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과 배신감 사이

도박의 또 다른 이름, 거짓말

by 맘달

"혹시 집에 무슨 일 있으세요? **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500만 원만 빌려달라는데, 자매님이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


"네?...... 네, 제가 알아볼게요. 알려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하다 하다 정말, 대부님한테까지 돈을 빌리려 하다니. 친구가 사고를 당해서 어쩌고 저쩌고라고 했다니 어이가 없었다. 순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이것도 도박중독자들의 증상이니 이걸 어쩌랴. 돈을 빌려주기 전에 제게 알려준 대부님이 눈물 나게 고마웠다. 화가 가라앉자 도박사실을 주변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4. 종종 도박에 집착함(예/ 과거의 도박 경험을 되새기고, 다음 도박의 승산을 예견해 보거나 계획하고, 도박으로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생각)

6. 도박으로 돈을 잃은 후, 흔히 만회하기 위해 다음날 다시 도박함(손실을 쫓아감)

7. 도박에 관여된 정도를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함

9. 도박으로 야기된 절망적인 경제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돈 조달을 남에게 의존함

DSM-5(정신질환의 진단 및 통계 편람) 도박장애 진단기준 9개 중에 위의 4가지를 보면 도박중독이 곧 거짓말이라는 것이 증명된다. 보통 사람들도 적당한 선에서 거짓말을 많이들 하지만 도박중독자의 거짓말은 일반적인 경우와 차이가 있다.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는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안일한 것인지 뒤통수를 맞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면 안다. 당하는 가족과 지인들은 배심감에 시달리고 불신의 늪에 빠진다. 거짓말을 하는 쪽은 일단 피하고 보자는 회피심리로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덮기 위해 거짓말을 덧대다 보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도박중독이 '돈'의 문제는 아니지만 '돈'과 밀접하기 때문에 '돈관리'가 필요하다. 돈이 없으면 도박을 할 수 없으니 돈줄을 막아야 한다. 처음에는 돈관리를 다이어트를 위한 식단관리 정도로 생각했는데 막상 해보니 쉽지 않았다. 재정상담사의 조언으로 돈관리를 맡았지만 유야무야 된 적도 많았고 그 후로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재정관리가 필요하다고 하니까 엄마한테 돈을 맡겼다가도 수시로 집요하게 당장 얼마를 이체시키라고 하면 견딜 재간이 없다. 충분하게 의논해서 정한 약속인데도 자기돈이니 내놓라는 식으로 나오니. 돈이 없으면 궁색해지고 기죽지 않을까 염려하는 엄마의 약점을 파고드는 수법에 놀아나면 안 되는데. 성인 아들의 돈흐름을 관리하는 게 불편하고 솔직히 귀찮고 어렵기까지 하다.




"엄마가 택배로 보낸 유산균 잘 먹고 있니?"


"네, 참 좋더라고요. 고마워요."


우연히 아들 원룸에 들렀다가 뜯지도 않은 택배상자를 발견했다. 아뿔싸, 한 달 전에 내가 보낸 유산균이다. 아, 또 거짓말.... 아들도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지으며 그냥 그렇게 말했던 거라고 한다. 그냥 그렇게가 뭔데? 당연한 증상인데 내가 깜빡하고 말았다. 습관이 되어버린 거짓말. 엄마가 널 믿을 수 없는 게 가장 힘들고 슬픈 부분이라고 했음에도 여전히... 이제 웬만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믿다니. 실제로 발등이 찍힌 것처럼 몹시 아팠다. 나아지고 있지만 아직 나은 게 아니었는데. 그래도 거짓말하는 것을 쑥스럽게 여기고 죄송하다고 말하는 것만도 다행, 천만다행이라고 여기며 마음을 달래야 했다. 실낱같은 희망을 발굴해야만 하는 절박함은 내 몫이다. 거짓말할 때마다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라면 얼마나 좋을까. 눈에 보이지 않으니 혹시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되니. 아들이 하는 말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벗어나고 싶다. 의심과 배신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것은 힘들다. 갬아넌 모임에 나오는 가족들은 도박중독자는 숨 쉬는 것 빼고는 다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다시는 도박하지 않을 거야, 그냥 운이 나빴을 뿐이야, 잠깐만 돈을 빌리는 거야, 이번 빚만 갚으면 당장 그만둘 수 있어, 한번 더 하면 손실을 만회할 수 있어...... 죄다 새빨간 거짓말. 도박에 대한 왜곡된 생각이 도박으로 이어지고 잘못된 신념으로 굳어지는 악순환이다. 세상에 이것을 감당할 사람은 없다, 가족과 지인은 물론 도박중독자 자신마저도. 뼈저리게 몸소 확인한 바로는 도박중독의 다른 이름은 거짓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