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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성벽력처럼 터지던 잔기침의 시절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시집, 문학과 지성 시인선 346

by 시적 Dec 18. 2024
브런치 글 이미지 1

출처_ 슬픔이 없는 십오 초, 심보선 시집, 문학과 지성 시인선 346, 2008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48-49p


내가 산 시집이다. 시를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게 2012년이니까 그 언젠가 과거에 샀을 것 같다. 심보선의 시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에 반해서 이 시집을 아주 즉흥적으로 샀다. 그리고 후회했다. 어느 시가 잘 읽혔다고 모든 시가 내게 잘 다가오는 건 아니었다. 근데 지금 보니까 잘한 것 같다. 고민 해결 답을 무작정 찾는 책을 펼친 것처럼 우연히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를 발견했다. 이 얼마나 간략하며 공감이 잘 가는 시인가. 너무 뿌듯하다.


이 시도 "아주 잠깐 빛나는 폐허"처럼 행간이 나누어지지 않았다. 통이다. 그래도 읽어보면 나누어지는 구간은 있을 것이다.


화자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기억하는 가, 우리의 기억에 어떤 명예 어떤 검은 매듭이 남았는지를.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


여기 주말 동물원이 나온다. 주말에 나도 동물원 가봤다. 사람으로 북적거리며 동물도 구경하고 덤으로 사람 구경도 하게 된다. 졸업식 사진 찍으러 가기도 하고 또 데이트하러도 가봤다. '뇌성벽력' 검색하니까 천둥소리와 벼락이라는데 알 것도 같다. 낙타의 더딘 행진이기도 하며 동시에 시간의 빠른 진행이던 그 소년 소녀이던 시절. 체리필터라는 밴드의 노래 중에 달빛 소년이 있다. 거기서도 '벼락 맞았었지. 그건 아마 어린 나에게 사랑인 줄 모르고.'란 가사와도 결이 맞다.


보니까 '순수한 사랑'에는 황순원의 소설 소나기 속 '바보'가 아무래도 빠질 수 없는 것 같다. 바보라고 부르면 바보라고 화답하는 젊은 청춘들. 생각하니까 좀 오그라들지만 꽤 아름다운 풍경인 것은 사실이다.


마지막에는 '오랜 침묵이 만든 두번째 혀'가 등장한다. 그리고 '썩은 시간의 아들 딸 들'이 나온다. 아무래도 소년 소녀이던 시절의 첫사랑이 잘 풀리지 못한 모양이다. 사랑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곱게 접고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들이 좀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어떤 명예도 어떤 검은 매듭도 남아있지 않다고, 화자는 마지막에 서술하고 있다. 그렇다. 다 지나간 연이고 속이 썩었을지언정 그럭저럭 인간은 살아가기 마련이다.


확실히 내가 심보선 시인의 시를 다시 천천히 보니까 그때 내가 왜 그토록 빠졌는지 알 것 같다. 김지녀 시인과 진은영 시인도 떠오른다. 그리고 문득 내가 버릇처럼 하는 말, 시 속 구절을 인용한 책갈피를 만들자. 그 또한 내게 한 페이지의 추억이 되었다.


지나오니까 더 아름답게 빛나던 시간이 있는 것 같다. 그 당시에는 모르는 그런 아름다움. 난 이 시는 꼭 연애로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어떤 시는 그냥 내가 연애 시로 읽고 싶은데 이 시는 나에게 '나의 순수했던 시절을 추억하며'로 기억하고 싶다.


아마 딱히 추억할 소년이 없기 때문 같다. 그래도 술에 너무 빠져서 역류성 식도염으로 잔기침에 시달리던 시절은 있다. 뭐가 되었든 누구에게나 공통되는 감정을 건드리는 "우리가 소년 소녀였을 때"란 이 시가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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