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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아닌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친애하는 친구 세훈에게 부치는 편지 11

by 청와

<현자들의 죽음>에 대한 자네의 감상문에 부치는 나의 마지막 편지라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앞에서 다 했네만, 정작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네.

“죽음은 삶의 연장이고 겁내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 그냥 삶의 연장으로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맞이하고 삶을 충실하고 열심히 살아가다가 때가 되면 맞이하면 되는 것이다.”

자네가 감상문에서 한 말일세. 그러면 되지 않겠나 싶네. 나는 나대로 정리한 바를 이야기해 보겠네.

4. 아무것도 아닌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단체 대화방에 ‘까똑까똑’거리며 뜨는 만장(挽章)의 문구일세. 뭐 달리 무어라 말하겠나. 그저 그 말의 속뜻을 한 번 새겨보자는 걸세.

명복(冥福)이라는 것은 ‘죽은 뒤에 받는 복’이라는 말일세. 살아서 복 많이 받기를 그렇게 원했으니 죽어서도 복을 받기를 바라는 것이려니.

복을 받으려거든 복을 받을 주체가 있어야 하거늘, 어느 누가 복을 받는다는 말인가? 고인의 영혼이 하늘나라, 저승으로 갔다고 하는데, 그곳이 어디인가? 고인의 생전의 자취가 남아있는 모든 곳이 그곳일세. 한 알의 씨알이 땅에 떨어져 그로부터 많은 열매가 맺듯, 나의 영혼도 이 땅에 살면서 수많은 생명들에 나의 영혼을 남기고 간다는 걸세.

하여 의상대사의 법성게(法性偈)에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한 작은 티끌 속에 시방세계가 머금어있다고 한 걸세. 머금는다는 말이 기가 막힌 말이로세. 앞에서(3.5.5.3. 삶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밥으로) 이야기한 대로, 온 몸으로 들어오는 모든 느낌과 말씀이 밥이라네.

명복이란, 죽어서 온전히 밥이 되는 것이라네. 어떻게?

4.1. 삼가 고인의 영혼을 모십니다.

돌아가신 분을 잘 보내드리는 것이 장례(葬禮)이고, 잘 모시는 것이 제사(祭祀, 祭禮)일세. 보내드리는 것에 대해서는 또한 앞에서(3.5.5.3.) 이야기했고, 여기서는 모시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네.

해월 최시형 선생님의 설법 가운데, ‘향아설위(向我設位)’ 설법이 있다네. 제사상을 벽을 향해 진설(向壁設位, 벽 쪽으로 조상님이 오신다는 생각)하지 말고, 제사상을 절하는 자신을
향해 진설(조상님이 자신 안에 계신다는 생각)하라는 걸세. 왜 그런가? 조상님의 영혼을 <내>가 모시고 있기 때문일세. 얼마나 아름다운 생각인가?

모신다는 것을, 수운 최제우 선생님은 ‘하늘을 모신다(侍天主)’고 했네. 나를 낳고 길러준 세상 영혼들이 내 안에 모셔져 있으니 그 하늘은 하나면서 여럿이라는 걸세. 내 영혼이, 내가 쓰는 언어가 어디 나만의 영혼이고, 나만의 언어이겠는가?

내 안에 아니 모셔진 영혼이 있다면 그 영혼은 내가 죽기 전에 무한한 가능성으로 모셔질 영혼일세.

하여 제사의 핵심은 돌아가신 분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기리는 일일세. 제사는 1년에 한 번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기릴 수 있으면 언제라도 기리면 되는 걸세.

내가 돌아가신 영혼의 정신을 기린다는 것은, 돌아가신 분의 영혼을 다시 먹는 식사라네. 훌륭한 제사는 밥을 먹는 일이라네. 진정, 저 밥은 저 들에서 밥상으로 돌아오신 한 생명을 내 안에 거두어들이는 일이기도 하다네.

4.2. 기릴 건 기리고 삭일 건 삭히고

돌아가신 영혼을 모신다 함은, 그 영혼을 헤아려보고 느끼고 자기 영혼 깊이 들어오시게 해야 하는 걸세.

엄하시기만 하셨던 돌아가신 나의 아버지, 그렇게만 여겼었는데, 다시 아버지의 삶을 헤아려보니, 대개의 우리 아버지들이 그러하셨듯이, 자기-자신을 돌보지 않으시고 가족과 사회를 위해서 희생을 하셨던 걸세. 홀로 다 감당하셔야 했던 가장으로서의 그 힘들고 외로웠던 순간들을 눈물로 다시 느끼게 되었다네.

술을 드시면 서너 시간 동안 무릎 꿇고 앉아서 들어야 했던 아버지의 말씀, 당신의 뜻에 맞지 않으면, ‘시끄러워! 썅~’, 이 한 마디로 모든 상황을 종료시키셨던 아버지의 권위주의적 독단, 나(장남)를 위해 공부 잘하는 작은 누이가 고등학생일 때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취업반으로 진학하게 했던, 아버지의 속이 시커멓게 타들어가셨을 눈물겨운 선택, 돌아가실 때까지 굳이 파지를 모아서 가끔 씩 오는 손녀들에게 주실 과자를 사 두셨던 것에까지 배어있던, 근면과 검소의 생활력, 그렇게 다시 아버지의 삶을 눈물로 반추하면서 아버지의 삶을 안음답게 받아들였다네.

