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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20. 2024

우리의 시작은 3월부터

큰 아이가 학교생활을 하게 된 이후로 내게 3월은 마치 1월 1일 같다. 3월 2일이 되어야지만 무언가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는 기분이랄까. 아무리 해가 바뀌어도 방학으로 인해 아이와 묶인 몸이 돼 있다 보니 새로 산 다이어리에 1월과 2월은 늘 썰렁했다. 새로운 다짐과 실행은 모두 3월로 미뤄져 있었다. 1월과 2월의 춥고 긴 겨울방학을 무탈하게 보내고 나서야 3월이 시작되면 비로소 아이도 나도 땅속에서 봄을 기다린 개구리처럼 폴짝- 세상 밖으로 나왔다. 아이는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이 기다리는 교실로 나아갔고, 나는 아이가 떠난 고요한 아침을 맞이하며 뒤늦게 다이어리를 펼쳐 보았다.     


1월 1일, 새해가 찾아오고 아이는 한 살을 더 먹었지만, 학년은 2학년과 3학년 중간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겨울방학이 시작된 이후부터 입버릇처럼 “너도 이제 3학년인데” 하며 잔소리를 시작했고, 아이는 “나 아직 2학년이거든?” 하며 발끈했다. 아직 새로운 교실도 가보지 못했는데 벌써 3학년 취급을 받는 것이 영 억울해 보였다. 그런 아이를 놀리듯 “그래도 1월 1일 지났으니까 너도 10살이잖아?” 하고 대꾸하면 아이는 입을 삐쭉 내밀며 “아니.. 그래도..” 하며 어리광을 부렸다.

    

나 역시 내 입으로 ‘열 살’을 발음하면서도 그게 아이의 나이라는 게 쉬이 믿어지지 않았다. 아이의 나이가 벌써 두 자리가 되었다니! 어느 순간부터 내 나이 먹는 것엔 무감해지고, 아이의 나이를 말할 때면 “아니! 벌써?” 하고 놀라게 된다. 그리곤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가 어제 같은데..” 하며 중얼거렸다. 3월에 잘 어울리는 ‘입학’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머릿속엔 어느새 좁다란 운동장에 옹기종기 모여 서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입학식 날 아침부터 부지런히 아이를 씻기며 “잘할 수 있지?” 하고 물었다. 아이에게 하는 당부이자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 매니저 노릇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긴장이 되었다. 어린이집도 다니고 유치원도 다녔으니, 초등학교 입학도 비슷할 거라 생각했는데, 학교 운동장에 줄을 맞춰 선 아이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울렁거렸다. 어깨에 멘 새로 산 책가방이 유난히 커 보였다. 새 옷, 새 가방, 새 신발에 양말까지 새것으로 무장한 아이가 서울에 막 상경한 사람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학교에서 나눠 준 종이 왕관을 쓰고 목엔 이름표를 건 1학년 새내기들 모두 아이와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같은 유치원을 다닌 친구를 보면 이름을 외치느라 바빠 보였다. 여긴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자꾸 웃음이 나왔다. 입학식이 시작되고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몇몇 아이들은 운동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아이가 어렸을 땐 지나가던 어린 초등학생들을 보면 다 큰 것 같고 어른스러워 보였는데, 초등학교 1학년도 아직 머리에 껍질이 붙은 병아리나 마찬가지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어제 용변 후 처치 연습을 시켰던 나와 어정쩡한 자세로 밑을 닦는 시늉을 했던 아이가 떠올랐다. “나 학교에선 똥 참을래.” 하며 시무룩 해하던 표정까지. 어디 그뿐일까, 젓가락 쓰는 법, 손을 꼼꼼히 씻는 법, 바르게 앉는 법까지 이런 것도 알려주어야 하나? 싶은 것 하나하나 아이에게 알려주었다.  

