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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유 Jun 26. 2024

그 여름 지리산에서

먼저 한 걸음 내디딘 것이 못내 수줍었던

그날처럼 억지스럽게 산을 오른다.

몇 걸음 옮기는 사이 그 언젠가 그날처럼

햇빛 속에어둠을 쓸어내리는 산중.


그날 그들의 선명한 핏빛 무더위를

끈적한 죽음으로 가렸던 농염의 숲에서

생명줄 같았던 바람은 여전히 산죽을 붙들고

피리소리를 만들고 있다.


그늘이 내린 바윗돌마다 핏물인 듯, 땀방울 뒤엉킨

물인 듯 축축한 이끼가 시간을 덮었다.

지난했던 세월의 흐름에서 벗어난 듯 작은 바윗돌에 걸터앉아 몸을 비비며 핏물 같은 눈물을 훔친다.


세월의 무게에 짓눌린 산은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군데군데 피딱지 같은 빛내림

어둠을 좇기라도 하는 듯 파라락 파라락

스치듯 바람에 산죽잎이 흔들리는데

그 모양새가 어쩐지 꽃상여에 살풀이춤을 닮았다.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  어~허

북망산천 그 너머로

어~허  어~허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허  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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