그것이 기림이고 삭힘이려네.

4.3. 그건 너희들 몫이고, 나는?

너나 나나 모두 다 <몸>은 모였다 흩어지는 연기(緣起)하는 존재라네. 여러 차례 이야기했듯이 흩어진다는 것은 없어진다는 것(無化)이 아닐세. 다른 것들을 낳으며 그 낳아지는 것들로 이어진다는 걸세. 자신(自身)은 물질로 이어지고, 자기(自己)의 영혼은 자기 삶의 모든 자취 속에 남겨지는 거라고 했지 않은가?

그러면 자기의 영혼을 기리는 것은 살아남은 자들의 몫이고, 자기의 영혼을 남기는 것은 자기의 몫이라는 걸세.

나는 <아름다운 영혼>을 이루어 가는 삶을 선택해서 그리 살겠다고 했네. 알음다움, 안음다움, 앓음다움, 알움다움, 알함다움 등 다섯 가지의 세부 덕목(德目)을 설정해서 그 생각을 구체화했다네. 그것은 생각일세. 즉 자아의 일이었다는 걸세. 그 <아름다움>을 <나>라는 자기-자신에 내면화시키는 길이, 내가 가야할 나의 삶의 길이라네.

그러다 삶의 끄트머리에서 쓸쓸한 죽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천상병, 귀천)할 수 있기를 바라는 걸세.

그것을 삶의 보람이라고 한다네. 삶의 보람과 함께 삶의 여한(餘恨, 後悔, 뉘우침)도 남겠지. 하여, 삶의 보람과 삶의 여한이란 오늘 하루의 일상 속에 있어야 한다는 걸세. 오늘 하루를 보람 있게, 여한 없이 사는 것일 뿐, 롱펠로우의 말로는 <다만 오늘보다 나아간 우리들 자신을 / 내일마다에서 찾아볼 수 있도록 / 행동하는 것일 뿐>, 그밖에 또 뭐가 있는지 나는 모르네.

수운 선생님께서 <<용담유사(龍潭遺事)>>, <도수사(道修詞)>에서 “성경이자(誠敬二字) 지켜내어 차차차차 닦아 내면 무극대도(無極大道) 아닐런가”라고 했다네.

경(敬)이란, 삶을 오늘 하루의 일상으로 가져온 것에서 더 나아가, 나날이의 일상의 매 순간 깨어있는 자세를 말하네. 성(誠)이란, 그것이 말과 생각과 깨달음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영혼의 깊은 곳에 내면화되어 영혼에서 저절로 행동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말한다네.

<아름다움>으로 말하자면, <알음다움>에 머무르지 않고, <알함다움>에 이르러야 한다는 말일세. 자네가 전에 내 글을 읽고 내 글을 칭찬했을 때, 내가 자네에게 했던 말일세. 내가 이렇게 글로 이야기하는 것은 <알음다움>을 드러내는 짓에 지나지 않는다고. 오히려 자네가 사회를 위해 여러 가지 일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 <알함다운> 모습이라고.

내 생각의 궁극에는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이 놓여있다네. 이 말은 어떤 말로도 풀어서 설명할 수 없는 말일세. <공(空)>이라고 할 수도 있네만, <공>처럼 깨닫고 말고 할 것도 없는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라네. 그러니 너무 집착하지 말자는 걸세.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할 수밖에 없다면, 나는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삶은 무한한 가능성의 창조적 발현이다>라고 풀어서 설명하려네. 결국 자기 영혼의 선택이 자기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라면, 나는 <아름다운 삶>을 선택해서 살겠다는 걸세.

<아무것도 아닌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지금까지 한 얘기들일세.
1. 자네의 <현자들의 죽음>에 대한 감상문을 읽고
2. 인식방법에서 느껴지는 중고대인의 알음다움에 관하여
2.1. 싯다르타의 '자등명 법등명'
2.2. 최제우의 '불연기연'
2.3. 혜강의 '추기측리'
2.4. 율곡의 <격몽요결서>
3. 불연에 대한 청와의 생각들
3.1. '윤회'라는 해괴한 상품
3.2. 중고신상품 출시, '윤회론'과 '창조론'
3.3. 열반, 그 높은 곳을 향하여
3.4. ‘알함다운 영혼’이라 함은?
3.5. 죽음, 그 쓸쓸한 미래
3.5.1. <무엇이 죽는가 1> - 주어 편
3.5.2. 하나면서 여럿인 나
3.5.3. <무엇이 죽는가 2> - 추억 편
3.5.4. <무엇이 죽는가 3> - 자아 편
3.5.5. <무엇이 죽는가 4> - 자기자신 편
3.5.6. <무엇이 죽는가 5> - 영혼 편
4. 아무것도 아닌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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