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중의 이야기 #2
인디언들의 기우제는 성공률이 100%라지?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계속한다니.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MRI촬영을 했던 게 몇 차례나 되더라? 네 번? 다섯 번? 처음 뇌종양 진단을 받은 촬영부터 헤아린다면 분명 다섯 번은 넘을 것이다. MRI기계 속으로 들어가 촬영을 할 때면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언제 이 시간이 끝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좁은 MRI기계 안에서 꼼짝 못하도록 몸을 고정시킨 채로 누워있을 때면, 언제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지루하기만 한 시간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언제쯤이면 이 답답한 공간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일까?’
아무도 없는 공간 안에 가만히 누워 때로는 30분, 어떤 때는 한 시간. 혼자 견뎌내는 시간이 언제 끝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다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면 나는 가만히 숫자를 셌다. 50부터 때로는 100부터, 하나씩 하나씩 역순으로 그렇게. 100- 99- 98- 97- 96…. 헤아리던 숫자가 0으로 끝났음에도 그러나, MRI촬영의 시간은 종료되지 않았다.
병실에서 이루어진 한 차례의 항암치료 일정이 마무리되고 2~3주간의 휴식 후 다음 차례의 치료가 시작되기 전이면 어김없이 MRI촬영은 진행되었다. 그간 받은 치료로 종양의 크기가 얼마나 줄어들었는지 확인을 위해서였다. 항암치료, 집에서의 휴식, MRI촬영을 한 뒤 다시금 항암치료. 내가 받았던 치료의 스케줄은 그렇게 진행되었다.
‘자기공명영상(磁氣共鳴映像)’이라고도 불리는 MRI촬영을 위한 기계는, 그 명칭으로부터 짐작할 수 있듯 거대한 원통형 자석 터널이다. 무게가 보통 6톤을 넘는다는 무지막지하게 거대한 자석 터널. 그처럼 커다란 자석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자기장을 신체 특정 부위에 쏘아 치료에 필요한 영상을 얻어내는 과정이 MRI촬영이다.
미래의 내가 뇌종양이라는 병에 걸려 MRI촬영이라는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아니 이 세상에 MRI촬영이라는 게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과거의 어느 날. 인터넷 어디에선가 ‘MRI기계의 모습’이었나, 여튼 그것과 비슷한 제목의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클릭해 들어간 게시물에는 철제 책상이며 의자, 수액걸이 등이 구겨지다시피 날아가 붙어 있는 커다랗고 하얀 기계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마치 빨려 들어가기라도 한 듯, 커다란 기계에 쪼그라져 붙어 있던 철로 된 여러 물체들. MRI기계는 그만큼이나 강력한 자석이다. 때문에 몸속에 금속 인공관절이라든지 수술에 따른 금속류가 있다면 촬영 전 반드시 알려야 한다. 잊었을 경우 그것들이 피부 밖으로 그대로 뜯겨 나오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신체에 착용하고 있는 금속 액세서리류 역시 반드시 탈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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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RI촬영에 앞서, 간호사 선생님은 내게 귀걸이나 목걸이 팔찌 같은 금속 물체 착용은 없는지, 그리고 몸속에 다른 금속 보조구는 없는지 물어 확인하곤 왼쪽 손등 혈관에 하얀 액체 팩(주머니)이 연결된 플라스틱 재질의 바늘을 꽂았다. 우유처럼 하얗기만 하던 그 액체는 촬영결과가 더 뚜렷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한 조영제(造影劑)라고 간호사 선생님은 말해 주었다.
조영제 팩이 떨어지지 않도록 팔뚝에 테이프로 붙인 채 MRI검사실로 들어가 방사선사 선생님의 지도 하에 좁은 침대와도 같은 테이블 위에 몸을 눕혔다. 잠자코 누워 있는 내 손에 방사선사 선생님은 호출 스위치를 쥐어주며, 촬영 중 불안함을 못 견디겠으면 스위치를 누르라 말해 주었다. 그러곤 내 양쪽 귓구멍에 폴리우레탄 재질의 귀마개를 끼우고(처음엔 왜 귀마개가 필요한지 몰랐다) 촬영의 본 대상인 머리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틀로 고정시켰다. 머리가 단단히 고정됨이 느껴지자 슬그머니, 긴장감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기계 안으로 들어가기 직전 방사선사는 조영제 주머니의 작은 밸브를 열었다. 차가운 약제가 몸으로 흘러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모든 사전 절차가 끝난 뒤 촬영실의 모든 이들은 밖으로 나갔고 MRI기계는 테이블에 누운 내 신체를 천천히 원통 속으로 이동시켰다.