   

교장 선생님 말씀이 끝나고 운동장에 교가가 울려 퍼졌다. 처음 들어보는 노래에 어리둥절해진 아이들은 옆에 선 친구의 얼굴에 가사가 적혀있기라도 한 것처럼 서로를 빤히 바라보며 히죽거렸다. 노래가 끝나고 “차렷, 인사!” 하는 구령에 맞춰 아이들이 고개를 숙였다. 머리에 쓴 왕관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짧은 입학식이 끝나고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아이가 한 것이라곤 운동장에 가만히 서 있던 것뿐이었는데 그마저도 대견해서 잘했다고 연신 칭찬을 하며 안아주었다. 한참 줄을 선 뒤에야 학교에서 마련한 현수막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아이는 햇볕에 잔뜩 찡그린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현수막이 없었다면 입학식인 줄 모를 것 같았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자마자 운동장으로 내달렸다. 갑자기 울타리를 뛰어넘은 망아지처럼 운동장은 드넓은데 어디로 뛰어야 할지 몰라 옆 친구가 달리는 쪽으로 무작정 함께 뛰기 시작했다.     


아이가 걷지도 못하던 시절, 자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남편과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나눴던 대화가 떠올랐다. “우리 아기도 크면 여기 다니겠네.” 유모차 바퀴가 데굴데굴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굴러갔다. “운동장이 좀 작은 거 같은데.” 난 집을 보러 온 사람처럼 학교와 운동장을 눈으로 훑었다. 그러면서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생각했다. 책가방을 메고 보조 가방을 든 아이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다. 유모차 안에서 세상모르고 자는 아이를 보면 그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덜컹거리는 유모차 안에서도 아이는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엄마, 발에 돌 들어갔어.” 아이가 한쪽 발로 뛰며 내게 다가왔다. 신발을 벗겨 안에 모래를 털어주었다. 곧 신발 속 자잘한 모래들까지 적응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6년 금방이다’ 입학식 사진을 보내자 어머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6년이라.. 아이가 초등학교 졸업하는 날이 오긴 올까. 운동장엔 3월의 꽃샘추위도 잊은 채 아이들이 서로를 잡기 위해 열심히 뛰고 있었다. 신발을 고쳐 신고 내달리는 아이를 보며 졸업식 날을 상상해 보았지만 역시 먼 미래 같았다. 운동장을 달리며 아이는 조금씩 자랐고, 양말 바닥에 모래를 잔뜩 묻혀오는 3학년이 되었다.     


매일 얼굴을 마주 보고 살면서도 어떤 날엔 아이가 참 새삼스럽다. 언제쯤 놀라지 않게 될까. 벌써 100일이라니. 벌써 돌이라니. 벌써 유치원에 가다니. 벌써 초등학생이라니. 익숙하고도 어딘가 낯선 얼굴을 마주할 때면 아이의 탄생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아득한 전생처럼 느껴진다. 눈앞에 서 있는 아이가 아장아장 걸었던 때가 있었나? 싶어질 만큼. 아예 처음부터 초등학생인 상태로 나를 만났던 것 같은 기분이 들면서 10년이란 시간이 이토록 까마득하구나, 고개를 주억거렸다.  

  

4학년이 되고, 5학년이 되고, 어쩌면 중학생이 되어도 매해 3월이 되면 나는 똑같은 생각을 하며 아이의 얼굴을 바라볼 것이다.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사람처럼 ‘벌써?’라는 말과 함께 지나간 아이의 얼굴을 조금씩 잊게 되겠지. 그럴 때마다 자기 몸만 한 가방을 메고 처음 학교로 들어서던 아이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것 같다. “잘하고 와.” 나의 응원을 받으며 낯선 세계로 들어서던 뒷모습을.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멀어져 가던 아이는 자신의 뒤에 누군가가 서 있음을 확인하려는 듯 연신 뒤를 돌아보았다. 나는 과장된 몸짓으로 손을 흔들었다. 내가 항상 너의 뒤에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사람처럼. 아이가 건물 안으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계속 손을 흔들었다. 무엇이든 시작하기 좋은 3월, 아이의 새로운 세계가 안온하길 바라는 마음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본 에세이는 웅진씽크빅 매거진 '엄마는 생각쟁이' 3월호에 수록된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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