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바다 만큼은 아니어도 웅덩이 정도 아량은 베풀 줄 아는 이가 되어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은 모습과 생각에 나 참 후지다 싶은 자괴감이 들 때가 있다.
초등학교에서 그림책 수업을 할 때의 일이다. 1학년 Y는 언제든 화낼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였다. 수업을 마칠 때 쯤이면 목소리가 항상 처음보다 걸걸해졌는데 친구들에게 시비를 걸거나 소리를 질러대는 탓이다. 가끔은 눈을 부릅뜨며 내게도 역정을 냈다. 단호하게 타이르면 분을 못 참고 억울해하며 책상에 얼굴을 묻는다. 아니면 교실 뒤쪽 모퉁이 공간에 쭈그리고 앉아 나를 한참 째려보기도 했다. 아, 너무 얄밉다. 그래도 최대한 다정하게 목소리를 꾸며본다. 나도 모르게 입술에 힘이 들어간다. 아이들은 눈치가 빠르다. Y는 내가 자신을 탐탁치 않아 하는 것을 알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수업중에 담임선생님이 오셔서 양해를 구하고 Y를 데리고 나가셨다. 복도에서 수군수군 말소리가 들려왔고 아이는 끝내 교실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 후에 복도에 나가보니 문 앞에 Y가 고개를 숙인채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아이들은 Y를 지나쳐갔다. 일상이라는 듯이.
무슨 일 있었니?
다가가 묻자 Y는 비로 그제야 꺼이꺼이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이전 시간에 친구에게 못된 말을 했다가 혼이 났다고 한다. 많은 생각이 스쳤지만 그냥 Y 앞에 쭈그려 앉았다.
우리 Y가 조금만 다정하게 말하면 분명히 친구들이 잘 이해해줄거야.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들썩거리던 아이의 몸이 잠시 멈춘다. 시간이 천천히 흐른다고 느꼈다. 코를 훌쩍거리며 소매로 눈물을 훔치더니 점퍼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그러더니 내 손에 사탕 하나를 쥐어준다. 선생님 이거 드세요. 꾸벅 인사를 하고 복도를 터벅터벅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