잠자코 들어간 MRI기계의 원통 안은 (물론 고정되어 불가능하긴 할 테지만) 고개를 제대로 들 수 없을 만큼 무척이나 협소했다. 의료 기구가 아니라 차라리 관(棺) 속에 누워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하얗고 좁은 관 속에. 그 협소함 탓에 MRI촬영 중 폐소공포증을 느낀다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방사선사 선생님이 손에 쥐어준 호출 스위치는 바로 그런 상황을 위한 것이었다. 낯설고 비좁은 원통 속에 들어가 있자니 나 역시 그런 환자들의 마음이 이해가 됐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호흡이 가빠지는 것이 느껴졌다. 호출 스위치를 쥐고 있는 손바닥에서 땀이 났다. 잠시 후 ‘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기계 안에 부착된 스피커로부터 방사선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촬영 들어갑니다. 움직이지 마시고 촬영이 힘들면 스위치를 누르세요.”
그렇게 MRI촬영은 시작되었다.
잠시 동안의 적막이 지나자, 공기의 흐름조차 느껴지지 않는 좁고 폐쇄된 공간 안에서 반복적인 기계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뚜- 두- 두- 두-’ ‘딱, 딱, 딱, 딱, 딱’ ‘삐- 삐- 삐- 삐-’
계속해 이어지는 시끄러운 기계음은 어째서 귀마개가 필요했던 것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귀마개를 했음에도 그러나 소리는 결코 작지 않았다. 사방이 꽉 막힌 좁은 공간 안에 울려 퍼지는 소음은 머릿속을 휘저었다. 그와 함께 나를 꽉 붙들고 있던 ‘절대로 움직이면 안 된다’는 강박은 팽팽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두근대는 심장 박동 소리는 기계음과 뒤섞였고 호흡 역시 거칠어졌다. 그러한 공황(恐惶)적인 상황 안에서 호출 스위치를 눌러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다고 이 상황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다는 사실은 분명했다. 이번엔 도망칠 수 있더라도 결국 MRI촬영이란 피할 수 없는 치료의 과정일 것이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호출기를 쥔 손아귀의 힘을 풀었다. 눈을 질끈 감고 이 시간이 무사히 흘러가기만을, 내 안의 두려움이 잠잠해지기만을 잠자코 기다렸다.
좁고 밀폐된, 마치 관과도 같은 공간에 오로지 혼자 갇혀 있다는 사실, 그 안에서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공황적인 기계음들, 그리고 그런 상황 속에서 결코 움직이면 안 된다는 강박. 그런 모든 것들이 나를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 그러나 MRI촬영의 과정 속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이 시간이 언제 끝나는 것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때로는 30분, 어떤 때는 한 시간. 오롯이 혼자 견뎌내야만 하는 시간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무엇보다도 나를 힘들게 만들었다. 비좁은 MRI기계 안에서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도록 몸을 고정시킨 채로 누워있을 때면 언제나 나에게는 이런 생각이 찾아오곤 했다. ‘대체 언제쯤이면 이 시간이 끝나는 것일까?’하는 생각이.
‘이 지겨운 시간은 대체 언제 끝나는 걸까? 시끄러운 이 소리는 언제쯤 멈출까? 언제쯤이면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이 좁은 공간에서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걸까?’
의지할 곳이라고는 결코 찾아낼 수 없는 막막하기만 한 공간 안에서 그 막막함을 참고 한 번 더 참아내다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때, 나는 마음속으로 가만히 숫자를 셌다. 50부터 때로는 100부터, 60부터. 하나씩 하나씩 역순으로 천천히. 100- 99- 98- 97- 96…. 그렇게 세어나가다 보면 언젠가 이 답답하고 힘든 시간이 끝나고 말 것이라는 소망을 품고서. 그렇게 헤아려 내려온 숫자가 마지막 0에 다다랐음에도 그러나, MRI촬영의 시간은 종료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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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면 나는 가만히, 다시금 숫자를 헤아리기 시작했다. 인디언들이 지낸다는 기우제를 떠올리면서.
날이 말라붙는 가뭄이 찾아오면 북아메리카의 인디언들은 기우제를 지낸다. 한데 모여 다 같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며 비를 내려달라는 간곡한 기원을 올린다. 여기까지는 다른 이들이 올리는 일반적인 기우제와 다를 것 없다. 그러나 다른 이들의 기우제와 인디언들의 그것에 차이가 있다면, 인디언 기우제의 성공률은 100%라는 것. 그 이유는 간단하다. 며칠이 걸리든 몇 주가 걸리든 심지어 몇 달이 걸리든,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는 그날까지 인디언들은 기우제를 멈추지 않기 때문에.
인디언들의 기우제를 떠올리며 나는, 가만히 숨을 고르고 다시금 하나씩 수를 세어나갔다. 천천히 천천히. 50- 49- 48- 47 46…. 그렇게 헤아려 나가는 시간이 이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기어코,
인디언들의 마을에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