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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재 Jun 04. 2019

55분 증후군? 우리는 5분도 소중한 직장인이니까

빨강머리 앤이 당신에게 보낸 아홉 번째 편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영원히 고갈되지 않는 소재는 ‘회사 스트레스’였어. 서로 다른 회사를 다니고 있음에도 깊은 공감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놀랍도록 비슷한 성격의 사람 때문이었어. 굉장히 보기 드문 경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지. “어머, 두 사람 서로 형제자매 아니야?”라는 말이 왕왕 튀어나오곤 했으니까.


아마 오늘 네게 쓰는 편지 속에서 등장하는 사람이, 너희 회사에서도 존재하는 사람일지도 몰라.



“너희 55분 증후군이라고 들어 봤어? 내 상사가 앓고 계실 거라고 진지하게 의심하고 있지.”

“55분 증후군이 뭐야? 처음 듣는데?”

“아, 회사에서 여유로운 다른 시간을 두고 11시 55분, 5시 55분에 업무지시를 하는 걸 두고 내가 부르는 말이지. 오전 9시부터 11시 50분까지는 한가하게 있다가 꼭 밥 먹으러 가기 5분 전인 11시 55분, 퇴근하기 5분 전인 5시 55분에 일을 시키는 거야.”

“어쩜! 우리 회사에도 그런 분 계셔!”


처음엔 우연이겠지, 어쩌다 보니 55분이 된 거겠지, 싶었는데 어느 날은 한번 세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결과가 어땠는지 아니? 평일 5일 중 3일은 55분에 일을 주는 거야. 아, 이건 우연이 아니다!라고 직감했어. 나는 그날부로 ‘55분 증후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지.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다른 친구가 입을 열었어.


“모처럼 금요일 저녁 약속을 잡고 6시 정시퇴근을 준비하는데, 갑자기 5시 55분에 나를 부르는 거야. ‘세영 씨, 이 보고서 좀 요약해서 올려줄래요?’ 분명 우리 둘 다 한가로이 퇴근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5시 55분에 일을 주는 건 대체 무슨 상황인 거니?” 


“나도 나도, 진짜 우리 회사 상사랑 어쩜 이리 똑같을 수가! 둘이 형제 아니야?”


어때? 너희 회사에도 이 특이한 증후군을 앓고 있는 누군가가 있니? 어떨 때는 55분임을 알려주는 특별한 세포가 그분에게만 있는 건지 궁금할 때가 있다니까. ‘55분이에요! 어서 직원에게 일을 시키세요!'라고 알람을 울리듯 알려주는 아주 괘씸한 세포 말이야. 달갑지 않은 바로 그 녀석!


물론 한시가 급한 중요한 일이라면 이해해. 하지만 굳이 지금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대부분이라는 거야. 킬링 타임용 업무라고! 


“난 도저히 이해가 안 가. 다른 여유로운 시간을 두고 왜 꼭 점심시간 5분 전이나 퇴근 5분 전에 업무지시를 하는 걸까?”

"나 같으면 미리 일을 시키겠어. 서로 편하고 좋잖아?”

“제일 답답한 건, 이 문제에 대해 불만을 표출할 수 없다는 거지. 내가 승진해서 밑에 직원이 생기면, 나는 절대로 안 그럴 거야.”


농담조로 이야기했지만, 이 증후군을 앓는 상사와 함께 한다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 때에 따라서는 “점심 먹고 할게요, 내일 출근해서 검토해 볼게요.”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다반사일 테니.


나중에는 11시 55분, 5시 55분이 되면 상사의 눈치를 살피게 되고, 별다른 업무 지시 없이 회사를 나설 수 있다는 게 감사하기까지 했어. 흡사 ‘감사 일기’의 소재 같았다니까! 


어때? 편지를 읽으면서 떠오른 사람이 있니? 없는 게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만약 네 머릿속을 찾아온 사람이 있다면 간절히 바라보자. 그분이 55분 증후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말이야. 


오늘 하루도 이 몹쓸 병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렸을 너를 위해, 내가 대신 말해줄게! 


혹시 상사의 위치에 있을지도 모를 당신, 내가 설마 55분 증후군을 앓고 있을까 염려하고 계실지도 모르겠네요. 조금이라도 걱정되신다면 부디, 55분 증후군에서 빨리 해방되실 수 있도록 해주세요! 후배 직원과의 사이를 서먹하게 만드는데 특화된 병이거든요. 


우리는 5분도 소중한 회사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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