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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Jun 23. 2024

서로의 품위를 지키는 법?

갱년기와 사춘기

 


   "증상이 딱 갱년기." 지인들이 진단을 내리더니 운동과 각종 영양제, 취미생활을 추천했다. 체력이 떨어지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조금은 심난다.


 아이는 요즘 '공부'나 '청소' 단어만 꺼내도 억울한 표정으로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대답도 세상 그렇게 성의가 없을 수가 없다. 내 얼굴을 똑바로 보며 말대답을 할 때는 당황스럽고 화가 치민다. 친구 때문에 고민 늘고,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고 있다. 그러면서도 애정을 갈구하는 아기 같은 모습을 보면 세상 이쁜 내 새끼인데 점점 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아이의 이름을 수도 없이 부르며 야단을 치고 아이는 툭툭거린다. 주변 사람들이 노이로제 걸리겠다고 난리다. 갱년기는 사춘기를 이기니 까불면 안 된다 농담 반 진담 반 이야기는 씨알도 안 먹힌다.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아이와 싸우고 어색한 상태에서 친정 식구와 밥을 먹었다. 바로 헤어지기 아쉬워 근처 카페에 가는데 아이는 할머니와 이모가 함께 있는 차를 타고 이동했다.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아이가 다가와 귓속말로 "나 할머니 때문에 눈물 날 뻔했어."라며 벌게진 얼굴로 눈물을 글썽거린다. 차 안에서 내내 잔소리를 듣다가 할아버지가 말리자 겨우 끝난 모양이었다. 친정엄마에게 무슨 일이냐 물으니 언성을 높이며 긴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제 쟤도 어른인데 어지간한 스스로 해야지'로 시작된 이야기는 아이를 너무 오냐오냐 키우는 내가 문제인 것으로 끝났다. 친정엄마 얼굴에서 내가 겹쳐 보인다. 

  '갱년기'나 '사춘기'라는 단어에 내 생각을 묶어두고 조언을 가장한 화풀이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된다. 나이와 시기(時期)의 문제가 아니라 은연중 아이를 '을'이라 여기는 마음이 문제일지도 모른다. 다른 이에게는 몸과 마음의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를 티 내지 않고 참거나 우아하게 대응을 하니 말이다. 독립된 인격체로 인정하자고 다짐한다. 상처 주는 말이나 한심해하는 눈빛은 하지 말고 세 번은 참자. 품위 있게 대화로 해결해야지.


 그러나 아이 방문을 열면 또 나도 모르게 단전에서 깊은 탄식과 굵은 소리가 터져 나온다. 동화처럼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냈다는 결말은 없다. 여전히 서로에게 '치사하고 앞뒤가 맞지 않는 엄마', '게으르고 건방진 녀석'이다. 어렵다.



<그림책 추천>

*백주의 결투/마누엘 마르솔 글그림/박선영 옮김/로그프레스/2019.6.20

*내일 또 싸우자!/박종진 글, 조원희 그림/소원나무/2019.11.15

*고함쟁이 엄마/유타 바우어 글그림/이현정 옮김/비룡소/2005.6.21

*싸움에 관한 위대한 책/다비드 칼리 글, 세르주 블로크 그림/정혜경 옮김/문학동네/2014.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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