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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l 04. 2024

당신은 유머러스하다고 우겨본다

너와 나의 연결고리...는 없지만

유머의 힘


 장애인주간보호시설에서 수업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의욕과 야망은 진작에 꺾였고, 군상화(群像畵)를 관객 삼아 공연하는 배우가 되어 있었다. 센터 가는 길 오르내려야 하는 계단은 자석 붙은 신발을 끌어들이는 쇳덩이처럼 무겁고 힘들었다. 생각이 점점 많아졌다.


 C는 지적장애와 자폐, 청결에 관한 강박을 모두 갖고 있다. 읽고 쓰기는 가능하지만 수업에 관심이 없다. 광고 문구나 교회에서 예배 볼 때 들었던 문장을 뜻 없이 계속 이야기하며 말 끝에 항상 '아멘'을 붙였다. 수업이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때는 더욱더 큰소리로 말하며 돌아다녔다. 어느날 나는 무의식적으로 "할렐루야!"라고 대답했다(종교는 없지만). 순간 선생님들 쪽에서 웃음이 터졌다. 항상 대여섯 분의 복지사 선생님과 봉사 요원이 동석해 수업이 이루어졌는데 살짝 어색하고 사무적 대화만 오가는 관계였다. 이날 이후 어딘가 모르게 편해졌다.

 그리고 몇 주가 지났다. 사인펜과 크레파스로 그리는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C는 자신의 손과 책상에 크레파스가 자꾸 묻자 물티슈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광고 문구를 중얼거리던 그가 갑자기 내 왼손에 묻은 사인펜을 눈으로 가리키며 물티슈를 내밀었다. 고맙다 말하며 지워내자 이번엔 내 오른손을 가리킨다.

 "이건 점이야." 내 대답에 C는 무심한 표정으로 수긍하듯 자리에 앉아 자신의 책상에 묻은 크레파스 자국을 닦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몸에서 뭔가가 푸슉 하고 빠져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집으로 가는 길 계단의 자기(磁氣)가 약해졌다.  


 프로이트나 테리 이글턴은 '유머'를 통해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들여다보고자 했다. 이런 유명한 분들의 이론이 아니더라도 유머가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안다. 웃음은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즐겁고 유쾌하게 만들어주고 내가 이 무리에 속해 있구나 안정과 친밀함을 얻게 해준다. 그러나 우리 사이에는 웃음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그것이 시간을 보내기 힘든 이유 중 하나였는지 모른다.

 의도하지 않은 행동이라도 농담과 웃음이라는 핑계를 만들어 오늘도 그들을 만나러 간다. 가까워지고 있다는 자기 세뇌가 현실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림책 추천> 많은 그림책에 농담과 유머가 섞여 있습니다. 더 많은 책들을 담지 못해 아쉽지만 재미있다 생각되는 책을 몇 권 골라봤습니다.

*내 꼬리 봤니?/알베르토 로트 글그림/박서경 옮김/상수리/2021.10.11

*안녕하세요, 윌로 아저씨!/다비드 메르베유 글그림/나선희 옮김/책빛/2022.8.26

*늑대들/에밀리 그래빗 글그림/이상희 옮김/비룡소/2019.6.21

*오줌이 찔끔/요시타케 신스케 글그림/유문조 옮김/위즈덤하우스/2018.11.22

*모모모모모/밤코 글그림/향/2019.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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