를 위해 이 정도는 해야지. 방학 동안만이라도 플라스틱 사용을 줄여보자!'

'엄마가 웬일?'

'무엇을 하느냐 보다 무엇을 안 하느냐가 중요한 거 같네. 이 분한테 배웠어!'

라고 말하며, 책에서 '김한민 작가'의 사진이 실린 페이지를 펼쳐 보여주었다.


 아이의 머릿속 생각부터 말투, 행동거지에 이르는 이를테면 '인격'이나 '태도' 대부분 부모로부터 만들어질 것이다. 플라스틱 빨대를 거리낌 없이 쓰면서 아이의 성장에만 연연하던 어제의 엄마는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 사용을 자제하고, 책에서 깨달은 내용을 실천해 보는 오늘의 엄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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