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디다 싶었는지
싸래기 빗방울이 날리더니
이틀 사이 거리에, 들에, 산에
온통 봄이 피었다
조바심을 내며 기다렸던
골목길 안 그 꽃집에선
어머니의 꽃놀이도 시작되었는데
며칠 바람살인지, 마당 군데 군데가 휑하다
빨간 홑동백은 그 바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담벼락 한 켠을
이젠 분홍 겹동백이 눈길을 빼앗는다
키 작은 수선화가 올망졸망 돌틈사이를 비집는데
그 옆에선 창꽃철쭉, 연산홍이 돌틈을 다투고
돌단풍이 앞에 나섰다
튤립과 백합은 웬일인지 몇 포기 보이질 않고
할미꽃 두세 송이 쓸쓸하게 고개를 숙였는데
눈길을 오래 두기엔 왠지 마음이 좋지 않았다
사랑초와 꽃무릇이 있던 자리도
듬성듬성 몇 포기 보이질 않더니
대신에 이모님의 야생화가 자리를 앉았다
초작거리는 빗방울에
꽃자리들이 물기를 머금는다
이 비가 조금 더 마당을 적시면
숨었던 어머니의 꽃주머니들이 방글방글
올해도 골목길 안 그 꽃집엔
계절 따라 온통 꽃내음이 진동하고
벌이며 나비며 꽃춤을 추겠지
오래도록 그 속에 있고 싶다
오래도록 어머니가 가꾸는 그 꽃집
마당 한 켠에 서 있고 싶다